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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기억 · 기록 그리고 사후성

김영호


장소 · 기억 · 기록 그리고 사후성
부천아트벙커 B39에서 열린 <디 아키비스츠(The Archivists)>전
2020.08.01-10.11


김영호 | 중앙대교수 / 미술사가


<디 아키비스츠(The Archivists)>전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미술계에 농익기 시작한 비평적 화두들을 새삼 떠 오르게 한다. 장소와 기억 그리고 기록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개념적으로 상호 연계되어 있으며 공공미술이나 설치미술 그리고 매체미술 따위의 영역에서 자주 다루어져 온 것들이다. 이번 전시의 경우 <디 아키비스츠>라는 제명에서 엿볼 수 있듯이 기록(archive)이라는 화두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장소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는 ‘부천아트벙커 B39’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새로운 유형의 문화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소나 사건에 대한 기록은 대개 관찰자의 기억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므로 기억 이론, 가령 ‘사후성((après-coup)’ 이론은 흥미로운 비평적 도구가 된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세 명은 장소의 특성과 기억의 작용 그리고 기록의 방식을 작품으로 수렴하며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일구어 온 작가들이다. 그리고 전시 기획자는 서로 다른 조건과 관점으로 바라보고 수집한 시간의 흔적들을 아카이브라는 기억술을 분모로 삼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장소 

‘부천아트벙커 B39’는 과거의 쓰레기 소각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곳이다. 쓰레기 소각장이 건립되던 30여 년 전 이래, 이 일대는 열병합발전소와 공장시설이 조밀하게 들어선 변두리 지역이었다. 하지만 도시가 확장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급기야 주거형 아파트단지가 주변에 들어서게 되면서 쓰레기 소각장은 혐오시설로 분류되어 버렸다. 1995년 가동되기 시작해 2010년까지 15년 동안 제 기능을 다해 왔으나 폐쇄는 이 시설의 운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추진하는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의 대상 건물로 지정되어 근대 산업도시의 기억을 담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부천아트벙커 B39의 장소성은 가공되지 않은 고깃덩이처럼 매우 거칠다. 쓰레기 집하장으로 사용되었던 높이 39미터의 중앙 벙커는 거대한 사각 구조물로 전시장에 들어선 이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트럭으로 운반된 폐기물들이 화로에서 소각되기 이전에 집적해 놓았던 공간이다. 아직도 시멘트 콘크리트의 벽면 곳곳은 계속되는 누수로 얼룩져 있으며 악취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다. 사방의 벽체에 공명되어 상부로 퍼지는 구두 발자국 소리는 방문객들의 귀마저 긴장시킨다. 중앙 벙커 공간은 건물 좌우의 복도로 길게 연장되며 다양한 부속 시설들을 배치시키고 있다. 새로 탄생한 이 부속 시설 중에 주목할 것은 1층에 자리한 넉넉한 천고의 멀티미디어실과, 다목적 야외공간인 중정, 그리고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휴게공간이다. 2층에는 세미나실이나 사무공간 등이 자리잡고 있다. 3층에서 6층까지는 존치공간으로 남겨 둔 상태다. 

이곳에서 런던의 테이트모던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테이트모던은 1950년대 건립된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전용한 공간으로 중앙에 자리한 높이 35미터 길이 155미터의 터빈홀은 명소가 된지 오래다. 창문과 천장, 기물 등 기존 산업시설의 특징을 유지하며 전시실로서의 공간을 중첩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생산하는 문화발전소로 성취를 거두고 있다. 부천아트벙커 B39가 테이트모던을 타산지석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는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전환했다는 사실을 넘어 이 새로운 공간이 창작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관람객의 행동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억
 
부천아트벙크 B39는 예술가들과 관람객들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이 새로운 의미는 물론 공간 자체에 내재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관찰자의 지각이나 인식작용을 거친 의미화(signification)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부천아트벙크 B39에서 파생되는 개개의 기억은 그것을 대하는 관찰자인 관람객의 수만큼 많고 다양할 것이다.  

