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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와 환상이 혼재된 풍경들 : 전흥수의 디지로그 포토(Digilog Photo)

김영호

실재와 환상이 혼재된 풍경들 : 전흥수의 디지로그 포토(Digilog Photo)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사진작가로서 전흥수의 위상은 전통적인 사진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찾아 끊임없는 실험을 수행해 왔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실험과 모색의 속성은 ‘사진의 종말’을 주장하는 작금의 세태에서 우리가 그의 작업에 주목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된다. 우리는 그에게 묻는다. 위기와 전환의 시기에 사진은 무엇을 하는가? 시각이미지의 지평 위에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해체되고 디지털 미디어가 혁명의 견인차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전흥수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하다. 
  
“나의 작업은 사진이래도 사진이 아니라고 해도 별 상관없다. 나는 사진을 베이스로 한 이미지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며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표현가능성을 최대한 실험하고 확장하고 표현하고 있다.” (2006, 작가노트)  

1989년 도쿄에서의 첫 개인전에 컬러사진 시리즈를 발표한 이후 한동안 전흥수가 천착해 온 실험은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회화적 프로세스를 융합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경향을 ‘빛으로 만든 다색판화’라 명명하고 이미지의 현상 과정에 표현 행위를 추가하는 작업을 해 왔다. 촬영된 하나의 이미지를 여러 장의 필름으로 떠내어 각각을 유성 붓으로 채색 한 뒤에 다시 한 장의 이미지로 합쳐 현상하면 원판이 마무리 되는데, 이를 인화하여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암실에서 크로모제닉 재료와 프로세스, 이른바 C-Print로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은 우연적이면서도 치밀한 계산이 요구되는 것이어서 청년 작가의 창작 본능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빛과 물감 그리고 드로잉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태어난 컬러 이미지들은 사진적 기억을 품으면서도 붓질과 물감의 질료감에 의해 전에 느끼지 못했던 풍요로운 물성과 리얼리티를 보여주었다. 1991년에 제작된 <해바라기(sun fiower)>나 드럼통을 표현한 <풍경(landscape)> 시리즈는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 예술의 경향도 변하게 되는 것일까. 2000년 이후 전흥수의 작업은 약진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기세에 힘입어 전과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게 된다. 2003년 7회 개인전에서 선보이게 되는 그의 변화 양상은 향후 작가의 트렌드로 알려지게 될 도시와 산을 주제로 삼아 본격화 되었다. 작가 스스로 ‘터닝 포인트’라 명명한 이 시기의 작품은 창작의 공간이 암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옮겨왔다는 것 외에도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창작의 눈과 정신의 변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사진에 디지털 기술을 추가하고 거기에 회화의 옷을 입힘으로써 사진예술의 가능성을 한 단계 높이는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작업 경향은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디지털 페인팅(Digital Painting)’으로 불리게 되는데 전흥수는 이러한 경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사진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그의 디지털 페인팅은 초기의 작품에서 배제되었던 사진적 본성으로서 ‘현장성’과 ‘기록성’ 모두를 회복시키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2017년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디지털 페인팅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로 도시와 산 그리고 꽃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드로잉적 표현이 절약되고 색의 표정과 물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지닌 색채와 질감의 무한한 변용 가능성은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작가의 손끝에서 숙성되고 어느덧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수렴되고 있다. 부식 동판화에서 얻을 수 있는 물감의 요철, 강렬한 색채의 보색 대비효과, 컴퓨터 픽셀이 발휘하는 빛의 투명성과 이미지의 변용은 지층처럼 펼쳐진 레이어의 층과 더불어 풍요로운 화면 공간을 연출해 낸다. 작가는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의 조형적 가능성을 도시와 산 그리고 꽃의 이미지에 접목해 예술의 두 속성인 형식과 내용 사이의 연계적 소통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천의 얼굴을 지닌 산의 변화무쌍한 표정은 디지털 미디어의 무한한 변용 효과에 힘입어 계절과 시간의 이미지로 실현되고, 천년 세월을 품은 도시의 고색창연한 창문과 벽면은 어느덧 빛의 황홀감을 보여주는 풍경이 된다. 순수조형의 세계와 디지털사진 미디어의 융합은 실재와 가상의 접점에서 꽃이 되어 춤을 추며 보는 이들에게 심미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디지털 미디어는 시각예술의 경계를 제로 지점으로 되돌려 놓고 있다. 그것이 혁명의 기술인 이유는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나 ‘트랜스 휴먼(Trans human)’처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미디어는 이 무한의 가능성으로 인해 실존적 두려움으로 값을 치루게 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고가의 출력장비와 현상약품 그리고 복잡한 인화방식으로부터 사진을 해방시켰지만 그것이 미래의 무릉도원에 대한 약속은 아닐 것이다. 작가 자신의 고백처럼 선택과 표현의 무한한 자유 앞에서 레이어 작업은 미궁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작업의 매력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원하는 이미지가 일정한 형식이 되기 위해 인고의 과정과 전략이 필요하다. 실험과 모색을 업으로 삼아온 작가의 발언은 그의 평소 언변처럼 역설적이다. 

“디지털 페인팅은 컴퓨터와의 전쟁이며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전투를 벌인다. 일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바리에이션 실험은 마우스를 잡은 손을 마비시킨다.” (2017, 작가와의 대담)

전흥수의 디지털 페인팅은 사진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사진이 지닌 본성을 베이스로 삼아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통해 그 영역을 무한 팽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의 작품들은 21세기가 지향하고 있는 디지로그(Digilog)의 문화현상과 그 대응에 관한 하나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그것들은 단순히 디지털 리터치 프로그램들을 활용해 만든 회화적 이미지의 차원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전흥수의 작품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의 정서 융합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의 시대에 부응해 ‘감성적이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보는 이들에게 선사한다. 우리가 이 점을 인정한다면 사진의 역사에서 그의 자리가 명확히 주어질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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