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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석 화백과 제주도립미술관

김영호

장리석 화백과 제주도립미술관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지난 3월 5일 장리석 화백이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 중 아내와 자식 셋을 두고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 화가로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지만 명성과 함께 천명을 누리셨으니 이제 편히 잠드시길 바란다. 특정 작가의 삶과 예술은 작가의 사망과 더불어 완성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작가의 예술세계에 대한 평가가 사후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작가는 사후에 망각 속으로 멀어지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예술적 성취가 시간이 흐를수록 빛나기도 한다. 이 모두는 작가를 보내고 뒤에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화백의 작고를 계기로 제주도는 화백과 연관된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가 되었다. 제주도가 피난민 화가들을 받아드리고 예술을 잉태시킨 독특한 토양임을 되새겨 정리하는 것이다. 2005년 제주도는 장리석화백과 협약을 맺어 그의 작품 110점을 기증받았고 신생 제주도립미술관내에 장리석기념관을 조성해 운영해오고 있다. 개관식 당시 화백은 ‘전시공간이 작고 독립된 지붕의 미술관이 아님’을 이유로 불만을 터트린바 있지만 도립미술관 건립이 숙원사업이던 당시의 미술계 상황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납득하기 힘든 ‘기증작품 반환소송’ 등으로 제주도와 화백의 유족간의 업무적 공조 관계는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장리석 화백의 드라마틱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화백의 작품과 기념관은 부가가치가 높은 제주도의 문화자원이라 할 수 있다. 환태평양 지역을 선도하는 평화와 포용의 섬이라는 맥락에서 의견의 대립과 충돌의 과정은 미래를 설계하는 건강한 에너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주 해안의 풍광과 더불어 제주 해녀의 강인함을 예술의 차원에서 드높이는데 기여한 화백의 조형방식과 경향성은 아직도 연구의 대상으로 유효한 것이다. 이중섭, 변시지 화백과와 더불어 화백의 예술세계는 일제와 해방을 비롯해 분단과 전쟁 그리고 재건에 이르는 한국 근대사에서 제주가 변방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립미술관을 하나씩 꿰차고 있지만 지역의 환경과 역사적 특성을 띤 곳은 드물다. 21세기에 들어서 관광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의 시대에는 레저 스포츠가 관광의 컨텐츠로 몰리지만 3만불의 시대에 들어와 미술관 박물관 같은 문화 관광으로 기조가 바뀐다는 연구보고서도 나와 있다. 제주도는 비등록 시설을 포함해 100개 이상의 뮤지엄을 보유한 곳이다. 그만큼 새시대의 문화소비 패턴을 위한 기본시설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조직과 법제로는 안된다. 관광객 대상으로 상품화 하는 전략으로는 미래가 없다. 도립미술관이 기획한 전시회가 구미지역의 대가들을 소개하는 블록버스터형 전시도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주도는 장리석 화백의 영면을 계기로 협약서의 내용에 따라 장리석기념관을 비롯해 제주도 미술관정책의 비전을 제시하기 바란다. 

(출처: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19.3.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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