공간의 기억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나타난다. 관찰자가 특정 장소에서 떠올리는 기억은 사후성의 논리에 의해 왜곡되거나 변주된 상태로 미끄러지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후성이란 정신분석학에서 프로이트에 의해 주창된 개념인데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에 사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가 어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대체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에 종속된다. 하지만 사후성의 세계에서는 현재에서 과거가 규정되는 역전된 인과관계를 따른다. 라캉은 사후성이 개념이 특수한 개인의 병리학적 현상을 넘어 인간 일반의 정신구조가 보이는 특성으로 정식화 시켰다. 

사후성의 개념은 1980년대에 등장한 신미술사학의 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앞의 사건이 뒤의 사건을 낳는다’는 기존의 역사주의적 가정을 근본적으로 수정시키는 원리가 된 것이다. 사후성의 지연된 작용은 이전과 이후, 원인과 결과, 기원과 반복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모조리 뒤엎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할 포스터는 20세기 미술사의 맥락에서 사후성의 예를 들고 있다. 가령 뒤샹이 소변기를 전시장에 내놓은 사건은 애초부터 개념미술이나 오브제미술의 시원으로 다루어졌던 것이 아니었다. “뒤샹의 지위는 수많은 미술의 대응과 비평적 독해가 소급된 결과”였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역시 큐비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장소에 대한 기억은 기존의 역사주의적 견지에서 사유될 수 없다. 기억의 인과성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결된 채 유기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산업시대의 기억을 반추해 내는 부천아트벙크 B39를 둘러싼 기억은 최종적이며 한 번의 의미로 규정될 수 없음은 마땅한 이치가 될 것이다. 신미술사학이 내세우는 자의성에 기반한 의미의 재구성이나 복합성 따위의 개념은 이번 <디 아키비스츠>전의 해석에 유의미한 비평적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장소의 기억은 기록에 의해 구체화된다. 기록은 장소에 대한 사후적 기억이 만들어 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객관적 사실과 보편적 진실로서의 의미가 아닌 주관적 사실과 하나의 주장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장소에 대한 유기적 이해의 방식은 아카이브 미술의 방법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프로이트가 신경증의 일종으로 제시했던 사후성이 라캉에 의해 누구나 지닌 보편적 정신구조 현상으로 정리되면서 예술의 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할 수 있다. 

기록은 하나의 주장이자 예술가가 특정한 순간의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생각의 흐름 속에서도 그것이 특정한 오브제나 자료로 제시되는 순간 그 조합에 의해 특정한 의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라캉에 따르면 기표 아래에서 기의는 끊임없이 미끄러지지만 실재 언어생활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용인 ‘고정점’을 통해 기호의 의미가 만들어 진다. 고정점은 기표의 미끄러짐을 중단시키고 기의를 만나는 지점이다. 이 지점이 기록의 역할을 보게 된는 순간이다. 비록 이 고정점은 잠정적인 것이고 의미작용은 텅 빈 속성을 지니지만 바로 이 고정점이 주체가 태어나는 지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기표를 탄생시키는 고정점으로서 기록의 행위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상의 설명은 작가의 입장에서 본 것인데, 관찰자인 관객의 경우 사후성의 개념은 다시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과정을 거치며 또 다른 세계가 경험될 것이다. 물론 작가가 제시한 의미생산의 과정과 그 결과를 수용하는 범주에서 자신의 기억술은 자유로운 것이다. 이렇게 장소와 기억 그리고 기술을 둘러싼 메커니즘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마치 동양의 노장사상이나 연기론이 제시하는 세계관과 유사한 점 또한 흥미로운 대목이다.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의 세계를 라캉은 알고 있었거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억전달자, 디 아키비스츠>와 관련하여 장소에 대한 기억과 그 기록의 과정을 사후적 이론을 통해 설명하는 일은 세 명의 출품작가의 작품을 해석하는 하나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인 나현, 심철웅, 연기백이 부천아트벙커 B39라는 특수 공간을 매개로 한 작품을 선택해 보기로 하자. 


