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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정원에 초대된 의자들

김영호

감각의 정원에 초대된 의자들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배수경은 의자를 그린다. 바로크식 유려한 선율의 철재 의자에서부터 근엄한 볼륨의 소파에 이르기 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표현 방식 또한 다채로워서 긋고, 뿌리고, 찍어내며 덧칠하는 행위를 거침없이 화면에 들여온다. 여기다 화려한 색채 까지 합세하니 그의 캔버스는 마치 한바탕 벌어진 축제의 마당처럼 활기차다. 무료한 일상과 정형화된 규범으로부터 일탈해 본능과 자유의 충동을 따르는 축제의 마당이다. 아라베스크 무늬와 직선이 어우러지고 격자무늬 바탕 위에 곡선들이 오버랩 되어 춤춘다. 배수경의 의자들은 캔버스의 제한된 공간속에서 인간의 삶과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보는 이들에게 선사한다. 


배수경의 의자는 초상화처럼 다가온다. 굳이 설명하자면 의자의 초상이며 달리 말하자면 의인화된 의자의 초상이다. 대개의 경우 캔버스에는 하나의 의자가 등장하며 화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두 개의 의자가 오버랩 되어 있을 때에도 각각은 화면의 중심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을 잘 드러낸다. 물론 의자의 표정은 의인화 된 것으로 인간의 서정성을 비추어 준다. 아라베스크의 명랑함과 직선의 강직함 그리고 격자무늬의 질서와 색면의 육중함 따위가 차별화된 정감이다. 각각의 표정들은 의자가 지닌 고유한 양식의 계보를 통해 나름의 역사성마저 보여준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의인화된 인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배수경의 의자그림은 환희의 정원 위에 표상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물론 작가 자신의 것이다. 이는 작가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즉 세계관일 것이다. 세상사에 어찌 환희와 즐거움만이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추억하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현재의 삶은 언제나 고난한 것이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과거는 즐거운 추억으로 되새겨진다. 미래가 있어 되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추억은 생의 환희가 되어 우리와 함께 한다. 배수경의 의자는 이렇듯 자신이 살아온 기억의 고통에 대한 환희이자 역설의 기쁨이다. 그녀의 의자그림은 시련을 견디고 양지바른 언덕에 서 있는 현실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배수경은 이화여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공학도로서 디지털 미디어를 다루던 그녀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화가로서 인생 노정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래 30여 년 동안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다 한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미술대전이나 아트페어를 통해 작가로서 작품 발표의 기회를 갖기 시작했다. 예술의 전당 작가스튜디오에서 공동 작업을 통해 외연을 넓혔고 급기야 주변의 권유로 첫 번째 개인전도 열었다. 예술의 전당 작가스튜디오에는 왕년에 국내 유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거나 외국의 대학에서 유학한 작가들까지 입주해 있다. 창작의 열기가 만만치 않은데다 경쟁적 분위기는 대학 실기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는 예술의 전당 작가스튜디오 선정 작가로 뽑혀 열게 된 ‘수상작가 기획초대전’이니 작가로서 공식적 첫발을 내딛는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배수경의 그림에 대한 태도는 나름 명확하다. 이른바 기쁨으로서의 미술이 그것이다.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림이란 ‘나에게 위안과 기쁨을 주는 일’이며 전시회란 그림이 선사한 이러한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물론 유의미한 것이다. 신념은 곧바로 형식과 방법을 만드는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태도는 배수경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근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미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주장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기원에서는 주술로 이해되기도 했고 시대가 바뀌면서 역사나 사건의 기록으로 인식되기도 했으며 현실에 대한 발언과 비판의 도구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근대시대로 들어와 자아의 의미가 중요해 지면서 예술은 스스로의 미적 정감을 표현하는 창조적 활동이 되었다. 기쁨, 즉 쾌에 대한 예찬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이다.     

배수경의 그림은 환희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선과 색채에 대한 즐거운 탐구의 결실이며 대개의 작가들이 주장하는 구도자적 고행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환희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림을 대하는 태도와 그리기 행위가 자신에게 환희와 기쁨을 준다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뻐하고 즐거워 하지만 동시에 분노와 슬픔 속에서 살아간다. 작가가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에 구가하는 것이 환희와 기쁨이라면 거기에는 소통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작가가 캔버스와 대면하고 물감을 매개로 그리기 행위가 전개되는 순간에 만나게 되는 감정이 환희와 기쁨인 것이다. 정원에 핀 꽃이 그 자체가 기쁨이 될 수 없듯이 의자는 사물일 뿐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비로소 내게 의미로 다가오는 것처럼 의자는 작가가 실행하는 조형방식을 통해 새로운 환희의 기호가 되는 것이다.  

배수경의 의자그림은 순수한 조형적 표상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순수한 조형적 표상이란 색과 점과 선의 조형이다. 물감을 섞지 않은 채 물감 통에서 붓으로 떠낸 물감이 캔버스위에 올려진다. 놀이처럼 진행되는 이 천진한 작업을 주도하는 작가의 행동은 무계획적이며 즉흥적이라 한다. 밑그림이 없이 그어진 붓자국들은 모래 위를 낙서하는 어린이의 심사처럼 천진하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은 절약되고 절제된 선획의 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작가의 훌륭한 능력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얻어진 선들이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일구어낸 감각적인 선들이다. 밑칠된 색면과 그 바탕 위를 나는 듯 그어진 자유분방한 드로잉들은 어느덧 특정 의자의 세부 조형을 연상시키고 색채의 조화는 화폭에 환상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배수경은 자신의 작품에 담긴 이러한 환희의 정감을 캔디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라는 이국적 당절임 과자가 시나리오로 등장한다. 달콤한 초콜릿과 바삭한 피스타치오가 조합을 이룬 캔디는 미각뿐만 아니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식품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그림은 장미향 젤리에 슈가파우더가 입혀진 과자를 닮아있다. 때로는 초콜릿 옷을 더해 달콤함의 강도를 높이는 젤리와도 같아 보인다. 그것은 환상의 정원에 피어나는 꽃처럼 절약되고 강한 감각의 선율로 장식된 세계를 보여준다. 

배수경의 캔버스는 마치 몽환의 정원처럼 환상적인 색채와 선율로 가득하다. 그것이 보는 이들에게 삶의 기쁨을 받아드리는 감각의 돌기를 열어 주며 미래의 삶에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2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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