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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비트 미술의 가능성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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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모니터상의 모든 이미지는 망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할 때 실재 우리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의 실체는 망점일 뿐이다. 그림 이미지가 망조직으로 분해되어 컴퓨터에 저장되었다가 통신망을 거쳐 나의 컴퓨터 화면으로 넘어와 빛으로 재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정보이미지라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새로운 문제들이 생긴다. 모나리자라는 실재 인물과 그려진 이미지의 관계를 따져보는 과거의 모방론을 넘어, 모나리자 그림의 원본과 디지털화 된 정보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새롭게 요구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원본과 사본, 실상과 가상 등의 문제는 디지털시대의 미학적 화두로 급속하게 떠올랐다.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이미지들은 압축과 확대뿐만 아니라 수정이나 삭제가 얼마든지 가능한 가변적 실체이다. 그리고 무한대로 증식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시공을 초월한 디지털 환경은 대중들에게 원본이 아닌 사본, 때로는 조작된 정보이미지를 통해 지식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들리아르가 규정한 시뮬라시옹의 개념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위기현상을 진단하기 위해 내놓은 키워드이다. 그는 어떤 실체로부터 파생된 사물이나 사건 혹은 이미지나 기호 등이 원본인 실체를 대체하는 일련의 현상에서 디지털 문화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수형이 작품을 통해 접근하려는 대상은 바로 디지털 매체를 둘러싼 시각적 환경과 그 미술적 표현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이른바 그는 디지털 정보이미지가 야기하고 있는 시뮬라시옹 현상을 <동우춘설>이라는 기상이변에 비유하면서 문화적 차원의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그가 다루는 디지털 환경은 지나치게 방대하고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이어서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인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의외로 작가가 문제 삼고 있는 범주는 미술로서 조형적 프로세스와 시각적 해석으로 제한되어 있어 나름의 방향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지털 기호의 수학적 배열이 주는 차가움과 지루한 반복적 작업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면에 흐르는 서정성은 개성적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수형의 작업에 사용되는 표현의 근간은 <비트(bits)>이다. 주지하듯이 비트는 디지털 정보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로서 0과 1의 이진법 기호로 표현되는데, 컴퓨터 모니터 상에 이미지를 형성하는 실체로서 망점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가시적 실체가 아니라 디지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체계이다. 가령 물질의 최소단위를 <아톰>이라 부르는 것처럼 디지털 정보의 최소단위가 <비트>인 것이다. 부언하자면 비트는 망점을 두개의 논리연산 기호로 환원시킨 개념적 단위라 할 수 있다. 이수형의 작업은 비가시적 비트의 수학적 기호인 0과 1을 표현의 근간으로 사용해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선례를 들자면 1960년대에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망점’을 사용해 이미지를 만들었고 1980년대의 베르나르 드미오는 ‘비트’를 사용해 이미지를 만들어낸 작가로 소개될 수 있다. 드미오의 작품, 즉 011011100 등과 같이 기본적 수자 두개로 배합된 이미지의 형태학에 대해 프랑스의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는 “이미지의 완벽한 아이텐티티를 회복 시켜줄 뿐만 아니라 특수한 성질로서의 밀도나 무게 그리고 긴장과 단층 등을 더불어 나타나게 한다”고 해석한 바 있다.)

디지털 데이터의 최소단위로 등장하는 비트는 이수형의 작업을 이루는 최소단위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수형의 경우 앞서 언급한 베르나르 드미오의 경우와는 달리 기계적 방식이나 수학적 체계에 억매어 있지 않고 자유롭다. 이는 그의 작업이 비트라는 디지털 최소단위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조형적 최소단위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모나리자의 그림 원본이나 그것을 디지털 정보이미지로 재현해 내는데 관심이 없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원본과 복사본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나아가 실상과 허상의 관계를 따져 보는 일도 의미가 없다. 물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이루는 호수의 표면이나 디지털 창공을 고고히 날아가는 학과 같은 이미지는 0과 1의 숫자를 겹치거나 크기를 달리해 배열함으로서 얻어낸 결과이다. 이러한 기법은 그의 작업이 편집적 반복행위가 요구되는 일종의 고된 것이라 하더라도 유희적 놀이가 근저에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이수형의 비트 미술은 이렇듯 디지털의 세계로부터 왔으나 디지털 미디어의 체계와 규칙성을 조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리 표현한다면 0과 1의 비트에 의해 표현되는 그의 그림은 비트의 구조 위에 구축된 정보이미지의 실상과 허상, 원본과 복사본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미학적 성찰은 이수형의 작업을 개성적 어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정보이미지의 생산과 소통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초월하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불가피하게 수용하면서도 0과 1이라는 비트의 개념적 형태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의문과 반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수형의 사용하는 표현기법은 이러한 비트의 개념을 미술적 표현방식으로 풀어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잘 드내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도구는 컴퓨터가 아니라 전통적인 스텐실 기법이다. 0과 1의 숫자를 각각 칼로 정확히 오려낸 후 원판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화면에 물감을 올려내는 것이다. 그것이 디지털 구조로 읽히는 것은 비트를 사용한다는 점과 원본으로서 틀을 사용한 반복적 찍어내기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사용하는 무한 복제성이란 화가가 붓을 일정한 방향으로 반복해 칠하듯이 장인적 프로세스에 다름 아니다. 반 고흐의 터치나 세잔느의 그것처럼 일정한 패턴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다를 바 없다. 한편 그가 사용하는 기법으로서 스텐실 역시 엄격한 수공작업이 요구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수형의 작업은,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아날로그적 프로세스를 통해 이미지를 가시화 시키면서 디지털 시대의 원본에 대한 가치를 묻고 있다.

결국 이수형의 작업은 스텐실이라는 아날로그적 기법을 통해 디지털 기호의 세계를 표현해 냄으로서 미술과 기술 사이의 상보적 관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상보적 관계는 그의 작품에 깃든 서정성과 차가운 이미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자, 이 두개의 세계를 하나의 화면에 통합하여 표현하려는 작가의 태도로부터 온 것이라 해석된다.

이수형의 작업에는 실상과 가상의 세계가 서로 뒤섞여 드러난다. 어느 하나가 우위를 보이지 않는다. 가령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는 산이나 호수의 풍경이자 학이 유유히 나는 한폭의 산수화이다. 그가 때때로 선택하는 기하학적 도형의 경우에도 미술의 범주에서 크게 달라질 것 없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업은 과학으로서 디지털 매체와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와 다른 노선을 지니고 있다. 그에 있어 표현의 목표는 감성적이며 상징적이고 때로는 순수한 형식적 표현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에 디지털 시대의 해석적 방법이 개입되는 것은 그가 사용하는 표현의 기본으로서 비트가 디지털 정보이미지의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형의 작업에는 디지털 문화와 디지털 매체미술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코드로서 틈 혹은 사이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실상과 가상, 진실과 거짓, 현상과 본질, 느림과 속도와 같은 기존의 디지털 미술이 채택하던 연구과제를 넘어 주관과 객관, 이성과 서정, 지각과 감각과 같은 새로운 화두를 제공해 준다. 결국 이수형의 작업은 새로운 비트 미술의 가능태로서 또 다른 시대의 미학으로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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