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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겸 / 기억과 그리움의 서정을 찾아서

김영호

극사실적 회화가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재현과 묘사에 대한 화가들의 관심은 형식과 물성에 집착하던 모더니즘 미술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당위성을 지닌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행위는 결국 사실을 넘어선 허상적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관심으로 귀결된다. 이 때 그려진 이미지는 사물의 재현이라는 차원을 넘어 기호적 의미를 표상하려는 단계로 전개된다. 그리고 재현된 사물의 기호학적 해석은 최근 진행되는 극사실적 회화를 진단하는 키워드가 된다.

화가 김순겸의 경우 그림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머무는 세계다. 작가의 작품에 초대된 목련꽃이나 놋그릇 그리고 궤짝 등은 기억 속에 저장된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을 표상하기 위한 도구들로 설정되어 있다. 한동안 그는 창문과 들판을 배경 이미지로 등장시킴으로서 과거로의 여정을 상징해 왔으나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품에서는 배경을 바탕처리 함으로서 함축적인 분위기가 한층 강화되었다. 선택된 주제들은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작가의 의도는 대상의 재현을 넘어 연출된 기억의 서정성을 드러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기억과 그리움의 세계는 과거의 시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김순겸이 다루는 소재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잊혀지거나 소홀히 다루어지는 주변 것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리움의 대상으로 제시된 소재들은 웅대한 자연의 낭만성이나 거대한 내용을 담은 서사성을 표상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드러내려는 가치 영역은 미물로서 꽃과 나비 그리고 삶의 도구들에 대한 애정이라는 점에서 무욕적이다. 또한 꺾인 가지와 그릇의 인위적 연출을 통해 자의성을 드러내고 있다.

김순겸의 작품은 극사실이라는 보편적 표현방식에 기초하면서도 몇 가지의 개성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그가 최근에 시도하는 화면 분할의 기법이다. 바탕을 몇 개의 면으로 분할하여 배치하고 그 위에 그려진 대상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어긋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화면의 조형 방식은 김순겸의 그림이 대상의 객관적 재현과 묘사에 집착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의 그것과 차별성을 갖게 해 주는 요인이다. 작가의 예술적 태도는 재현과 묘사의 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화면의 형식실험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순겸의 그림은 사물에 대한 극사실적 묘사와 더불어 화면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려는 시도가 상충되는 영역에 자리잡고 있다. 화면의 네 귀퉁이에 생뚱맞게 그려진 나사못의 경우도 사실과 비사실 사이의 경계를 강화시키고 화면의 형식에 주목케 하기 위한 장치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김순겸의 그림이 단순히 극사실적 경향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실험적 형식을 찾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는 점을 알게 해 준다.

화가 김순겸은 오랜 시간동안 연마해 온 대상의 재현적 표상방식에다 자신의 독자적 형식논리를 추가함으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놋그릇에 얹혀진 목련꽃이나 무중력의 공간을 날고 있는 나비 등은 표상된 사물 자체가 아닌 작가에 의해 연출된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연출 방식의 저변에는 기억과 그리움의 세계를 표상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고 앞으로 얻게 될 예술적 성과를 자못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라 생각된다.(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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