예술 

나현의 <블랙유머>는 1층 야외공간인 중정 시멘트 바닥에 사각의 테두리를 친 후 내부에 흙을 깔아놓은 작품이다. 높이 10~20여 센티의 흙은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며 특별한 첨가물 없는 자연상태의 것이라 한다. 설명이 없이 바라보면 조성 중인 화단을 연상케 한다. 이 설치 작품은 전시가 마무리 될 10월 11의 상황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싹이 올라와 무성하게 자라있거나 반대로 지금 이 상태로 빈 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객관적이며 보편적 의미를 제시하지 않는다. 알레고리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할까. 8월 1일 전시 개막 당일에 관객에게 공개된 이 작품은 10월 11일의 시점과 기억의 인과성을 뒤섞으며 어떤 의미를 파생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현의 작품은 탈역사주의 혹은 신미술사학의 맥락에서 읽혀진다. ‘의도된 기록으로서의 절대적 진리의 역사를 부정하며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 간극을 채워나가는’ 작가의 방법론이 <블랙유머>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나현 <블랙유머>



심철웅은 쓰레기 소각장 노동자들의 손때가 묻은 밸브 손잡이를 영상물로 채취해 현장에 설치해 놓은 작업 시리즈 2점을 선보였다. 그 중 하나가 <Wheel of Memories 02>이다. 스크린 위에 회전하는 이미지로 등장하는 밸브는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기계실들의 장소성을 비추는 망원경이자 하나의 기표로 작동한다. 쓰레기 소각장의 기억은 작가 혹은 관객이라는 관찰자의 개입으로 쉴새 없이 미끄러지지만, 작가가 제시한 고정점으로서 밸브의 이미지를 통해 그 미끄러짐은 중단되고 ‘하나의’ 기의들과 만나게 된다. 산업시설 기능이 모두 사라진, 텅 빔으로 채워진 공간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 비어있음의 고정점이 바로 심철웅의 작품이 완성되는 지점이고 주체로서 작가가 건재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심철웅의 작업이 보여주는 디지털 영상매체는 전원 스위치가 꺼지는 순간 사라지는 부재의 실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상매체를 통해 작가가 담아내려는 역사적 장소와 사건들 역시 매체의 특성인 부재의 실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장소의 기록은 실재와 진실의 울타리를 넘어서 있다.  



심철웅 <Wheel of Memories 02>


연기백은 높이 39미터의 콘크리트 벙커 하단부에 비닐로 된 큐브 <On-going project 부천 53>을 설치했다. 비닐 큐브의 내부에서 기계적 장치로 만들어 내는 수증기가 비닐의 표면에 새겨진 낙서를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장치한 작업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벙커의 벽면 틈으로 새어드는 물이 비닐 큐브에서 작동하는 기계적 장치에 의해 의미를 지닌 언어적 기표로 드러나도록 의도한 작가의 생각이 전해진다. 그 내용은 어두운 도시와 힘든 일상의 메시지를 비롯해 소박한 꿈과 희망의 메시지들일 것이다. 비가시적인 장소의 기억을 문자 언어의 기록을 통해 드러내는 작업은 벙커라는 공간의 힘에 의해 강조된다. 일상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소소한 것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의 제작 방법은 이번 전시에서 공간과 기억과 기록의 유기적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거대한 규모의 콘크리트 큐브 공간에 대응적으로 설치된 연성 재질인 비닐 큐브 공간은 비대칭적인 사회에 대한 반성이거나, 아니면 좌 우로 대립된 진영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결실일지도 모르겠다.  




연기백 <On-going project 부천 53>
  
이상에서 본 것처럼 아카이브 미술의 가능성은 전환기의 예술 유형으로 다가온다. 그 새로운 예술 유형은 데카르트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전개되어 온 기계론적이고 환원적이고 분석적이며 물질적인 가치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유기적이고 융합적이며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세계관으로 대체되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디 아키비스츠>전은 문화적 터닝 포인트에서 장소와 기억 그리고 기록을 둘러싼 사후적 의미의 작용과 그 체계에  대해 새롭게 숙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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