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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영 - 얼음 꽃의 신화적 해석

김영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네모네는 바람이 만들어낸 꽃이다. 그리스어의 아네모스(Anemos:바람)에서 꽃이름이 비롯되었고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연인이었던 미소년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서 피어난 꽃이자 ‘사랑의 아픔’을 뜻하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아네모네의 신화는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이라는 해석 차원에서 매우 흥미로운 의미를 제공해 준다. 김춘수 시인이 읊었던 것처럼 꽃은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이름을 불리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품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네모네는 신화에 의해 바람처럼 잠깐 머물다 다시 사라져가는 생명과 끝없이 순환되는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그 순환 고리 속에서 태어나고 지속되는 사랑의 의미가 되었다.

사진작가 홍주영의 얼음 꽃(Frozen Flowers)은 아네모네 신화의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다. 그의 사진 작업은 신화처럼 의미 생산을 위한 일련의 창조적 체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는 시인이 꽃의 이름을 시어로서 노래하듯 사진의 언어를 통해 꽃을 의미화 시킨다. 어떤 점에서 그의 사진 작업은 꽃의 의미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실험 작업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네모네의 신화가 그렇듯이 그의 꽃 이미지들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해석학이 전제하듯이 그 의미의 생산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대중적으로 보편화 될 의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언제나 가능태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홍주영의 작업을 바라보는 필자의 관심은 확정된 꽃의 의미가 아니라 꽃을 신화화 시키는 사진작업의 가능성과 그 의미생산의 메커니즘에 모아져 있다.

홍주영이 선택한 독자적인 의미생산의 메커니즘은 꽃의 결빙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얼린 꽃의 접사를 통한 마이크로 세계를 대형 화면으로 확대시켜 펼쳐 보이는 표현기법 역시 그가 선택한 작품제작의 중심적 어법이다. 작가는 꽃을 물속에 담가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포와 결로현상에 주목한다. 냉각의 방식은 시간과 온도 그리고 꽃잎의 속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루어지며 결빙된 꽃의 이미지는 자연물에 속해 있던 꽃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홍주영은 이러한 자신의 작품 의도를 작업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냉각 중 변형에 의해 생성되는 꽃의 형태와 얼음속의 기포 그리고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와 조화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촬영 기법을 통해 조형미 추구와 함께 인간내면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홍주영이 주도하는 의미생산의 메커니즘은 얼음 꽃의 사진적 표현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사진의 조형적 프로세스를 통해 드러내려는 것은 감각적 자의식의 세계다. 피사체인 꽃의 결빙 과정에서 생겨나는 신비로운 효과들은 작가의 창조적 결과물이다. 계획된 조형의도와 반복적 실험을 거쳐 만들어진 얼음 꽃은 그 자체로서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진작가로서 그의 작업이 드러내는 미학적 의미들은 얼음 속에 가두어진 꽃의 실제 이미지를 사진 이미지로 재생산해 내는 작가의 표현 능력에 의해서 생겨나게 된다. 홍주영은 기포와 꽃 그리고 얼음에 투사된 빛의 융화관계를 마이크로 렌즈로 접사하고 이어서 그 이미지를 거대한 화면으로 형상화 한다. 이렇게 완성된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인국의 인간들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생명현상이 만들어낸 미세하고 은밀한 비경의 세계는 어느덧 우리를 조물주의 창조세계와 조우케 한다.

홍주영의 조형능력은 섬세하고 감각적이다. 화려한 색조의 대비나 대담하면서도 절제된 구성은 회화적 표현의 감각을 따르고 있다. 사각의 캔버스에 실린 그림 이미지처럼 그의 꽃들은 여유로운 구성으로 시야를 풍요로움으로 안내한다. 구도는 비대칭적이지만 안정감이 느껴진다. 줄기세포가 세계를 형성하는 가능태이듯 미시적 눈으로 접사한 꽃술과 잎맥들은 그대로 산이 되고 바다가 되며 소낙비 내리는 정글이 된다. 뿐만이 아니다. 유성처럼 꼬리를 지닌 기포는 생명의 기원을 이루는 핵이며 겹겹이 층을 이룬 잎새의 유려한 곡선들은 여인의 은밀한 육체로 다가온다. 홍주영의 얼음 꽃은 이처럼 자연과 생명과 인간의 외관을 비추어주는 거울로 기능한다. 나아가 그 거울은 보는 이의 서정의 문을 노크하며 삶이 주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홍주영의 얼음 꽃은 응고된 아픔의 꽃이다. 자연속의 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금새 시들고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홍주영의 얼음 꽃이 생명의 한시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역설적인 상징 언어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의 얼음 꽃은 이상한 방식으로 꽃의 순간성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음 꽃의 순간성은 저장력이 강한 얼음에 의해 보호 혹은 구속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역설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히말리아의 만년설에 파묻힌 어떤 생명처럼 그의 얼음 꽃은 미를 향한 영원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순환법칙의 지배를 받는 얼음 꽃은 태양 빛에 부서질 개울의 얼음장이나 파괴될 처마의 고드름과 같은 존재성을 지닌다. 따라서 얼음에 채워진 꽃은 영원성을 지향하지만 그것은 소멸하는 꽃의 순간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홍주영의 작업에서 어떤 폭력성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홍주영의 얼음 꽃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읽혀진다. 그의 작업이 기호가 되는 이유는 카메라에 포착되어 정보이미지로 전환된 영상이기 때문이다. 생명현상의 순간을 응고시킨 그의 얼음은 시간의 덫이다. 그 덫에 의해 가두어진 꽃들의 이미지들은 다시 기호 생산의 수단인 사진에 의해 포획되고 인화지에 각인되어 다양한 의미를 제공한다. 홍주영의 사진이 만들어지는 시간의 포획 방식은 얼음과 사진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띠고 있다. 66cm에서 180cm의 크기를 오가는 대형 디아섹 화면들은 그가 포획한 얼음 꽃의 이미지들로 채워져 전시장에서 관객들과 대면한다. 바람 꽃 아네모네가 신화의 메커니즘으로 의미화 되듯 홍주영의 얼음 꽃은 사진적 메커니즘을 통해 우리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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