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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2000년 제주지역 작가군의 활약과 특징

김영호



1970년-2000년 제주지역 작가군의 활약과 특징 


김영호 | 미술사가, 중앙대 교수

1. 프롤로그

1970년대 이후의 제주지역의 미술을 논할 때 우선 생각해 볼 것은 <제주미술>이 실체가 있는 용어인가 하는 질문이다. 오늘날 제주미술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비단 제주미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부산미술, 대구미술, 광주미술의 본성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가 않다. 제주미술의 특징을 바다, 섬, 바람, 해녀, 신화, 유배, 난민, 항쟁, 평화 따위의 주제와 결합해 바다미술, 섬미술, 바람미술, 신화미술, 유배미술, 난민미술, 항쟁미술, 평화미술 따위로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제주미술의 다양한 현상의 하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일 뿐 제주미술의 본질이라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규정들은 진단의 주체와 조건들에 의해 주장되는 것들일 뿐이다. 그 규정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바뀐다. 구미 모더니즘 미술이 이 땅에 유입된 이후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보아 왔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러한 규정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제주미술을 추상의 울타리 속에 보편화 혹은 객관화시킴으로써 제주미술의 실재를 왜곡시키거나 그 가치를 제한하는 오류를 범해 왔지 않은지 생각해 반성해 보아야 한다.    

두 번째 생각해 볼 것은 <제주미술인>의 실체에 관한 것이다. 제주미술인이란 누구인가? 제주에서 태어나면 제주미술인인가? 아니면 출신과 관계없이 제주에 거주하는 미술인 모두가 제주미술인인가? 제주에서 태어나 육지로 이주한 출향 미술인은 제주미술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주에 유배와서 살다가 돌아간 사람은 제주미술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흑인이나 백인도 제주에서 태어나거나 주소를 두면 제주미술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쉽지가 않다. 이러한 판단들도 규정의 주체와 조건(환경)들에 의해 달리 결정되는 것일 뿐이다. 가령 출향 미술인들이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사업에 제한을 받는다면 행정기관이 지원사업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상대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즉 새로운 실재관(세계관)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제주미술과 제주지역 작가에 관해 말할 때, 제주미술이나 제주미술인들이란 실체가 없는 무상(無常) 혹은 무상(無相)의 개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망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제주미술을 말할 때 비로소 그 안에서 어떤 가치와 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주미술은 열린 구조 속에서 정리되어야 하며 고정된 속박의 사슬을 벗어버린 시각으로 고찰해야 한다. 이 글은 1970년-2000년 사이의 제주미술사에 등장하는 작가와 단체의 활동상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신미술사(New Museology)의 시각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신미술사란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시대에 제기된 주장으로서 신역사주의와 해체주의 그리고 작금에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현대 물리학 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상의 한 흐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서구의 사상적 흐름은 한결같이 동양의 불교철학이나 노장사상의 신비적이고 직관론적인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는 점이다.
        

2. 제주지역의 미술 단체
  
한국미술사에서 1970년-2000년의 30년은 서구로부터 유입된 분할적이고 절대적이며 객관론적인 세계관의 영향권 속에 놓여 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제주미술의 경우에도 이러한 서구모더니즘 미술의 유입과 정착 그리고 반성의 상황 속에서 급변하고 있었다. 1972년 제주대학교에 <미술교육과>가 신설되어 근대미술 교육을 받은 엘리트 집단과 그들에 의한 미술인 양성이 시작되었다. 1975년 일본에서 서구식 미술교육을 받은 변시지가 교수로 부임하며 귀향해 화단에 새로운 기운을 일으켰다. 1977년 미술단체 <관점동인>이 출범하여 제주 현대미술의 기치를 내걸며 소그룹을 통한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형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982년 제주미술협회가 한국미술협회의 지부로 등록해 서울을 비롯한 육지부와의 교류 본격화되었다. 1993년 탐라미술인협회가 결성이 되어 제주미술에 지각변동을 일으켰고, 1996년 재경 미술인들이 주도한 한라미술인협회가 창립되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제주미술인들의 연합 조직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렇듯 20세기 후반의 30년은 제주미술계에 교육기관과 미술단체의 탄생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위에 밝힌 대학, 관점, 미협, 탐미협, 한라미협 외에도 1970년-2000년 사이에 제주지역에서 탄생한 단체들이 있다. 이들은 미술인들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집단적 연구활동을 통해 창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제주미술계를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했다. 1978년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연구하고 지역성을 극복한다는 취치로 창립된 <시상작가회>, 1982년 신성여고 동문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에뜨왈>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미협의 단일구조아래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던 과거와 달리 다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1991년 창립된 <제주한국화회>를 비롯해, 앞서 언급한 <탐라미술인협회>와 <한라미술인협회>, 그리고 뒤이어 1998년 창립된 <제주조각가협회>, 1999년 창립된 <제주판화가협회>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할적이고 절대적이며 객관론적 세계관의 영향아래 이들 기관과 단체들은 조화로운 상호관계를 형성하기보다, 자신들의 경계와 영역에 두터운 담장을 둘러 침으로서 점차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이 이렇게 된 사연을 비판적으로 되돌아 보야야 한다. 

