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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알레고리 – 이상원의 회화

김영호

‘군중’의 알레고리 – 이상원의 회화    

김영호 (미술평론가)


군중도(群衆圖) 혹은 여가도(餘暇圖)라 명명 가능한 이상원의 그림은 선대 화가들이 일군 전통적 시각상(視覺象) 체계를 따르고 있다. 이른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리는 부감법(俯瞰法)이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풍경을 향한 시선을 좌우 공간으로 확장해 광각 이미지를 얻어내는 ‘파노라마’ 기법도 이상원의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이 두개의 기법은 그의 작업을 ‘전면회화’의 형식으로 이끄는 요소이자, 제3의 눈으로 대상을 재구성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비행하는 새의 날개 아래로 펼쳐진 세상,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낯설면서도 친근한 시각적 경험은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경험이 낯설면서도 친근한 것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여가를 즐기는 군중의 모습이 집단적이고 획일화된 풍경으로 읽혀지는 알레고리적 속성 때문이다. 작가가 선택한 부감법이 전통적 세계관을 넘어 자본이 주도하는 현대적 시대상을 반영하는데 쓰이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감법  
주지하듯 부감법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행려도(行旅圖)나 고지도(古地圖) 등에서 관례적으로 쓰이던 시각적 표상기법이다. 조선 후기에 와서 우리의 풍속이나 산수를 소재로 한 그림에서도 즐겨 채택되었던 부감법은 하나의 시점에서 고정된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원근법과는 달리 풍경 전체를 일관하면서도 개개의 대상들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묘사하는데 효과적인 기법이 되었다. 단원의 풍속도나 겸재의 <금강전도>에서처럼 전체와 세부의 모습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는 부감시점은 사물에 대한 시각적 심상, 즉 시각상 체계를 만들어 내면서 한국인들의 독특한 관조적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인상주의 이후 큐비즘이나 초현실주의 등이 동양의 부감법의 시각상 체계를 받아드리면서 서양미술사의 맥락을 굴절시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상원의 경우 부감법은 독자적인 특수성을 보이고 있다. 군중을 이루는 개인의 모습을 펼치듯 그리면서도 개개의 인물이 취하는 감정이나 심리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얼굴 표정이 생략된 익명적 존재로 자리하며, 따라서 주인공이 사라진 화면에는 전체로서 군중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자리를 대신해 자리를 틀고 있다.            


파노라마 
이상원이 채택한 부감법은 사진적 기술과 시점에 의해 새로운 조형적 체계로 거듭난다. 그는 일상적 이미지를 카메라로 채집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다. 이 때 사용하는 사진적 기법의 하나가 파노라마이다. 파노라마는 눈 앞의 풍경을 광각으로 포착해 펼쳐내는 기술로 과거에는 연속해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로 결합시켜 펼쳐진 풍경 이미지를 만들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발명된 후에는 카메라를 제자리에서 돌리며 풍경을 담아내는 차원으로 발전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스마트폰에 이 기능이 장착되면서 일상적인 기술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상원이 파노라마 기법을 회화에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시각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파노라마는 인간의 눈이 지닌 한계를 넘어 시선을 180도 이상의 광각으로 확대 연장하여 의도된 공간을 화면에 담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의 눈을 빌려 포착한 파노라마의 풍경과 인물들은 색다른 공간성과 시간성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상원의 2009년 작품 <어린이대공원>은 하나의 길을 전면에서 후면으로 스케닝해 단일 화면에 펼쳐놓은 인물 군상의 풍경이다. 화면에 그려진 이미지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왼쪽의 인물들과 오른쪽의 인물들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반대방향으로 드리워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점의 이동이 만들어 낸 효과다. 이렇듯 파노라마의 시선은 세상을 다차원의 세계로 안내한다. 물고기의 눈이 그렇듯 세상으로 열린 새로운 눈으로 포착되는 세계는 인간의 시선을 넘어선 영역으로 다가온다. 거기서 발생되는 것이 이른바 개념화된 시각상이며 그림으로 표상된 이 시각상은 우리들에게 세상에 대한 미적 경험과 인식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할 것이다. 


