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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사비평](6)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예술

김영호

최근 전남 여수에서 열린 <2008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에 한 외국작가가 출품한 미술작품을 둘러싸고 용공시비가 제기되어 국가정보원과 전남경찰청이 경위파악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문제의 작품은 핀란드 출신 리코 사키넨이 그린 벽화로서 상단에 ‘WE ♡ SAMSUNG AND KIM IL-SUNG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하단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는 돼지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돼지의 왼편에는 삼성, 현대, 김일성, 김정일, 대한항공, 한나라당 등 남북한을 대표하는 상징 이미지 18개를 쳐내는 장면이 담겨있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일부 보수단체가 미술을 바라보는 비평안이 아직도 경색과 편견으로 가득 차있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김일성을 우상화한 대형 동상 이미지가 선명하게 일간지에 실리고, 체제 선전용 대형극과 카드섹션이 텔레비전에 여과 없이 보도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성숙해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 사진의 현상 이면에 숨겨진 사회주의 정치이념의 실과 허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역량이 있다는 자신감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부 보수단체의 반응은 한심스럽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국가통치 차원에서 본 예술의 유용성이다.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Aleksandr Guerassimov, <연단위의 레닌>, 228x173cm, 캔버스에 유채, 1930, 모스크바 레브미술관 소장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를 통치하는 장치에는 두 가지 그룹이 있다.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그것이다. 전자는 군대, 경찰, 감옥 등의 조직이고 후자는 학교, 종교단체, 예술기관 등을 들 수 있다. 억압적 국가장치는 조직의 유지비용이 엄청나게 들고 효력이 한시적인데 반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효력이 항구적이면서도 조직의 유지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고단수의 통치자일수록 백성들의 정신적 근간을 개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선호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 예술정책은 사회적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선택해 온 통치술로 활용되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서방세계뿐만 아니라 소련연방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정치기술로 발전해 왔다. 이른바 러시아혁명 이후에 대두된‘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당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기능을 가진 예술로서 지배계급의 권력을 위해 국민들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데 크게 기여해온 것이다.
위에 소개한 게라시모프(1881-1963)의 <연단위의 레닌>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변하는 정치적 그림의 하나다. 소련미술가동맹의장을 지냈고 소련의 대표적 화가의 한사람으로 추앙받았던 게라시모프는 레닌과 스탈린 등의 초상화를 다수 그렸다. <연단위의 레닌>은 사선으로 배치된 붉은색 깃발과 더불어 전진하는 영웅의 혁명적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원경에 밀집한 군중들의 집단적 환호와 더불어 공동체의 이념적 결속을 강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가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는 레닌과 스탈린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건전한 소비에트 인민상, 혁명가와 전사 그리고 사상가, 혁명기의 역사화, 인민적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풍경화 등이 있었다. 이러한 그림들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생산을 위한 국가적 장치였고 북한을 비롯한 위성국가 지도자들의 통치 권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최근 북한의 예술에 대한 연구문들이 발표되면서 철의 장막으로 가리워졌던 예술정책과 기구들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북한의 미술품 생산은 주로‘만수대창작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김정일의 탁월한 영도풍모’와 같은 주제나 혁명적 초상화 또는 유토피아적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생산된다는 점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문화예술 제 분야에 상당한 식견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화예술론’을 집필했으며 5대 혁명연극과 같은 혁명연극이 주류를 이루던 선친시대와는 달리 음악과 무용들이 결합한 가극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예술정책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의 가극에는 ‘정치선동을 위한 압도적 군중예술’이라는 평가가 항상 따라다닌다. 김정일 독재 체제 하에서의 대형가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인 것이다.
<2008 여수국제아트페스티발>에 출품된 사랑 타령조의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강령에 비추어 볼 때 낙제점수를 받을 만 하다. 우화적 방식을 통해 대자본의 기업과 교조주의 통치자 모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의도가 명백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 외국 작가의 의도가 우리에게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생뚱맞은 용공으로 선고된다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청뿐만 아니라 이 나라 예술문화에 희망이 없다.

출처 | 주간한국 2241호, 2008.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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