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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 관념 속에 피는 꽃, 바람꽃

김영호





강원도 양평에서 가평 방향으로 놓인 37번 국도를 따라 산길을 몇 번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설악면이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 가파른 언덕에 올라 자리 잡은 설미재가 보인다. 화가 추경이 10년째 머물고 있는 산중 작업실이다. 겨울에 눈으로 길이 차단되면 배낭을 지고 설피로 하산해 식량을 구해 와야 하는 외딴 곳. 몇 주 동안 인적이 끊길 때면 작업실 난로에 타는 장작불만이 벗이 되는 적막한 곳이다. 이런 야산에 봄이 오면 펼쳐지는 미물들의 생명 현상이 어찌 소홀하게 느껴지겠는가. 자연공간의 순환 사이클을 산중 작업실에서 열 번 남짓 체득한 중년 화가의 모습에는 어느덧 수도자의 기운이 서려 보인다.

작가가 속해있는 자연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추경의 그림은 자연의 외관을 넘어선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도시의 생활을 뒤로 접고 들어와 안긴 자연의 품이라 그런 것일까. 그림 속에 평풍처럼 펼쳐진 잣나무 숲과 작업실 주변에 흩어진 풀들은 그에 있어 더 이상 초목 자체가 아니다. 야생의 미물들은 그의 화폭위에서 추상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꽃을 그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꽃의 세계를 넘어선 형식의 이미지들이자 상징으로서 꽃이며 작가의 가슴 깊은 곳에서 거칠게 키워온 이름모를 사색의 꽃이다.

돌이켜 보면 파리 유학시절부터 추경은 비정형적 형태의 바탕위에 새나 꽃의 도상적 기호가 배치된 이미지 회화에 자신의 어떤 관념을 실어 왔다. 귀국 후에 그의 작업은 단색의 바탕에 질료의 물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했지만 두 개의 대립적 세계를 하나의 직관적 이미지로 표상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그의 작업에 중심이 되어온 것이다. 그의 작업을 눈여겨 본 주변의 지인들은 그 이중적 구조로 표상된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드러내려는 어떤 관념에 주목해 왔다. 그 관념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당시로서는 이해되기 힘든 것이었으나 분명한 것은 작가가 찾고자 하는 세계는 도시나 자연의 외관 그자체가 아니라 현상과 관념의 두 영역에 대한 관계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최근 4년 동안 제작된 것들로서 형식의 측면에서 이전과 사뭇 다른 점들이 발견된다. 이른바 물감과 도구의 사용에서 실험적인 측면이 강화되었고 순간적 프로세스에서 생겨나는 매체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장인적 손작업이 중시되는 경향으로 변화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실험과 변화를 동반한 자신의 작업에 <바람꽃>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바람꽃> 시리즈가 추경이 오래전부터 찾고자 했던 현상과 관념의 두 영역에 대한 관계성을 보다 명확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추경의 <바람꽃>은 과연 바람이 만든 꽃이다. 표현기법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컴프레셔에 연결된 피스를 붓을 대신해 사용하고 그것을 통해 분사되는 압축공기로 캔버스에 얹혀진 물감을 흐트러트리면서 만개한 꽃의 이미지를 조형한 것이다. 따라서 화면에 새겨진 꽃의 이미지는 물감에 작용하는 바람의 힘에 의해 우연적 효과가 두드러지면서 일종의 초현실적 환각을 만들어 낸다. 바람결에 의해 겹쳐진 물감의 층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 형성된 석화처럼 무게를 지닌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술사의 손위에서 펼쳐진 환상의 꽃다발이 되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푸른 호수의 수면에 떨어져 파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그 낯선 바람은 화폭에 서정의 리듬을 펼쳐 놓는다. 때때로 그것은 밤하늘 우주공간에 반짝이는 별꽃이며 차창 너머로 흐르는 밤안개를 헤치고 명멸하는 폭죽의 불꽃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눈을 다시 캔버스에 집중시켜 보면 추경의 화폭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허상일 뿐임을 알게 된다. 이미지들은 캔버스의 표면에 올려진 물감이 뒤섞거나 밀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연적 허상이며, 압축공기가 연출해 낸 바람결의 축적된 결과물이다. 낯선 꽃의 이미지는 바람의 물감에 대한 유희에서 탄생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주관하는 작가는 무대 위에 올려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적당한 물감의 농담과 배열 그리고 시간의 경영과 바람의 강약을 조절하는 임무를 띤다. 하지만 작가는 순간과 우연적 현상에 의존하는 보조자로서 그 역할은 제한되어 있다.

추경의 바람꽃은 표현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 표현의 본질이란 회화예술의 조형적 프로세스에서 통합되어 나타나는 실재와 허상의 관계성에 대한 것이다. 가령 바람꽃은 미디엄이 섞인 안료의 분산이미지이며 압축공기의 에너지가 남긴 자취로서 실재라는 측면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이미지로서 허상이라는 식의 해석이다. 우리가 바람꽃의 정체를 이렇게 밝혀낸다면 그 존재는 순수조형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하게 되고 그 순수조형의 배면에 숨겨진 의미는 관객의 취향이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읽혀질 가능태로 남아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더 이상 우리는 그의 바람꽃이 나팔꽃이니 팬지니 아니면 양귀비 하는 허상적 이미지를 발견해야만 하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직관에 작용하는 우연과 필연의 합주곡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추경의 바람꽃은 자연의 외관으로서 꽃의 이미지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시지각의 베일을 한 꺼풀 더 벗기고 보면 그 자유로움은 사실 자연의 외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른바 텅 빈 화면을 바라볼 때 생기는 감동은 이전에 있었던 충만한 이미지들에 대한 상상적 지각 속에서 생겨나는 이치와 같다. 추경의 바람꽃들은 자연을 떠나 있지만 자연의 이미지에 대한 기억을 전제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이해하게 되는 것은 대립되는 두개의 세계가 서로 무관하지 않고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은닉하고 있지만 결코 서로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상태의 회화가 성립될 가능성이 여기서 생겨난다.

추경의 바람꽃은 자연이미지와 화폭에 그려진 허상이미지 사이를 넘나든다. 실재와 허상, 혹은 현상과 관념, 이 두개의 힘이 끌고 당기는 역학의 세계 - 이것이 추경의 추구하는 회화적 본질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개념적 방향성과 표현의 방법론을 명확히 갖추게 된 것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얻은 수확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이러한 수확은 설악면 산중화실에서 자연과 함께 보낸 10여년의 세월이 탄생시킨 결실이다. 이제 작가가 할 일은 자신이 일구어낸 형식으로 다양한 작업을 실행하는 것이며 그 풍요로운 조형적 성과의 귀추가 주목된다. (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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