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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문학(1) : ‘내 말에 속지 마라!’

김영호



미술인문학(1) : ‘내 말에 속지 마라!’


김영호 |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지난 8월 말 대학교수직을 정년 퇴임 했다. 28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면서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던 차에 예술대학원 학생회와 동문회로부터 고별강연을 의뢰받았다. 숙고한 끝에 주제를 ‘내 말에 속지 마라’로 정했다. 퇴임식 강당에 모인 80여 명의 원생, 동문, 교수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미술사가로서 미술사⋅미술비평⋅미학 강의를 통해 수많은 말을 쏟아 놓고 이제 와서 내 말에 속지 말라니? 

사실 이 말은 성철스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으로 신년을 맞아 불교계의 큰스님으로서 1,300만 불자들에게 덕담을 해달라는 어느 방송국 기자의 청을 받고 무심하게 내던진 말이다. 이어지는 질문에 손사래 치는 모습까지 방송되면서 이 말은 다양한 해석의 꼬리를 만들어내었다. 스님의 행보를 아는 사람이면 이 말이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풀어 해석하자며 진리는 결코 언어로 대신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적경험 모델. 정보처리 단계 : 1. 지각적 분석, 2.기억의 통합, 3. 명시적 분류, 4. 인지적 통달, 5. 평가


사실 언어의 한계를 지적한 학자들은 동서에 수두룩하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자크 라캉은 우리가 사유하는 현실은 언어로 짜여진 세계일 뿐이라 규정한다. 그에 앞서 언어의 본질을 탐구했던 오스트리아 분석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로 정의한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한계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인간과 세계의 근간이며 우리는 언어로 짜여진 세계, 이른바 문명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을. ‘언어에 의해 응고된 우리의 경험이 곧 세계’이기 때문에 언어에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된다는 주장을 어느 누가 부정할까. 결국 언어의 본질은 한계에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체로서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 그리고 분석과 통찰에 의존해야 한다는 말을 수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성철 스님의 ‘내 말에 속지 마라!’ 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소통의 기술은 말에 대한 자기반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화두를 미술로 돌려 보자. 언어의 한계는 시각적인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도시나 자동차나 명품 가방, 혹은 이것들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응시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보고자 하는 것일까? 타자들이 정해 놓은 언어적 상징을 수용할 뿐일까?  과연 보여지는 어떤 것은 욕망의 대체물에 불과하며 욕망의 이동에 따라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달리 나타나는가? 우리가 행하는 지각이나 인지의 문제는 결국 신체로서 뇌의 기능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질문으로 바통을 넘기게 된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시각과 응시의 문제는 신경과학이라 불리우는 신생 학문을 탄생시켰다. 뇌과학 혹은 신경미학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신경과학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예술이 무엇이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밝혀내는데 촛점을 두고 있다. 현대 뇌과학 분야의 권위자 세미르 제키나 헬무트 레더와 같은 학자들은 예술의 표상과 해석 그리고 감정의 문제를 연구과제로 삼아 미적 경험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빛과 눈의 생리학을 미적경험과 연계해 분석하며 신체의 일부로서 뇌와 인식의 관계를 하나의 현상으로 묶어 몸과 정신이 합치된 신체적 경험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멋진 일이다.

신생 학문인 신경과학이 만들어낸 실적을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자. 위에 소개한 신경미학자 헬무트 레더가 만든 ‘미적경험모델’이라는 도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세한 논문과 글들이 나올 것이다. 이 모델의 요지는 작품이 해석되는 과정을 밝혀낸 것으로 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다. 비평의 기술을 습득하거나 비평적 글쓰기를 원한다면 이 모델을 공부해 볼 것을 권한다. 물론 내 말에 속지 마라! 라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면서 살펴볼 일이다.


1차 출처: 서울아트가이드 202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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