1970년대 제주미술계의 선구적 단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합리적 논리를 제시하며 어떤 신념에 차 있었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신념에는 당시의 전시가 그룹전을 통해 집단적 의식과 이념을 내세우던 우리나라 화단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특정 이념과 거대담론의 시대가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이를 실현하는 중심적 조형 형식과 미학적 기준이 단체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미술계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탈중심과 다원주의를 내세우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주미술계의 구조는 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미협은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도내 미술계의 축은 다원화되기 시작하였다’(김순관,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 1946-1999년』). 이러한 당시의 상황에서 탄생한 그룹의 하나가 1993년에 출범한 <탐라미술인협회>였다. 이 단체의 출범은 거대조직이었던 미협의 분열상황과 더불어 ‘미술의 진정성 회복과 고답적인 향토주의나 허구적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삶과 밀착된 당대의 리얼리즘의 추구’라는 명분 아래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4·3 항쟁에 대한 재조명 작업은 이 단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들 회원들은 <민족미술인협회제주도지회>로 등록되어 있으면서도 단체명을 <탐라미술인협회>로 사용하며 중앙조직과의 관계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해방공간 이래 국내화단에 지속되어 오던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 등의 정치적 상황이 제주땅에도 뒤늦게 이식되어 제주화단을 이분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3. 제주지역 미술의 특징 

20세기 후반의 30년, 제주미술의 한 세대에 대한 반성과 제주미술인들의 현황을 살펴보는 일은 기념비적 전시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2004년 제주현대미술전 <바람의 신화 2004>이 열렸다. 한라미술인협회가 주최하고 운영위원회가 주관하여 제주도문예회관 전시실 전관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제주도내의 현역작가 55명을 초청한 대규모 기획전으로서 출향작가를 포함해 제주미술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모던이니 민중이니 하는 이념의 옷을 벗어버리고 그룹의 경계도 넘어선 몸으로 제주현대미술이 현 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종합적 전시로 기획되었다. 이 전시회가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1970년-2000년까지의 30년을 결산하는 종합적인 전시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90년대 이후 변화하는 지식 사회의 시대상과 그 예술적 표현의 현장을 제주라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주어진다.  

<바람의 신화 2004> 초대작가들의 장르는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분류될 수 있는 회화, 한국화, 조각, 판화, 그리고 뉴미디어를 모두 망라하고 있다. 출품작가의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강영호, 강요배, 고경훈, 고영우, 고영훈, 김만수, 김순겸, 김순관, 김원구, 김영철, 김용주, 김용환, 김택화, 문창배, 문행섭, 박성진, 박유승, 백광익, 변시지, 양경식, 양미경, 이성만, 채기선, 하석홍, 한용국, 홍성석(이상 회화). 강동언, 강부언, 곽정명, 김천희, 김현숙, 문봉선, 박성배, 부현일, 양창보, 이왈종, 전재현, 정용성(이상 한국화). 강민석, 강시권, 고봉수, 김방희, 김상현, 성창학, 양용방, 임춘배, 정성실(이상 조각). 강승희, 김연숙, 김재경, 안진희, 홍진숙(이상 판화). 그리고 고길천, 박경훈, 변금윤(이상 뉴미디어).

