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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한국현대판화 공모전 심사평

김영호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아트인컬쳐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2007년 한국현대판화 공모전은 ‘일반공모’와 ‘지명공모’ 두 부분으로 나뉘어 성신여대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일반공모는 예년과 같이 비회원을 대상으로 우수한 신인 판화가를 발굴하는 행사다. 그리고 이번 신설된 지명공모는 회원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나아가 한국현대판화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지명공모’는 협회의 회원 중에서 10명의 청년 판화가 - 김은영, 김종환, 민미정, 배남경, 송창만, 신승균, 윤세희, 정미라, 조사랑, 황정일 - 를 선정하여 초대전시를 열고 전시 개최일에 운영위원과 중견 협회회원 10명의 투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배남경을 V.A.P.(Very Active Printmaker)선정하였다. V.A.P. 수상자에게는 2008년도에 협회에서 개인전을 열어준다.

이번 ‘일반공모’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99점이었고 그중 입선작 43점과 특선작 6점 그리고 입상작 4점 등 53점을 선정하였다. 심사의 과정은 세 차례에 걸쳐 46점을 탈락시킨 후, 선정된 53점을 대상으로 10점의 특선을 정하였고 다시 그 중에 입상작 4점을 내었다. 결과적으로 문정희의 <시선>, 허문희의 <즐거운 상상>, 김소희의 , 그리고 조현숙의 가 수상권으로 좁혀졌다.

아쉽게도 이번 공모전에서는 대상을 내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대상 후보로 <시선>과 <즐거운 상상>을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심사위원 전원의 의견을 일치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시선>은 Chinecolle와 Drypoint의 기법을 섬세한 머리칼 이미지에 적용시킴으로서 판화기법과 주제의 합치를 이루어내는 완성도가 높고 세련된 조형감각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그러나 현대판화가협회가 추구하는 기법과 형상을 의식화의 차원으로 이끄는 강한 에너지를 표상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지적되었다.

이와는 달리 <즐거운 상상>은 강한 색채의 효과와 저부조의 입체감을 강화시킨 Collagraph 기법과 연극적 효과를 내보이는 조형감각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화면 구성이 지나치게 과밀하여 감상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시지각적 여유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심사위원회에서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 <시선>이 1등상으로 <즐거운 상상>을 2등상으로 각각 정했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들의 전체적인 수준은 전년 대비 향상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현대판화가협회의 공모전답게 판법도 다양하게 나타났고 특히 반가운 점은 판화의 기본적 속성을 존중하면서도 기존의 기법적 경계를 넘어 작가 개인의 예술적 의식이 명백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판화예술이 기타 예술과 비교해 장르적 차별성을 형성하면서도 화단현실에 걸맞는 표현 미디어로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한 대목이다.

새삼스런 일이지만, 이번 공모전 심사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논점은 현대판화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현대판화가협회가 내놓은 공모전 홍보물을 보면 출품작의 조건은 “에디션이 가능한 모든 평면 및 입체작품”으로 명시되어 있다. ‘에디션’이란 단어를 좀더 풀어 해석하면 ‘판에 의한 작업’과 ‘복수제작’이라는 두개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행위가 된다. 이 범주에 의해 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에서는 사진에서 디지털 프린트에 이르는 실험적 작품도 출품이 모두 허용되고 있다. 한편 모노프린트를 비롯해서 프린팅 작업 이후의 화면에 추가된 덧칠, 드로잉, 콜라주 등의 작업에 대해서도 ‘판화의 조건과 특성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예술성을 보강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된 경우 심사대상에 포함하기로 합의하였다.

사실 현대판화의 조건과 특성으로 채택하고 있는 두 개념인 ‘복제성’과 ‘복수성’은 1960년대 초 국제조형예술협회(IAA)가 규정한 오리지널 판화의 개념을 따르는 것이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내세우는 “에디션이 가능한 작품”도 결국 복제성과 복수성이라는 두 개념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그 개념은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로 한층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는데 쟁점이 주어진다. 앞서 언급한 사진과 디지털 프린트뿐만 아니라 옵셋인쇄, 제록스, 캐스팅, 비디오 이미지와 레이저 컷팅을 이용한 영상, 입체, 설치경향의 그것까지 판화의 영역으로 수용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법은 하나의 작품에서 섞여 사용되거나 삼차원의 공간에 설치되면서 평면에 국한했던 전통 판화예술의 개념을 혼란시킨다.

이러한 판화 장르의 파괴 또는 기법적 다변화 현상 속에서 판화의 미래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해결의 방안은 의외로 다른데서 발견된다. 판화예술의 기능과 효용성의 문제에 따른 해법이 그것이다. 오늘날 판화는 현대미술이 수용하고 있는 다양한 조형표현의 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판화예술의 지닌 고유성과 정체성은 점차 소외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소외적 현실은 역으로 판화예술의 고유한 예술적 가치와 미학적 기준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따지고 보면 전통판화가 지녔던 효용적 가치로서 지식과 정보전달의 기능이 사진이나 비디오 그리고 컴퓨터 등의 첨단장비 등에 의해 대체되는 현실에서 현대판화의 개념과 효용적 가치는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무한 매체가 허용되는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판화가 지닌 특수성은 더 이상 기법중심의 형식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판화예술이 침체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현대미술의 잡식성과 혼성주의의 의미와 함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판화예술의 고유한 의미구조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의 공모전에 주어진 사명은 출품된 작품들을 통해 판화예술이 지닌 고유한 미학과 표현적 가치의 공통분모를 발굴해 내는 일이라 생각된다. 기법으로서의 판화를 넘어 예술로서의 판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출저 | 월간아트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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