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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미술관 비전

김영호

제주특별자치도의 미술관 비전
건립중인 제주도립미술관을 중심으로


김영호 |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I. ‘문화 발전소’

미술관은 미술품 속에 스며있는 다양한 가치를 찾아내고 대중들에게 소통시키는 문화시설이다. 미술품이라는 원료를 문화라는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발전소가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미술관이 생산해 내는 문화가 점차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 부르는 이유는 문화가 풍부한 에너지를 지닌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시대의 중심 자원이었던 석탄이나 석유가 탈 근대 시대에 들어서면서 문화가 중심 자원으로 대체되는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가 자동차와 조선 등 중공업이 산업화의 근간이었다면 오늘에는 컴퓨터를 매개로 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예술이 새로운 산업화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2007년 여름, 베니스나 카셀 그리고 뮌스터 등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술행사를 찾은 관광객과 그들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 숫자와 여행에 소요된 경비만 어림잡아도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온다. 세계 각국에서 파리나 바젤 그리고 쾰른 지역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미술시장은 언제나 관심을 모은다. 현대인들은 무형적 정신을 드러내는 문화체험을 하기 위해 돈을 쓴다. 런던과 뉴욕 그리고 동경에 건립된 현대미술관과 북경에 형성된 예술인촌 역시 국제적 규모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데 기여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신화적 성공을 거둔 이래 연극, 오페라, 음반 산업을 주도해 오던 영국과 미국에서도 <테이트모던>이나 <구겐하임>과 같은 미술관의 산업화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을 달구는 비엔날레의 숫자는 세계적으로 130개가 넘는다. 이에 뒤질세라 국내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저마다 새로운 비엔날레를 양산해 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서울미디어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포천아시아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이천도자비엔날레, 공주국제미술제 등등 이미 국내는 미술제의 천국이 되었다. 이들 미술행사들은 모두가 지역문화를 생산하는 발전소로서 미술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업들이고, 미술관은 시각예술분야의 문화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라는 인식의 증거로 보인다. 국제박물관협의회에서 규정하는 비영리기관으로서 미술관이 이제 돈을 벌어드리는 간접자본이 되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컴퓨터를 가동하는 에너지가 되듯 미술관에서 생산된 문화가 국가의 주요산업이 된 것이다.


II. 지역미술관 건립추진의 명암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도) 단위의 미술관 건립은 199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새롭게 마련되고 1995년 <지방자치제>의 실행과 함께 정부가 주도하는 <1도(시) 1박물관 및 미술관 정책>에 따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이미 수도권에 건립된 서울시립미술관(1988)을 증축하는 한편 광주(1992, 2007년 10월 신축이전)를 서두로 해서 부산(1998), 대전(1998) 등의 대도시에 대규모 시립미술관을 건립하는 배경이 되었고 새천년에 들어와서 경남(2004), 경북(2004), 경기(2006) 지역에 도립미술관이 개관되었다. 현재 대구에서는 2010년에 개관을 목표로 준공식을 마치고 공사가 한창이며, 그 외에도 경북, 인천, 서산 등이 경쟁적으로 미술관 건립을 서두르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사업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추진되었고 2008년을 개관 목표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정책이 박물관미술관 문화의 활성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건립기획과 설계 그리고 소장품 정책 등을 주도하는 전문적 인프라가 마련된 것은 아니어서 건립주체들은 시행착오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미술관 건립에 대한 중앙정부의 실질적 지원내용이란 지방정부에서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를 세우면 전체 예산의 일부를 보조한다는 것이어서 미술관 건립의 기획과 실행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달려있다. 따라서 노하우가 부재한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대개의 경우 외국의 사례와 최근 건립된 몇몇의 공립미술관들을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어렵게 실행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술문화의 자생성과 독창성을 담아내고 지역문화의 새로운 창출이라는 지역미술관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서상우 교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신축되고 있는 대규모 박물관 건축은 개성 없는 초기 모더니즘의 양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 이유를 “짧은 전개경험에 의해서 법제적 장치와 다양한 방법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직도 획일적인 전시공간과 운영방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III. 제주특별자치도의 미술관 현황

