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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휴먼, 유토피아를 향한 꿈

김영호

트랜스 휴먼, 유토피아를 향한 꿈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사가)

화가 기옥란이 2010년 이래 천착해 오고 있는 화두는 ‘트랜스 휴먼(trans human)’이다. 이 화두는 전자회로처럼 복잡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접속하기 위한 하나의 키워드로 작동한다. 본래 트랜스 휴먼이란 인공지능이나 기계 장치를 빌어, 인간이지만 인간이상의 능력을 갖는 중간적 인간을 칭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사는 인간의 미래를 유토피아의 세계로 안내하는 도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화두를 통해 현세적 인간의 지적 혹은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인간형을 꿈꾸며, 그 표상을 캔버스 위에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숙성시켜 왔다. 화가에 있어 트랜스 휴먼은 디지털 혁명과 함께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성찰이자 관습에 길들여진 삶의 굴레를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자구적 노력을 암시한다.
 
기옥란이 실험하는 독자적인 조형방식은 자신이 설정한 트랜스 휴먼의 개념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캔버스에 그려진 변형된 얼굴이나 해체되고 재구성된 신체는 신경계와 기관 그리고 근육의 이미지를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혹은 기계적 패턴의 조각들과 합성해 놓은 것이다. 이 때 작가가 시도하는 조형방식은 특정 경향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고 거침이 없으며 자유분방하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제한해 보자면 몇 개의 묶음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유기적 생체기관을 연상케 하는 신체의 다양한 형태를 자유분방한 터치와 색채 그리고 강한 선율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물의 외상을 복수 시점에서 바라보고 기하학적 형태의 색면으로 분할한 후 다시 봉합적으로 재구성하는 이른바 입체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컴퓨터의 자판이나 부품 따위를 오브제로 사용해 디지털 시대의 물성을 생경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조형방식에 의해 완성된 인물들은 자유롭게 변형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그림 앞에 선 관객들은 트랜스 휴먼의 개념과 그것의 시각적 변용을 통해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할 것이다. 과연 인공지능이나 기계장치로 보완된 트랜스 휴먼이 인간세계를 유토피아(utopia)로 이끄는 개념인가? 트랜스 휴먼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결론이 유보된 작금의 현실에서 화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화두를 어떻게 예술적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가. 트랜스 휴먼의 개념을 시각이미지로 전환할 때 그림에 거는 작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도 제기될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작가가 선택한 화두가 21세기의 지성계에서 뜨거운 감자처럼 부상하고 있는 담론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질문의 배경에는 동시대의 철학적 담론을 작품세계에 끌어안고 있는 작가의 용기에 대한 찬사의 의도 역시 내포되어 있다 할 것이다. 

작가를 향한 질문에 답변을 스스로 내리기 위해 우리는 다시 트랜스 휴먼 개념의 창시자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에게 의지해야 할 것 같다. 아탈리에 따르면 트랜스 휴먼은 단순히 디지털 시대의 인공지능이나 기계장치를 빌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물질적 존재로서 인간상만을 일컫지 않는다. 그는 해답을 문명사적인 맥락에서 인류 역사의 근간을 이루어 온 유목주의, 즉 노마디즘에서 찾는다. 인류사의 시초부터 인간의 삶을 이끌어 온 노마디즘을 내세워 21세기 첨단 정보화 사회와 미래를 개척해 나갈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조명하고 있다. 아탈리는 디지털 네트워크 정보시대에 접어들어 노마드적 가치와 정착민적 가치를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새로운 인간형을 선언했다. 이른바 정보통신 기기로 무장하고 디지털 공간에서 전세계를 떠도는 새로운 형태의 유목민을 트랜스 휴먼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트랜스 휴먼은 정착민과 유목민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 이중성의 장점들을 받아들여 자기 안에 내면화 하는 사람들이다. 정착민인 동시에 노마드인 디지털 정보 시대의 트랜스 휴먼은 자신과 다른 문화와 인종 그리고 서로 다른 종교와 신념에 속한 사람들일 지라도 그들과 함께 침묵하고 나누고 경청할 줄 아는 자들이다. 


기옥란의 작품에서 트랜스 휴먼의 개념에 대한 해석의 방식은 이제 상징과 은유의 차원으로 펼쳐진다. 캔버스 표면에 등장하는 변형된 얼굴이나 파편화된 신체 이미지들은 디지털 시대의 기호이거나 디지털 정보 미디어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다. 기옥란이 채택한 화두로서 트랜스 휴먼의 이미지는 때로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현실과 일상 그리고 그 안을 사는 인물들의 모습이 언제나 부정적이며 암울한 세계만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징적 기호들의 배면에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로서 회화적 리얼리티가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점·선·면 그리고 색채 등의 조형언어로 표현된 시각적 이미지들은 모니터 공간에서의 디지털 이미지와는 달리 그 자체가 관객들에게 미적 경험을 위한 조건들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적 리얼리티는 실재와 환상이 뒤얽혀 있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실감나게 반영한다.   

작가는 이렇듯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차원의 기운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소명에 회화적 열정으로 응답하고 있다. 예술의 이름으로 채택된 트랜스 휴먼의 세계는 우리의 삶에 사랑, 죽음, 행복, 희망, 생명 따위의 가치로 제시된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트랜스 휴먼의 세계를 시각적 조형방식으로 연구하는 실험실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기옥란은 자신의 작품이 지향하는 미래적 가치를 “인간과 인간의 화해, 도시와 자연의 화해, 인간과 자연의 화해”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작가는 자신의 캔버스에서 이루어지는 점·선·면 그리고 색채들의 만남은 결국 “인종과 인종의 만남, 문명과 문명의 만남, 이념과 이념의 만남”을 위한 시각적 장치로 드러나길 바란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트랜스 휴먼이라는 주제를 자신의 예술적 화두로 삼고 있는 기옥란은 캔버스라는 평면공간과 디지털 정보공간 사이의 경계 위에 서있다. 이 두 공간 사이의 공통점은 실재와 가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데에 있다. 실재와 가상을 넘나드는 노마드적 세계는 물리적 공간적인 장소 이동의 상황을 넘어 있다. 장소 이동이 없이 캔버스와 노트북 상의 이동은 물리적 공간적 경계를 넘어 자유를 구가한다. 구획되고 억압된 삶의 경계를 넘어 유목적인 소통의 세계는 현대인을 구속하는 억압적 코드를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노정을 일구어 내려는 시도이다. 타자와 공존할 줄 아는 유목적 인간관계에 대한 미덕이 기옥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옥란은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서 삶과 예술에 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화가로서 트랜스 휴먼의 개념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옥란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박사과정을 마쳤고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예술지평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의 현대미술을 선도해 온 그룹 <에뽀끄>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스스로 동시대미술의 맥을 미래로 이끄는데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공모전에서의 화려한 수상경력이나 미술상은 작가의 충실한 과거의 노력을 증거해 준다. 그리고 30회가 넘는 개인전과 35회의 국제아트페어를 오가는 작가의 왕성한 전시활동은 아직도 그녀의 예술노정이 열정 속에 진행 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특정한 장르나 형식에 자신을 고착시키지 않고 구획되지 않는 경계를 넘어선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 역설적이고 매력적인 예술적 노마드의 영토에서 작가가 향후 어떻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심화해 나갈지 사뭇 기대가 된다. (2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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