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은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소재의 하나로서 동서고금의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제공해 왔고, 오늘날에도 그 대장정의 과업은 지속되고 있다. 미술사의 장을 넘기면 정작 흥미로운 것은 인체가 각 시대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의미를 나타내는 기호로 다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때로는 ‘영혼의 감옥’으로 때로는 ‘욕망의 도구’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초상에서처럼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인간의 몸이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미학적 대상으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물리적 존재로서 실재 몸과 예술 형식으로 표현된 몸의 이미지는 결코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렇듯 몸은 미술사에 힘입어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었다.

신제남의 경우 인체는 현대라는 시대성을 드러낸다. 그가 표상하는 인체미학이란 현대적 삶 속에서 대중들이 고민해 온 혼성적 주제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작가의 작품에 제목으로 자주 등장하는 ‘감성의 해방’, ‘감각의 제국’, ‘관념의 미학’, ‘유방의 역사’ 등의 단어들은 그의 인체탐구가 어떤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해 준다. 신제남은 인체 이미지를 통해 감성과 감각과 관념의 제국에 머물러 있는 인간의 본능적 속성을 표현하고 비판한다. 나아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 힘입어 끝없는 생명현상의 원천으로서 성애에 나름의 관심과 함께 미학적 메스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신제남의 인체미학은 사회심리학적 관점들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인체미학은 욕망, 권력, 환상, 유혹, 섹스, 패션, 일상 등의 화두 위에 세워져 있다.

신제남의 인체미학은 단순히 신체라는 소재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 화가로서 그의 관심은 신체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어 있으며 이 영역들 사이에 상호 침투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적 지평을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그간의 작품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이 세 개의 묶음으로 정리된다. 우선 <1978-1985>의 시기는 ‘금속성 시대의 은빛환상’ 이라는 테마로 마이크나 자동차 같은 금속성 소재의 작품을 중심으로 현실과 사회에 대한 고발과 인간성 회복에 주안점을 둔 작업들이다. 뒤이은 <1985-1995>의 10년은 ‘역사의 재인식’이라는 테마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었던 시기로서 조선후기와 일제식민 통치하의 사건들을 망각의 늪으로부터 끌어올리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고 <1995-현재>에 이르는 기간은 ‘감성의 해방’의 시기로 분류하고 있는데 작가는 여기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욕망과 환상 그리고 유혹 등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신제남이 제시한 인체미학은 감성의 해방을 포함해 그 범주를 30년의 시간으로 확대시킨 개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제남의 인체는 이렇듯 그가 걸어온 한국 현대사의 흐름에 대한 비평적 관점에서 그 미학적 존재가치를 부여받는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신제남의 생산해 낸 몸의 이미지들은 ‘금속성 시대의 은빛환상’과 ‘역사의 재인식’ 그리고 ‘감성의 해방’ 등의 미학적 끈에 의해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신제남은 지난 30여년동안 작업해온 인체 작품 120여점을 한데모아 선보인다. 그는 전시회에 <인체미학의 탐구>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화가의 길을 걸어온 시간동안 그가 한번도 인체의 탐구에 소홀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화가로서의 어떤 자부심마저 엿볼 수 있다. 주지하듯 인체화는 쉬운 그림이 아니다. 또한 신제남이 그려내는 인체는 화단 일반에서 생산되는 누드 크로키나 서정적 인물화 등과 차별화 되는 요소들이 강하게 풍긴다. 이는 작가의 관심이 인체의 선율이나 피부의 오묘한 질감을 표상하는 형식주의 미학의 차원을 한 단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려내는 인체미학의 영역이란 차갑고 세련되며 관능적 메시지로 포장된 은빛 환상의 세계이자 현대인들이 욕망하고 꿈꾸는 일탈의 세계다.




신제남의 인체미학은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함께 흐른다. 영혼을 분리하고 몸을 영혼의 감옥으로 규정한 플라톤의 관점과, 몸과 영혼이 하나로 통일된 것으로 파악하여 몸의 아름다움에서 영혼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해석의 관점은 그의 작품에서 몸을 악의 원천으로 바라보고 도덕과 윤리적 비판의 메스를 가하려는 입장과, 영혼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형상으로서 몸의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적 관점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령 신제남의 창백한 은빛 육체들은 ‘관념과 대칭의 미학’의 형식을 적용시킴으로서 몸의 초월적 아름다움에 헌사를 보낸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카데미즘 미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대사회의 관능과 육감 그리고 파괴의 덫이 도사리고 있다.

신제남의 누드가 제기하는 미학적 형식들이 장편소설처럼 구조가 복잡한 것은 그의 인체미학은 다양한 소품들을 동원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가령 최근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전투기의 금속성은 속도와 다이나미즘의 미감을 일깨우고, 란제리나 하이힐 그리고 립스틱과 같은 소품도구들은 현대여성의 섹스어필에 대한 은유를 드러낸다. 한편 <마돈나의 이중적 이미지>와 같은 스타들은 대중문화와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감각적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도자기와 달의 이미지 그리고 향수나 담배에 이르는 다양한 소품들은 작가가 표상하고자 하는 신체미학의 무대에서 각각 나름의 역할들을 담당하는 조연들이다. 도자기는 꽃과 더불어 여성의 자궁 이미지를 수집의 취향으로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이러한 복합성은 점차 대형화면과 함께 점차 단순화되면서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끝으로 신제남의 인체미학에 나타나는 초현실적 어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는 그의 작품을 상징과 은유의 차원으로 안내하는 요인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자신의 고유한 어법으로 정착시켜야 할 과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의 언덕에서 신제남의 인체들은 관객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현대사회에서 몸은 플라톤의 주장처럼 여전히 영혼을 가두는 감옥인가. 아니면 푸코의 주장처럼 영혼이 몸을 가두는 감옥인가. 초현실주의자들이 현실의 지평에 서서 이상세계를 꿈꾸듯 신제남의 작품에 등장하는 몸은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현대인의 존재론적 의미의 대상으로서 문화와 역사를 일구어내고 구체화시키는 존재론적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20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