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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떻게 트라우마를 치유하나

김영호

예술은 어떻게 트라우마를 치유하나         

김영호(미술평론가, 중앙대교수)

시하 제주도립미술관에서 <포스트 트라우마>전이 열리고 있다. 4·3 70주기를 계기로 마련한 특별기획전이다. 이 전시가 특별한 것은 제주뿐만 아니라 광주, 오키나와, 난징, 하얼빈 그리고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진 광란과 폭력의 역사를 예술의 이름으로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동아시아 지역의 지배 권력이 자행한 반인륜적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일본군 731 마루타 부대의 참상을 그린 권오송의 거대한 수묵화 <일식(日蝕)>이 눈에 들어온다. 이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폴 포트 정권이 저질렀던 킬링필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벽면에 걸린 강요배의 <불인(不仁)>은  4·3의 목격자로서 세월을 품고 서있는 거대한 팽나무와 그 주변의 풍경을 할퀴듯 스치는 칼바람을 통해 자연과 인간사의 냉혹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주최측은 전시 주제어인 트라우마 앞에 ‘포스트’를 붙였다. 이는 특정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에 대한 논의를 새로운 차원의 담론으로 이끌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광폭의 현장을 겪은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라진 현실에서 그 후손들에게 남겨진 집단적 트라우마 대한 논의가 역사적 맥락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중 하나가 예술의 치유적 기능이다. 예술은 특정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발생된 개인 혹은 집단의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전쟁, 학살, 강제노역, 기아, 고문, 처형으로 인권이 유린되어온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예술의 사회적 실천과 소명에 대한 물음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예술의 사회적 실천 방식은 억압과 폭력의 현실에 대한 서사적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특정 사건을 기록하여 폭로하고 고발하는 예술가의 태도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정보시대가 심화되면서 예술은 폭력과 잔혹의 역사를 단순히 기술하는 차원을 넘어서 있다. 구글과 유튜브는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장면들을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실천 방식은 다양한 형태의 도상과 어법 그리고 심리학적 연구결과들을 통해 실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술의 치유적 기능 역시 새로운 차원의 주장들로 규정되고 있다. 가령 미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저서 <추의 역사>를 통해 인간은 예술이 시도하는 ‘추의 표상’을 통해 그것을 떨쳐 버리려는 심리적 경험을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그로테스크하고 혐오적인 그림을 ‘추의 미학’의 범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는 심리적 역설의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정신분석학자의 한사람인 자크 라캉 역시 ‘사후성’ 개념을 제시하며 ‘하나의 사건’은 후에 일어나는 ‘다른 하나의 사건’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예술작품은 관객에게 하나의 기호처럼 다가온다. 폭력적인 형태나 거친 터치의 이미지 앞에서 관객들은 그림의 의미를 새로이 해석해 보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술작품과의 만남은 ‘다른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나와 우리들의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해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이번 제주도립미술관의 <포스트 트라우마>는 광폭의 역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다른 하나의 사건으로 기능하고 있다.(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18.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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