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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사비평](4) 재앙의 역사

김영호

재앙은 대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경고의 메시지


지난 2008년 5월 12일 중국 쓰촨(四川)성 일대에 강도 7.8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해 수 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계속된 여진은 주변 도시와 유적지들을 지속적으로 파괴했고, 당시 중국 국민들은 자연이 내린 재앙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중국정부도 국가 재난의 상황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촬영한 사진이 보도망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이 사건은 인간에게 재앙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심어주고 있다.
지구촌의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인간에 의한 재앙과 자연에 의한 재앙이 그것이다. 원자폭탄 등의 대량 학살무기를 내세운 전쟁이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면 지진, 태풍, 홍수, 전염병 등은 자연이 내린 것이 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룬 20세기가 인간에 의한 재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의 재앙은 자연적 현상으로 그 주체가 이동되고 있다. 중국의 대지진 외에도 2004년 동남아 일대를 강타했던 쓰나미나 미국 중부를 휩쓸었던 2005년의 허리케인, 그리고 최근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에이즈, 조류독감, 광우병 등과 더불어 재앙담론이 지식사회에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재앙의 역사는 미술가들의 그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피테르 브뤼겔은 <죽음의 승리>라는 작품을 통해 기독교의 종말론에 근거한 인간세계의 파멸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1562년경에 완성된 이 그림은 사자(死者)들에 의해 살육되거나 죽음의 문으로 내몰리는 인간들로 채워져 있다. 원경의 산 너머 화염에 휩싸인 하늘은 대재앙의 규모를 말해주며, 곳곳에 자리 잡은 십자가들은 이 그림의 주제가 종교적 사건임을 암시하는 요소들이다. 우측 하단에는 죽음과 대적하려는 인물과 그 아래로 악기를 연주하는 한 쌍의 연인들은 다가올 죽음의 운명 앞에 놓인 인간의 나약함과 무지를 드러낸다.



피테르 브뤼겔, <죽음의 승리>
117x162cm, 패널위에 유채, 1562,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자연적 재앙으로서 14세기 유럽인구의 3/4를 앗아간 페스트의 출현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죽음에 대한 성찰은 프랑스와 독일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죽음의 춤>이나 <죽음의 승리>와 같은 낭만적이고 교훈적인 도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는 전투를 방불케 하듯 폭력이 난무하고 상황은 절망적이다. 생자와 죽음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의 결과가 절망적인 이유는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들려오는 불행한 소식 앞에서 우리가 초연한 것은 그것이 대자연이 내린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은 공포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공포감은 역설적이게도 쾌를 동반한 것이다. 그 쾌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의 감정이며 삶의 유한성에 대한 경의의 감정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생명현상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죽음에 대한 성찰 앞에서 비로소 빛을 발휘하는 것일까. 결국 재앙은 존재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대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거대한 경고라는 생각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교만과 편견에 대한 경고 말이다. (출처 | 주간한국 2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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