전시의 제명 <바람의 신화 2004>가 지시하듯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가들은 모두가 ‘바람의 자식’이며 그 작품들은 ‘바람의 신화’로 개념이 설정되어 있다. “출품작들은 바람에 의해 형성된 문화적 결정물들이며 신화화된 바람의 전설이 작품의 요소요소에 담겨 있다. 따라서 역으로 우리가 작품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면서 그 안에 숨겨진 바람의 역사와 삶의 기억을 추적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기획의도 아래 작가군을 네 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섬의 자연>, <제주의 역사>, <제주인의 삶>, 그리고 <제주의 정신>이 그것이다.

우선 <섬의 자연>은 제주의 해변이나 산자락 풍경을 그려낸 작품군이다. 변시지를 비롯하여 양창보, 부현일, 곽정명, 박성배, 정용성, 김천희, 문봉선, 강부언, 강영호, 강요배, 문행섭, 김용주, 문창배, 채기선, 김순겸, 한용국, 강승희가 이 그룹에 속한다. 자연풍경은 저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작가마다 다르다. 저마다 다른 자연관(세계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남긴 자연풍경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축성된 의사 자연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신으로 빗어낸 자연이므로 표피적 의미를 벗어나 내적 의미의 세계를 관객들에게 선사해 주는 것이다. 가령 변시지의 경우 섬의 자연은 폭풍의 해안으로 제시되며 그 자연을 살아가는 존재의 고독이나 숭고와 같은 미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와같이 해석된 자연 이미지는 제주의 땅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외형을 넘어 작가 자신이 형성한 미의 형식으로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찰은 자연 에너지로서 바람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삶의 성찰로부터 연유된 것이라는 점에서 제주적 특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군인 <제주의 역사>는 작가에 의해 해석된 제주의 사회상(시대상)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군에 속하는 작가들은 강요배, 고경훈, 고길천, 박경훈, 양미경, 하석홍 등이 있다. 역사화는 역사 그 자체와는 다른 차원의 진실을 품고 있다는 주장은 부인할 수 없다. 역사화는 보편화된 역사적 진실에 종속되지 않는다. 제주의 역사를 제주인들의 삶의 문맥에서 바라보면 제주의 역사는 바람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바람은 제주의 초가집을 지붕이나 돌담에서 밭을 경계하는 밭담 그리고 마을 어귀에 세워진 정주목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간섭하면서 제주의 다양한 인고의 역사를 세워왔다. 사회상을 담아내는 경우 제주의 4·3 항쟁 역시 제주의 바람이 낳은 사건이었다. 미술사에서 역사화는 언제나 오류의 덫을 피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 진실이라는 덫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사정 때문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처럼 미술이 정치나 이념에 종속적인 활동으로 자리잡아온 사실은 이를 반영한다. 따라서 제주의 역사를 담아낸 역사화는 작가에 의해 해석된 사회상을 드러냄으로써 또다른 진실을 내포하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로 <제주인의 삶>을 나타낸 작품군은 주로 인물을 소재로 삼아 어시장의 아낙이나 해녀 그리고 밭일을 하는 여인들이 주로 등장한다. 이 군에 속하는 작가들은 김택화, 강동언, 고경훈, 김원구 등을 들 수 있다. 제주의 경우 역사의 주체가 되는 인물은 언제나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대응적 태도를 보이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제주 여인들의 피부나 돌출된 광대뼈 그리고 구부정한 허리와 손발의 형상은 밭고랑이나 화산암 그리고 소나무의 껍질 형상과 다르지 않다. 그 속에 신경과 혈관은 하늘을 향해 무수한 가지를 펼쳐올린 팽나무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표현된다. 자연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자연의 일환으로 자연을 닮아 있다. 그러므로 자연의 건강성과 생멸변화하는 자연의 이치를 표상하는 것은 인물을 소재로 삼고 있는 제주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특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인물을 담아내는 작가들은 강민석, 강시권, 정성실, 고영후, 김순관, 양경식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작업은 실존적 인간의 무게와 가치를 탐구하거나 물성으로 존재하는 인간상을 그리거나 장식적 패턴의 조형언어로 신체를 나타내는 경우 등으로 구별된다. 제주의 삶의 중도를 표현한 이왈종의 경우도 독특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의 군인 <제주의 정신>은 추상적인 어법을 사용하는 일련의 작가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군에 속하는 작가들은 김영철, 김현숙, 김용환, 박성진, 백광익, 김연숙, 김만수, 김재경, 박유승, 안진희, 이성만, 전재현, 그리고 조소분야의 고봉수, 김방희, 김상현, 성창학 등이다. 제주의 정신이라는 용어가 지닌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제주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제주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형성된 정신이자 그 조형적 방식으로서의 추상적 어법이할 할 수 있다. 추상의 경향은 자연관이 현세를 넘어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비대상적인 어법으로 표현된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삶은 그래서 한층 순수하고 자연스런 형상으로 제시된다. 자유분방한 표현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이 개성적인 것은 어떤 규칙이 걱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이유로 추상작업에는 대자연의 규칙이나 질서가 응축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가령 기하학적 형상의 배면에는 대자연을 운영하는 어떤 법칙성이 있으며 그 원형적 속성을 표현해 내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존재의 양태는 규칙성을 넘어 가변적이고 우연한 속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의 본질을 노래하는 추상적 경향의 작업들에서 바람의 유연함과 거침 그리고 부드러움과 광폭함을 읽어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람의 신화>전은 제주미술사를 정리하는 기준을 정해 그 범주에서 작가군을 분류했지만 거기에 한계는 없지 않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객관적이고 추상적인 절차를 거치며 규정된 실체는 더 이상 그 실재를 나타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위에 정한 네 개의 경향에 포함 시키기 어려운 작가들도 있으며 한 작가의 작품 경향이 다른 경향들과 상호 연관을 갖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돌의 이미지에서 시작해 다양한 주제를 콜라주와 극사실적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는 고영훈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한계는 현실적으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기적이고 직관적인 세계의 결실을 우리는 문명 혹은 문화라고 부르고 그것의 실체는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며 불완전성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 주어진 이러한 사실과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유로운 가치와 의미를 생산해 내야 하는 것이다. 
 

