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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 돌을 삼킨 물고기와 돌하르방 이야기

김영호

최근 이승수가 제작한 일련의 조각은 비어있다. 금속선을 그물 모양으로 용접해 만든 어류와 해녀 혹은 돌하르방은 속이 텅 빈 입체물이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그의 표현방식은 단순하지만 개성적이며 점차 그 자신만의 고유한 어법으로 확립되어 가는 듯 하다. 그물망 형식은 그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어촌의 기억에서 싹튼 것이라는 점에서 진솔함도 느껴진다. 화산암으로 채워진 해안과 바다 생태는 그에게 엄청난 재료 창고이며 마르지 않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다. 조각가로서 그에게 이제 제주섬은 가능성의 터로 다가온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일련의 작품들은 몸통을 돌로 채워놓았다. 물고기 모양의 화산암을 주어다 그 표면에 그물 모양의 금속선으로 둘러친 뒤 지느러미와 꼬리를 붙여 놓은 것들이다. 이전의 비어있던 공간은 이제 돌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완성된 유사 물고기들은 한층 다양한 메타포를 지닌다. 그것은 그물에 가두어진 물고기가 되기도 하고 무거운 돌을 삼킨 물고기로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속이 빈 물고기가 돌을 삼킨 형국이다. 이러한 메타포는 물고기를 넘어 돌하르방이나 해녀의 이미지를 통해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이승수가 시도하는 그물구조의 용접기법은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시각적 감흥을 제공한다. 우선 비어있는 조각의 내부 공간은 주제의 존재감을 역으로 환기시킨다. 사물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은 비워진 사물의 형태를 채우고 보완하기 때문이다. 마치 투명인간의 망토가 부재하는 인간의 현존을 상징하는 기호로 인식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승수가 만들어내는 해녀상의 경우 내부가 비어있는 철망의 일루전은 역으로 해녀에 대한 존재감을 색다르게 어필하는 장치로 다가온다. 수경이나 오리발 그리고 주름진 얼굴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결국 비어있거나 채워진 조각은 대상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 이승수의 작품은 부재를 통한 존재의 표상형식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존재를 비워내기의 형식으로 표상하는 이승수의 작품은 관객을 동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른바 현실적 존재가 상상적 대상으로 바뀌어 새롭게 인식되는 것이다. 그물망으로 짜여진 해녀 조형의 텅 빈 내부는 해녀의 이야기를 다양한 의미로 확대시키는 공간이 된다. 작가는 이러한 메시지의 연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물고기를 인물상의 내부에 떠다니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부분적으로 실재감을 느끼게 하는 신체의 얼굴과 같은 부분들을 배치함으로 해서 실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대치시키고 있다.

한편 내부공간이 화강암으로 반쯤 채워진 돌하르방은 메타포의 다른 형식을 보여준다. 축적은 채움 이외에도 시간과 무게를 나타내는 시각적 장치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돌하르방의 존재성을 텅빈 껍질의 구조로 제시하고 있으며 비어있는 몸통을 화산암으로 다시 채워놓음으로서 돌하르방의 존재감과 부재를 동시에 나타낸다. 비워내고 채워놓은 돌하르방의 형상을 통해 우리는 시간성과 공간의 문제 그리고 환상적 감흥의 세계를 고루 맛볼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은 이승수의 작업에 나타나는 가벼우면서도 개성적인 요소로 보인다.

이상에서 보듯 텅 빈 해녀와 돌을 품은 물고기와 돌로 채워진 돌하르방은 그 자체가 허상적 형상으로 제작된 것이지만 그것들이 파생하는 의미는 보는 이를 새로운 동화적 세계로 이끈다. 그 동화 형식이 주는 가벼움은 우리에게 즐겁고도 한편으로는 심오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 동화의 세계는 화산섬 제주가 지닌 신비한 생태와 환경에서부터 신화와 전설 그리고 바람의 역사에 이르기 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제주로 내려가 창작의 둥지를 튼 작가의 수가 늘고 있다. 개인에 따라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화산섬이 주는 신비감과 더불어 제주의 생태와 자연과 신화가 작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각가 이승수의 작업은 자신과 환경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의 고유한 어법을 구축했음을 보여주며 이제 그에게는 치열한 삶에 근거한 예술의 형식논리로 확대해야 할 소명이 주어져 있다.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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