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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회화의 손을 든 2006 터너 프라이즈

김영호

2006년 올해의 터너 프라이즈 수상자가 런던에 거주하는 39세의 독일 여성작가 토마 아브츠(Tomma Abts)로 결정되었다. 시상식은 4일 저녁 7시 런던에 위치한 테이트 브리튼에서 발신된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으로 생중계되었는데 이 행사는 매년 미술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 왔다. 몇 주 전 테이트 브리튼에서 수상 후보자 4인의 전시회 -수상자를 포함하여 필 콜린스(Phil Collins), 마크 티츠너(Mark Titchner), 레베카 워렌(Rebecca Warren)이 출품- 를 찾았을 때 출품된 작품들의 형식과 내용의 시류적 범상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기 때문에 필자는 이번 수상 소식에 별 관심이 없던 터였다. 그러나 가장 범상한(?) 작품경향의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20세기의 대표적 여성 전위예술가의 한 사람인 오노 요코를 시상자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터너 프라이즈의 선택과 전략에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되었다.


기관이 수여하는 수상제도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최근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터너 프라이즈는 영국 현대미술의 진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올해로 23회가 되는 역사를 뒤로 짚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상의 위력은 과히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였고 성공을 꿈꾸는 신진작가는 물론이고 컬랙터와 미술관에 이르는 전문가들의 활동을 가늠하는 잣대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1984년 말콤 모를리(Malcolm Morley)를 첫 수상자로 배출한 이래 길버트 엔 조지(Gilbert and George), 토니 크랙(Tony Cragg), 리차트 롱(Richard Long),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데미안 허스트(Demien Hirst) 등등의 거목들을 배출함으로서 국제 화단과 미술시장에 그 위력을 인정 받아온 것이다.





그런데 올해의 수상자는 이전의 파격적인 작품경향과는 거리가 멀다. 토니 크랙과 같은 대중미학이나 데미안 허스트식의 센세이션도 없고 길버트 엔 조지와 같은 뉴미디어를 이용한 거대화면도 사용하지 않는다. 수상자는 전통적인 캔버스를 사용한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으며 기하학 추상회화의 언어를 심화시키는 작품으로 일관해 왔다. 게다가 작품의 규격도 현대회화의 거대캔버스와는 달리 대부분 48x38cm의 소품들이며 그녀의 작품들은 전시장이 주는 거대한 위력 앞에 왜소해 보인다. 터너 프라이즈의 속성을 고려한다면 금년의 터너 수상작은 작고 엄격하고 견실한 캔버스 회화의 방법을 고수하는 작업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던졌다는 것이 파격적이다.


회화의 복권이란 말이 화단에 맴돌기 시작한 것이 벌써 삼십년이 넘었다. 그러나 당시에 복권되었다는 회화는 당대의 쟁쟁한 뉴미디어나 인스톨레이션 그리고 퍼포먼스 등과 겨룰만한 에너지를 가진 것이었다. 화면은 수백호의 규모를 지니고, 물감은 거친 물성을 강하게 드러내었고, 주제 역시 정치에서 신화에 이르기 까지 포스트모던 미학의 잡식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작가는 경기장에 온 몸을 내던지듯 캔버스라는 또 하나의 터전과 대질하면서 투사와 같이 자신을 불태웠던 것이다. 신표현주의에서 트랜스 아방가르드, 뉴페인팅에서 배드페인팅에 이르는 경향들은 잃어버린 미술사에서 돌아온 영웅들의 분신으로 다루어 졌다. 신구상회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지 삼십년이 지난 지금 회화는 사진과 컴퓨터 그리고 비디오 프로젝터 등의 미디어와 힘겨운 각축전을 벌이며 강한 예술을 위한 모색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러한 화단의 상황에서 터너 프라이즈의 심사위원들은 작고 견실한 캔버스를 매제로 하여 이지적이고 시각적인 작업을 해 온 추상화가에게 성수를 뿌려 그 미래를 축성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옵저버의 린 바버(Lyne Barber), 사우스 런던 갤러리의 디렉터인 마고 헬러(Margot Heller), 뉴욕의 화이트 콜럼즈의 큐레이터 마튜 힉스(Matthew Higgs), 골드스미스 대학의 앤드류 렌톤(Andrew Renton) 그리고 테이트 갤러리 디렉터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로서 미술계의 다양한 인사들이 골고루 섞여있다. 그리고 스폰서 업체인 고던스(Gordon’s)는 수상자에게 25,000파운드(한화 45,000,000원), 세 명의 후보자들에게는 각각 5,000파운드를 안겨주었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2007년 1월 14일 까지 계속될 4인전을 찾는 관객들은 질문할 것이다. 현대미술의 과격한 표현매체와 이슈생산의 역할 그리고 센세이션에 호소하는 과거의 전략들은 앞으로도 유효한 것인가? 수상자 토마 아브츠의 작고 견실하며 사색적인 구성의 평면 추상작품들은 출구 없는 현대미술의 영토를 탈출하기 위한 통로를 마련해 줄 것인가? 2006 터너 프라이즈는 일루전의 형식과 사색의 복원을 현대미술이 걸어야할 모험의 길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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