현재 제주도의 미술관은 공립미술관으로서 서귀포시에 자리잡은 <기당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그리고 저지리 예술인촌 내에 건립된 <제주현대미술관> 등 3개소가 있다. 또한 내년인 2008년 말 개관 예정으로 <제주도립미술관>이 실시설계 인준을 마치고 착공일을 면전에 두고 있다한다. 사립미술관으로서는 <금오당미술관>, <러브랜드미술관>, <김영갑갤러리미술관>, <자연사랑미술관> 등 4개소가 있다. 공립미술관에 대한 평가는 직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서귀포시의 두 공립미술관은 정규직 관장이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소장품구입과 전시기획을 위한 예산은 타도시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지난 9월 저지리 예술인촌 내에 자리잡고 개관한 <제주현대미술관> 역시 관장은 물론 전문인력인 학예사가 전무한 상태여서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렇듯 제주도 공립미술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인력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또한 ‘열악한 소장품’과 ‘부실한 기획전’ 등 미술관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미술관 구성의 기본적 3요소가 ‘건물’과 ‘사람’ 그리고 ‘소장품’이라면 제주의 미술관들은 건물만 있고 사람과 소장품이 부실한 형국이다. 이러한 기본적 요소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내실있는 기획전이나 체계적 수집정책 그리고 교육프로그램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기당미술관은 평생 제주도 미술계에 헌신해 온 변시지 화백이 명예관장으로 일하면서 그나마 오늘까지 지탱해 올 수 있었다. 또한 이중섭미술관도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명예관장으로 추대해 변화를 꾀하고 있으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제주도 공립미술관의 운영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 처한 것은 결국 열악한 예산 때문이라 한다. 55만의 인구를 가진 소규모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비영리기관인 미술관에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미술관은 돈을 버는 기관이 아니라 돈을 쓰는 기관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관의 부흥은 문화산업의 기반시설로서 타 분야에 영향을 끼쳐 고부가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힘을 갖는다는 사실은 국내외의 관광산업 실태와 분석 연구서를 통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미술관이 제주도의 문화관광산업에 미칠 경제적 효과도 효과이지만 문화예술이 지역사회의 공동체의식과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점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지역문화의 발전은 지역 단체장의 문예진흥에 대한 관심과 의지로부터 나온다.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나 자크 랑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우수 사례로서 대전시와 대구시 그리고 부천시 등지의 지역단체장들의 강도 높은 투자의지는 지역 이미지와 지역민들의 공동체의식을 높이는 성공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국제자유도시를 계기로 공포된 <국제자유도시특별법>(2002) 제56조의 ‘향토문화의 진흥’과, 2003년에 고시된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그리고 2004년에 완성된 <제주문화예술중장기계획>에 따라 도민들의 문화향수권은 법제적 차원에서 보호될 근거를 지니게 되었다. 게다가 한라산 일대와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생태박물관 등의 문화적 자원화 방안에 대한 연구는 당면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IV.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의 과정과 실태

현재 건립중인 제주도립미술관이 들어설 장소는 제주시 연동 <신비의 도로> 근방에 위치한 국유지 39,756m2를 제주도가 명의이전 받아 마련한 것이며 대지 구입비를 제외한 전체 예산은 200억원의 규모로 되어 있다. 현재 설계도가 인준되었고 11월 초에 첫삽을 뜬다는 계획이다.


