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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지기 화가의 푸른 초상

김영호

어느 종지기 화가의 푸른 초상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서귀포시 송산동의 하루는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로 마무리 된다. 저녁 여섯시에 종탑에서 내보내는 만종(晩鐘)이다. 노동을 끝내는 시간, 종지기 화가가 치는 종소리는 동네 자구리 해변을 넘어 바다의 수면 위로 울려 퍼진다. 출조(出釣) 중인 어부들뿐만 아니라 위로는 한라산 자락에 서식하는 노루와 멧비둘기 따위의 들짐승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저녁 종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70년 여름 영세를 받고 10여년이 지난 40의 나이에 스스로 자원한 일이었다. 서귀포성당 종지기로 종탑의 로프에 몸을 맡긴지 어느덧 37년이 흘렀다.   
  화가 고영우가 종지기의 삶을 사는 데는 좀 더 깊은 사연이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집에서 몇 킬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공황장애(恐慌障礙) 강박증을 가지고 산다. 어쩌면 그가 성당 종탑에서 내보낸 종소리가 퍼지는 범위가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제한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종탑의 밀폐된 공간에서 로프에 몸을 맡기는 타종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일이자 심리적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려는 몸짓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신의 섭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강박증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48년 째 서귀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의 예술은 종교와 강박이라는 정신적 토양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l고 있을 뿐이다.    
  종교와 강박증은 위대한 예술의 역사를 이끌어 온 동력들이다. 반 고흐에서 마크 샤갈에 이르는 화가들은 종교적 갈망과 현실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명작들을 탄생시킨 사례들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정신분석학이 새로운 학문 분야로 등장했고, 카를 융에 의해 강박증이란 인간이 지닌 보편적 심리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급기야 프로이트학파의 한사람인 자크 라캉에 의해 강박증에 관한 연구는 언어학과 문화론의 차원으로 지속되며 미술가의 특수한 작품세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했다.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모르는 세계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해석은 부재하는 것으로부터 생성’ 되며 그것은 ‘결여와 환상으로부터 온다’는 라캉의 선언적 주장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언어적 해석은 언제나 오류를 포함하며, 진실의 부재 위에 세워진 현실(상징계)은 더욱 성숙한 주제를 탄생시키는 주체가 된다. 우리가 모른다고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과가 원인에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라캉의 ‘사후성(事後性)’ 개념은 강박증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 해석에 유의미한 도구라 할 수 있다.  
  화가 고영우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종탑에서 종을 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화가는 무의식 속에 억류된 감각의 파장을 캔버스 위로 토해 내듯 표출한다. 작가노트를 통해 밝히고 있듯이 고영우는 ‘장엄하고 성스럽고 경이로운 세계’를 꿈꾼다. 생의 대부분을 서귀포라는 제한된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그가 살아내야 하는 삶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창조적 삶이다. 이러한 연유로 고영우의 예술세계에는 불안과 고뇌가 파생시킨 안식과 건강함이 있다. 
   시하 서귀포 기당미술관에서 종지기 화가 고영우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푸른 초상은 종탑에서 울리는 만종의 종소리처럼 종교적 경건함과 현실적 고뇌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출처: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18.12.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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