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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립미술관 민영화는 안 된다

김영호

행정안전부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민영화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국립현대미술관·국립극장·KTV 등 책임운영기관을 법인화한다는 것이다. 남은 국가기관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싸고 제기된 조직과 운영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혁신방안이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개혁의 방향이 국립미술관의 민영화라는 데에는 말문이 막힐 뿐이다.

민영화란 국가기관의 민간 이양을 의미하고, 해당 기관은 운영과 재정의 독립을 궁극적 목표로 삼게 마련이다. 따라서 민영화 체제에서 미술관은 불가피하게 수익사업에 전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생겨난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에서 규정하듯 미술관의 본성은 비영리적 기관이다. 비영리적 기관을 민영화하라는 말은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구의 윤리강령을 부정하는 것이며, 미술관 사업의 본질인 소장품의 수집·연구·보존·교육 기능을 축소하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안이다.

 미술관은 경제적 수익 창출과 시장논리에 의해 존립되는 시설이 아니다. 극장이나 공연장과도 달라 입장료 수익은 한계를 보인다. 더구나 새 정부는 최근 국립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의 상설전시실 입장료를 무료화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관의 민영화는 수익을 위한 임대사업과 흥행성 위주의 기획전시에 미술관 공간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극약처방이 된다.

행정안전부는 일본의 사례를 제대로 연구해야 했다. 우리보다 앞서 2001년 미술관의 법인화를 시도한 일본의 경우 국제화단에서 현대미술의 경쟁력 약화, 국민 미술문화 서비스 질 저하라는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에 대해 유엔개발계획이 평가한 ‘인간개발지수’의 등위가 점차 내려앉는 것은 경제논리로 문화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립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의 독립행정법인화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전과 같은 국립기관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국립미술관들은 정부에서 관리 운영한다. 국민의 문화의식 향상 및 문화강국 이미지 확립의 중요성을 감안한 것이다. 평론가 이브 미쇼는 ‘현대미술관의 위기’라는 글에서 “오늘날의 미술관은 백화점이 되어가고 있으며 미술관 관계자들은 잘나가는 기업의 종사자들로 변해가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술관 책임자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상업성 전시를 유치하고 티셔츠와 도록을 만들어 파는 일에 유혹받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플라톤은 예술을 최고의 정치기술로 규정했으며 예술을 행해야 할 최상의 인물을 정치인으로 꼽았다. 이러한 사관은 오늘까지 서방국가의 국가경영을 위한 철학이 되어 왔다. 예술이 통치권력을 강화하는 국가적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루이 알튀세르의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서방국가의 흥망성쇠는 문화예술의 부침과 맥락을 같이해 왔다.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나 미테랑 정부의 문화부 장관 자크 랑그 등의 정치인들이 프랑스의 영웅 칭호를 받는 것은 국가 주도의 문화정책을 정치술로 풀어 ‘메이드 인 프랑스’의 문화 이데올로기를 강화한 공적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정치의 향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정치가 썩으면 예술에서 부패한 냄새가 나고, 정치가 건실하면 그 향기가 대륙을 넘어 천지를 밝게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예술을 상업논리의 덫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예술은 상업논리를 소외시킬 때 비로소 상업적 가치가 높아진다. 이것이 예술이 지닌 역설적 구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고의 통치기술을 예술의 이름으로 실천하는 정치인들의 실험실이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경제의 틀 밖에서 국립미술관의 개혁방안을 내놓기를 바란다.

- 중앙일보 2008.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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