4. 에필로그       

이른바 불교철학에서 말하는 무상(無常)한 개념은 모든 것은 생멸변화(生滅變化)하여 변천해 가며 잠시도 같은 상태에 머무르지 않으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무상의 상을 한문으로 서로 상(相)자를 써서 무상(無相)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모든 것은 차별을 초월한 일원론적 세계라는 것이다.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러한 생각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며 1980년대에 들어와 본격화되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른바 구미지역의 사상가들로부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은 기존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야기시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고 회자되고 있는 프랑스의 사상가들로서 데리다, 리오타르, 푸코, 라캉, 들뢰즈, 보드리야르 등이 이 분야의 주역들이었다. 탈중심, 다원주의, 혼성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세계관은 모더니즘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무상의 개념은 철학의 영역을 넘어 과학의 영역으로 확산되며 이제 지구촌의 중심적 화두로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묶어 태동한 <현대 물리학>의 등장으로 물리학을 넘어 생물학, 심리학, 의학, 경제학, 사회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는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고대 동양사상에 젖줄을 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 <제주지역 작가군의 활약과 특징>에 관련해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제주지역 작가, 즉 제주미술인의 정의는 출생지나 현주소에 의한 구분을 넘어 “제주의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거나 제주의 미술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친 작가”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 후기의 추사 김정희를 제주미술사의 시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제주이 풍토를 몸소 체험하고 그에 대응하는 관점을 세웠으며 그 세계관을 화폭 표상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일구었다. <세한도>는 제주미술의 태동을 알리는 하나의 결실이었다. <세한도>는 제주의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환경인 바다, 섬, 바람, 유배 따위의 주제가 당대의 서화(문인화) 양식을 빌어 탄생된 제주미술의 하나의 성취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주목할 점은 <세한도>가 제주미술의 유일한 출발점이고 김정희가 제주미술인이라는 주장은 하나의 주장이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이 정의니, 사랑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상상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상상을 믿는 능력은 인간만이 지닌 특성이다. 정의니 사랑이니 행복이니 하는 말들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상상의 언어적 산물이지만 그것은 소중한 것이다. 이러한 상상의 산물을 믿는 것, 그것이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며, 상상을 믿기 위해서는 합의가 필요하고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제주미술과 제주미술인의 가치와 특성을 주장하고 그것에 합의와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제주미술은 중요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차게재: 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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