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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1976

김영호

시간여행 1976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우리의 1970년대는 장발과 미니스커트의 시대였다.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일어나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갔던 히피문화가 팝음악과 함께 들어오면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청년 사이에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안정된 권력기반을 원했던 유신정권의 입장은 달랐다. 정부는 1973년 「경범죄처벌법」의 퇴폐풍조 항목에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추가했으며 1976년 이후 대대적 단속을 실시했다. 장발의 단속 기준은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머리가 옷깃을 덮는 것이었다. 미니스커트의 경우 무릎 위 20cm였다. 장발로 적발되면 연행되어 대개 각서를 쓰거나 구내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은 후 풀려났다. 버틸 경우 즉결재판에 넘겨졌다. 미니스커트 단속에 걸리면 “긴 치마 입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길 한가운데 서 있어야 했다. 1988년 개정으로 단속 대상항목에서 삭제되기 전까지 우리 청년세대 대부분은 잠정적 범죄자였다. 

  ‘금지의 시대’에 단속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장발과 미니스커트만이 아니었다. 청년세대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가요와 팝송 수백편이 금지령 철퇴를 맞은 것이다. 1975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이장희의 <그건 너>, 송창식의 <왜 불러>, 김민기의 <아침이슬>,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배호의 <0시의 이별> 등 225곡을 방송 금지곡으로 결정했다. 금지곡 선정이유를 보면 ‘반말을 했다’(왜 불러), ‘남에게 책임전가’(그건 너), ‘물고문 연상’(물 좀 주소), ‘통행금지 위반’(0시의 이별) 등이다. 우리의 1976년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흑석동 캠퍼스 언덕에 병풍처럼 세워진 「서라벌홀」은 남산을 휘돌아 밀려오는 북풍의 냉기가 직접 부딪치는 건물이었다. 1980년대가 되면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얼룩질 기와지붕 정문과 영신관이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우리 76학번에게 6층 2604 실기실은 고교의 딱지를 떼고 세상에 나온 순수한 영혼을 정비해 줄 해방구였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멋진 교훈은 우리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예술의 자유를 갈망했던 것은 삶의 자유가 억압되어 있는 1970년대 현실에 기인한 것이었다. 야간통행, 대중가요, 교복과 과외 그리고 해외여행마저 제한되었던 금지와 통제의 시대에 우리들의 4년은 그렇게 영글어 갔다.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76학번 학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회를 만들기로 했다. 장소는 제주로 이주한 동기의 「갤러리노리」로 정했다. 예비모임을 갖고 보니 옛 동기들의 소식이 줄줄이 꿰어진다. 서울지역의 중학교에 교장으로 재직 중인 친구만 세 명이다. 왕년 과대표의 기억에 따르면 회화과 정원 40명 중 24명이 순위고사를 치루어 그 중 21명이 합격했다 한다. 과반 수 이상이 교사가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는 동기 넷을 포함하면 숫자는 더 불어날 것이다.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저항적 무의식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예술을 배웠던 우리들의 삶은 다채로웠다. 존엄한 교육의 길로 들어서는가 하면 동인들과 그룹을 형성해 집단적 미술행동을 전개했다. 방황과 고독이 불가피한 창작세계에 몰입함으로써 자신의 실존적 자유를 구가하는 삶도 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것이 의미 있지만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인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더욱 구가하는 일, 자연에 순응하는 일, 산하를 답사하는 일, 그리고 제자와 자식들에게 삶과 예술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일이다. 신화의 섬 제주의 ‘시간여행 1976’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의미는 이것이 아닐까. 

한라일보 특별기고 2017.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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