제주도립미술관 조감도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의 특성은 무엇보다 사업방식이 BTL 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BTL 사업이란 민간사업자가 정부의 지원 아래 금융권의 자금을 사용해 미술관 건물을 짓고 완성 후 도에 이관시키는 방식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정부지원금을 30% 지원받고 은행에서 나머지 70%를 융자해 100%의 건설자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제주도가 이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도가 당장 전체 예산을 책정하지 않더라도 미술관 건립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 융자금 70%는 제주도가 20년 동안 갚아야 할 빚일 뿐만 아니라 민간사업자는 이 기간 동안 미술관 경영과 수익사업을 집행할 권리를 갖게 된다. 결국 BTL 사업으로 건립된 미술관은 완공 후 미술관 운영권과 미술관 사업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제주지역의 언론과 단체에서는 나름의 문제점들을 지적해 왔다. 처음으로 문제가 제기된 것은 미술관이 들어설 부지설정에 관한 것이었다. 이유는 건립추진위원회 및 건립연구용역서를 무시하고 사전 논의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점과 내정된 부지가 <공원 묘지>와 <성 테마파크> 사이에 위치하여 비교육적인 장소라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공청회에서는 도가 정한 공간은 공항에서 10여분의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양호할 뿐만 아니라 공원묘지나 성테마파크는 미술문화를 담는 건물이 들어서는데 위협적인 요인이 될 수 없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또한 신도시 주거단지와 근접해 있고 신비의 도로와 수목원 등과 연계해 풍부한 문화벨트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는 적지로 결의를 보게 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 설계도면이 공시되었을 때 전시공간의 부족도 제시되었다. 제주도 문화관광위원회 오옥만 위원이 제기한 이유는 ‘특별자치도의 위상에 맞는 비엔날레급 대규모행사를 위한 공간’, ‘문예회관의 기능과는 차별화된 공간의 필요성’등을 들고 있다. 전시실은 미술관의 핵심시설이며 미술관 사업의 근간이 되는 공간이다. 사실 제주도립미술관의 전시공간의 부족에 대한 지적은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미술관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맡고 있는 업체가 내놓은 설계안을 보면 이미 전시실 증축가능성을 고려하여 설계되어 있다. 이는 도립미술관 전시공간의 부족은 제한된 공사비에 따라 미술관 규모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라는 오옥만 위원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전시공간의 부족에 의해 미술관 건립 후 특화된 전시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경우를 사전에 고려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되며, 필요하다면 조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일은 공사기간이다. 현재 계획으로는 금년 11월 초에 착공하여 내년 12월 말에 완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건축공법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14개월간의 공사기간은 아무래도 짧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대구시립미술관은 지난 8월에 착공해 공사기간을 36개월로 잡고 2010년 개관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이 기간 동안 개관준비를 위한 제반 사업을 구상하고 진행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 대구시립미술관이 타 국공립미술관과는 달리 기공식 전부터 전문 큐레이터를 채용하고 프로그램 개발, 소장품 확보 등의 사전준비를 철저히 진행해 오고 있다는 점은 제주도가 참고해야할 타산지석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주로 하여 현재 진행중인 제주도립미술관을 둘러싸고 나타난 문제점들을 언론보도를 참고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항목들로 요약된다. 우선 제주도가 용역 발주한 <제주도립미술관건립사업 연구보고서> 활용의 한계, 추진위원장 타계에 따른 공석 이후 수면에 빠진 <도립미술관건립추진위원회>의 활동, 공무원과 미술관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책임과 권한이 명시된 추진기구의 부재와 운영자문위원회 기능의 한계, 개관준비위원회의 부재, BTL 사업방식에 따라 완공 후 예상되는 미술관 관리경영팀과 미술관사업팀의 불협화음, 1년이란 짧은 공사기간에 따른 부실공사 가능성 (경기도미술관의 부실공사 파문 사례 참조). 이러한 문제점을 근거로 현단계에서 시급히 해결하고 추진해야할 기본적 과제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공무원과 미술관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추진체 발족
2. 개관을 준비할 전문직 채용 (학예사 및 관리직 공채)
3. BTL 사업으로 야기된 운영상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할 합리적인 조직 및 운영지침 마련
4. 기획전시실 규모 및 공사기간 재검토
5. <도립미술관건립추진위원회>의 기능 정상화


V. 결언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미술관 건립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21세기의 지식기반산업의 하나로서 문화예술분야에 거는 기대가 국내외에서 점차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미술관은 관광산업과 연계된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하드웨어로서 인식되고 있으며,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것을 후대에 계승시키는 대표적 기관으로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밖에도 미술관은 현대미술문화의 지역확산과 도민들의 시각문화예술에 대한 향수기회를 확대하고, 지역 작가들의 전시활동 향상시킬 뿐 아니라 미래의 질 높은 조형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주체가 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미술관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광주시립미술관이 중외공원 내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금년 10월 중순에 개관기념전을 갖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제대로 된 미술관을 건립하기 위해 극복해야할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사업은 담당 공무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폐쇄적 사업추진의 방식으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이와 함께 미술인이 중심이 되어 발족된 <제주도립미술관건립추진위원회>의 활동이 유명무실한 것도 문제가 있다. 궁극적으로 제주도립미술관이란 지역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공간이므로 건립과정 역시 제주도 당국과 미술인들을 비롯한 도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 언론도 일어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 보도관을 가지고 미술관 사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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