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017년 봄 시즌 추천 전시 : 덕수궁 미술관의 이집트 현대미술전

김영호

2017년 봄 시즌 추천 전시 : 덕수궁 미술관의 이집트 현대미술전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무함마드 리야드 사이드, 20세기 문명, 1970년대, 나무판에 유채, 123x173cm, 카이로이집트근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부터 들려오는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4월 28일-7월 30일) 전시 소식이 봄날의 꽃향 처럼 황홀하다. 아직도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이집트 미술이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된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전시물이 고대왕국 파라오 시대의 유물이 아닌 20세기 현대미술품이라는 점이 파격이다. 이집트의 고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환상의 고리가 초현실주의라는 미술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주최측은 이 전시회의 주 제목을 ‘예술이 자유가 될 때’로 정했는데 이 또한 전설적인 큐레이터로 알려진 하랄트 제만이 기획한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를 연상시키면서 현대 미술사의 궤적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선 이 전시회의 관람 포인트는 전시물이 구미지역이 아닌 아프리카 대륙의 미술이라는 점이다. 유럽 미술사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비서구권 미술은 여전히 낯선 것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기원과 전개 과정에서 유럽에 젖줄을 대어 왔고 전후에는 미국이 그 역할을 대신해 왔다. 그 탓에 구미의 미술양식은 우리 현대미술의 원형처럼 여겨지는 바가 많았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섰을 때도 그 접근방식은 구미지역의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극복의 양상을 띠고 있었으니 구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따라서 이집트 현대미술전은 우리 대중들에게 서구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비서구권의 미술에 대한 다각적 논의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두 번째 주목할 것은 이번 전시가 이집트의 미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어버리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166점으로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30여년의 시기에 제작된 것들이라 한다. 소위 이집트의 모더니즘 시대에 그려진 작품으로 이 시기의 사회적 변화와 그 안에서 발생했던 대중에 대한 차별과 억압 등의 주제를 담은 것들이 많다. 미지의 영토에서 날아온 미술품들이 서구권이 아닌 비서구권 지역에서 전개되는 정치사회적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들이라는 것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구촌 문명의 한 발상지이자 유럽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집트가 겪었던 근대사의 수난과 상처가 이 전시회에 담겨있다.          

이번 전시회에 주목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이집트 모더니즘 미술의 중심이 초현실주의로 불리우는 국제적 경향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현실에 세워진 이집트의 고대 미술과 20세기에 등장한 초현실주의 미술은 문화사적 맥락에서 자연스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대량학살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유럽의 중심 파리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 미술은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하고 자유를 쟁취하기를 바라는 예술가들의 몸짓이었다. 이러한 초현실주의 운동은 문학과 미술의 주역들을 통해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이집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랑스에 유학중이던 이집트의 시인 조르주 헤네인은 앙드레 부르통과 교류하였고 귀국 후 이집트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운동이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꿈이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그 욕망의 현실적 제약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겨난 심리적 완충장치이듯 초현실의 세계는 현실의 리얼리티를 먹고 자란다.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은 국내의 정치 사회적 현상으로서 차별과 억압에 대한 발언을 시도하면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비현실적 풍경을 표현의 원리로 삼으면서도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은 리얼리스트로서 현실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인간의 자유와 감정을 제한하려는 규율과 제도의 권위에 저항하려는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환상의 어법을 빌어 일상과 빈곤과 억압의 세계를 묘사했다.     

주최측은 덕수궁관 전관의 네 전시장을 시기별(1938-1965)로 맞춰 다섯 개의 세션으로 구분해 놓았다. 1부는 유럽에서 시작된 초현실주의가 이집트로 전파되는 과정과 영향을 미술사적 시각에서 정리한 것이다. 2부는 이집트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그룹인 '예술과 자유 그룹'을 소개하고 있다. 3부는 이집트 초현실주의 사진을 선보이는데 이중노출, 뒤틀림, 조합 인쇄 및 포토몽타주와 같은 사진 기법들로 구성된 환상적 작품들이다. 4부는 이집트 현대미술 운동의 확산에 중대한 역할을 한 ‘현대미술그룹(1946-1965)’의 족적에 초점을 맞춘다. 5부는 이집트 초현실주의 이후의 미술을 소개하고 있는데 1965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회변화를 반영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집트 초현실주의전은 구미지역의 미술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의 시선을 비서구권 미술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보물창고로 남아 있는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의 미술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근동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나름의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본다. 바야흐로 대지가 새로운 생명의 돌기들을 밀어내는 봄이다. 환희의 계절인 동시에 잔인한 계절에 초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살았던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들 자신을 성찰할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한국박물관협회 웹진, 2017.4)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