전면성  
이상원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조형어법으로서 전면성(全面性) 역시 부감법과 파노라마 기법에 의해 파생된 결실이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기법, 즉 올오버(all over)으로 설명되기도 하는 전면성은 역시 동양의 전통적 시각상 맥락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기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상원의 군중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각의 화면을 벗어나 주변 공간으로 시각상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중심과 주변의 개념에서 자유로운 군상들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화면에 끌어들여 동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이 때 관객들은 작가가 드러내는 세계가 현대인들이 누리는 획일적 소비문화의 행동임을 체감적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면성을 표현방식으로 삼아 그려낸 여가활동의 의미가 아이러니 하게도 개체의 자유로운 의지와 선택의 결과라는 차원을 넘어 균일한 가치를 지닌 소비문화 현상으로 역전된다는 것이다. 이 때 작가가 사용하는 전면적 어법은 이른바 알레고리(Allegory), 즉 ‘A를 보여주면서 B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렇듯 전면성의 어법은 이상원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군중
화가 이상원의 시선은 군중(群衆)으로 향해 있다. 여가(餘暇) 시리즈의 제작에서 비롯된 군중의 이미지는 개별적 삶을 떠난 존재에 대해 말해준다. 군중의 개념은 근대적 문화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우리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버스에서는 승객으로, 병원에서는 환자로, 군대에서는 병사로, 경기장에서는 관객으로 불리는 군중의 모습은 이처럼 타자화 된 개인의 집단적 초상이다. 이상원의 작품에 등장하는 군중 이미지의 특성은 패턴으로 무장된다는 것에 있다. 줄을 선 사람들, 수영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등산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비단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서 발견되는 것만이 아니다. 얼굴 없는 표정과 몸짓은 이러한 패턴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이상원은 군중들이 속해 있는 장소와 공간의 패턴을 차별적으로 포착해 내고 그것을 화면에 그려 냄으로써 집단화된 인간이 드러내는 다양한 속성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우리시대의 초상이며 특수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문화 행동의 얼굴이 된다. 가령 촛불 집회나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군중들의 초상 혹은 공공의 장소에서 여가를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아이콘으로 다가온다.         
   

내일의 작가
이번 성곡미술관이 기획한 ‘내일의 작가’ 초대전에는 이상원의 화력 초기에 해당하는 2007년에서 오늘에 이르는 10여 년간의 작품들이 네 개의 공간에 종합적으로 선보인다. 본관에 자리 잡은 첫 번째 전시장은 작가의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었는데 일상적 삶의 리얼리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작가의 시선이 진솔하게 반영된 것들이다. 2007년의 <수영장>, <한강공원> 그리고 앞서 언급한 2009년의 <어린이대공원> 등의 작품은 그가 일찍이 채택했던 부감법과 파노라마 기법에 기초하여 그린 것들이다. 초기 작업들은 군중을 수용하고 있는 공간과 구조물들이 기하학적 패턴으로 강조되고 있다. 한편 이시기의 몇몇 작품들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충실하게 적용하면서 형상 묘사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자신감은 빛의 효과와 물감의 물성에 천착하는 인상주의 화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일 공간의 두 번째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배치된 6개의 모니터 동영상 이미지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그래픽 작업과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반복적 노동에 대한 관심이 그의 여가 시리즈 작업으로 결합되면서 얻은 성과였다고 한다. 동일 전시장의 다른 공간에는 2015년에 제작된 작업들이 모여 있는데 <전쟁기념관>, <결혼식>, <행군>, <군인들>이라는 제명이 보인다. 이것들 대부분은 작가 자신의 결혼사진과 훈련소 시절에 얻게 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이전의 여가 시리즈가 집단적 소비문화의 단면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군중 시리즈는 학교, 군대, 결혼, 집단체조의 시각상을 여과 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관을 향해 오른편에 자리한 세 번째 전시장은 이상원의 트랜드라 할 수 있는 여가와 군중의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이번 초대전의 중심을 이루는 이곳은 2016년에 제작한 대작들로서 <군중>, <수영장>, <풍선>을 시작으로 2012년 이후의 여가와 군중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서 <노랑풍선>, <해변에서> 등의 대표작들이 걸려 있다. 여기서는 작가가 시도해 온 조형방식의 변화도 엿볼 수 있는데, 형상에서 추상으로의 조심스런 이동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채택한 주제로서 여가와 군중에 대한 표상과 개념 정립이 아직도 진행 중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술관 마당 건너에 마련된 네 번째 전시장에는 154장의 수채화 그림을 벽면 전체에 펼쳐놓았다. 수영장 풍경을 부감법으로 포착해 그린 무수한 표정의 인물들을 전면 회화의 기법으로 공간 위에 무한 확장해 놓은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파노라마의 방식으로 펼쳐놓은 54장의 수채화 작업이 사진 이미지로 출력되어 걸려 있다. 이들 이미지는 스키장 풍경을 담아낸 것으로 벽면을 따라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부감법과 파노라마 기법 그리고 전면회화의 형식들이 이 전시장에서 종합되어 전시장 공간 자체가 하나의 실험실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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