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양화과’ 유감

김영호

우리나라 화가들의 절반은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한 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서양화가>로 불리우며 살아간다. 전국의 예술(미술)대학에서 해마다 배출되는 졸업생들을 염두에 두면 서양화가의 수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미술계에서는 이 서양화가라는 이름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화가의 일상에 바코드처럼 찍혀있는 서양화가의 명함은 일제의 산물이자 우리네 화가들에게 잘못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역시 서양인과 무관한 삶을 살면서도 이미 보편화 되어버린 재료인 유화물감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특정 예술가들을 서양화가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내 화가들의 절반을 서양화가로 규정케 하는 원인 집단은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서양화과>일 것이다. 또한 서양화분과를 운영하는 한국미술협회와 인명사전에 서양화가를 분류하고 있는 미술잡지 그리고 서양화부문을 고집하고 있는 공모전과 같은 단체도 공범으로 보인다.

서양화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신문지상에 보도된 고희동이 동경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1915년으로 거슬러 오를 수 있다. 한편 이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2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조선미술전람회>(선전)가 전시 응모 부문을 동양화, 서양화, 서예 3부로 구분하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초기의 서양화는 동양화의 상대적 개념으로 탄생된 것이며 그 근거가 유화라는 매체의 사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일본인 화가들을 선전에 참여시키기 위한 명분과 조선화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동양화라는 용어에 대립적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서양화였던 것이다. 이렇게 식민지하에서 만들어진 서양화와 동양화라는 용어는 선전의 역사 23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해방이후에 설립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도 계속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이전과 달리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국전이 폐지된 직후 1982년 새로 문을 연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라는 공식 명칭이 사용되었고 같은 해에 제4차 교육과정이 제정되면서 초, 중등학교 교과서에 한국화란 용어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으로 하여금 회화과 안에 설치되었던 동양화 전공을 한국화과로 확대 독립시키도록 부채질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화의 부각 속에서 서양화라는 용어에 대한 인식 역시 이전과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유화라는 재료의 사용에 의해 한국인의 회화를 서양화로 규정할 수 없으며 한국인의 현대적 삶과 사상을 반영하는 예술로서 새로운 명칭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당위론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술단체들에서는 이러한 용어사용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여 서양화라는 용어를 폐지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실례를 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제에서 ‘서양화’를 삭제하고 ‘회화’로 명명한 것이나 예술가들에 대한 진흥과 지원을 담당하는 한국문예진흥원의 경우도 지원 대상 분야와 평가 분야에 서양화를 없애고 회화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한 일부 대학에서는 동양화과와는 따로 <회화과>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서양화과> 혹은 <서양화가>라는 명칭은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수도권과 지방의 많은 대학에서는 서양화과 한국화과를 대비적 개념으로 구분해 학과명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름은 실체 스스로를 지배하게 마련이고 과거에 지어진 이름은 시대적 정황에 따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과가 한국화학과로 바뀌고 있듯이 서양화과는 회화과로 되돌려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교육부가 나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출처:한라칼럼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