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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상의 내면 들여다보기- 이상민의 유리 조각

김영호

만상의 내면 들여다보기 
이상민의 유리 조각 

김영호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I. 스무 번 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이상민은 전시 제명을 ‘만상(萬象)의 내면-들여다보다’로 정했다. 프랑스에서 오브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후 유리를 표현의 매체로 삼아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실험의 세월 2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붙여진 제명이다. 이 전시 제명은 작가가 최근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암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조형 형식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제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러한 작가의 제명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그의 유리 조각을 해석하는 기준은 다음의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만상의 내면에 대한 직관을 시도하는 작가의 태도이며 다른 하나는 만상의 내면에 대한 직관을 작품으로 실행해 나가는 방법론이다. 전자가 작가가 취하고 있는 예술 의지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그 예술 의지를 드러내는 조형 형식에 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II. 이상민은 자신의 예술적 탐구 대상을 ‘만상의 내면’이라 규정하고 있다. 아마도 안성의 야산 자락에 작업실을 짓고 자연과 생태를 관찰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새로 얻은 화두일 것이다. 아니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맞아 예술가로서 취하게 된 존재론적 소명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상이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준말로 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의 형상이다. 구체적인 물상을 재현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전통예술의 층위에서 생각할 때 만상의 내면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만상의 내면이란 어느 특정한 대상이 아닌 온갖 사물이 지닌 보편적 물상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갖 사물의 물상을 드러낸다는 주장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성찰의 화두로 오래전부터 선택한 것이 ‘물’이기 때문이다. 물의 상은 공기나 안개처럼 고정된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스스로 형을 갖추거나 상황에 따라 변모할 따름이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이고 보면 물에 대한 성찰은 나름의 장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의 표정을 통해 만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하는 것이다.   

이상민이 주장하는 만상론을 받아드릴 때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주지하듯 만상이란 특정한 대상물이자 동시에 그 특정한 대상을 초월한 보편적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상이란 도기(陶器)나 자기(瓷器)와 같이 세상에 있는 온갖 사물의 상이며, 존재의 본질적 양태를 지닌 상이다. 그 만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곧 작가가 존재의 본성을 바라보는 태도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세잔느나 몬드리안 같은 화가뿐만 아니라 로댕이나 브랑쿠지 같은 조각가로 대변되는 모더니스트들이 추구했던 본질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미술사적 맥락에서 이상민의 유리 조각은 사물의 외관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의 법칙성이나 물질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에서 낯선 것은 아니다. 작가의 예술 의지는 만상의 개별적 형태에 근거하면서도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유기적 존재로서 사물을 바라보고 인식하려는 태도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II. 이상민이 시도하는 만상의 내면에 대한 성찰은 유리라는 매체를 통해 작품으로 구현된다. 달리 말하자면 만상의 근원적 물질의 하나로서 물의 속성을 유리라는 독특한 매체와 조우시킴으로써 만상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탐구를 시작한 것이다. 부드럽고 유기적인 물과 단단하지만 깨지기 쉬운 성질을 지닌 유리의 만남을 시도하는 작가의 작업은 매우 흥미롭다. 물과 유리 모두는 평면으로 존재할 때 비추어진 빛 대부분을 투과시켜 버림으로서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물과 유리는 그 스스로 상을 갖추지 못하며 주변적 조건에 따라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가령 물은 영하의 온도를 머금음으로써 얼음으로 변모하거나 외부 자극에 의해 파장을 만들어 내고, 유리 역시 창문이나 병 혹은 렌즈 따위의 몸을 통해서 특수한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물과 유리의 차이나 공통분모를 이용해 만상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표현해내는 자신의 예술적 과업을 이루어내려 하는 것이다.  

이상민이 지향하는 만상의 내면에 대한 조형적 탐구는 12mm 두께의 유리판 배면에 홈을 파내고 그 표면을 연마하는 작업과정으로 진행된다. 다양한 수치의 다이아몬드 사포(Diamond Sheet)를 이용해 유리의 표면을 깎아내는 일은 집중력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노동이다. 유리의 판면에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해 그라인딩 작업 과정에서 생기는 열에 의한 파손을 방지해야 하는 일은 기본이다. 사포에 의해 깎이는 면의 각도가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손의 촉각과 결과를 예측하는 감각의 노하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연의 효과로 파생되는 기대감이 즐거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나 작업의 결과가 물의 특성이나 만물의 상을 드러내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저 우연의 효과를 즐길 수만은 없는 노릇일 것이다. 이 모든 조형 작업에서 작가가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비물질의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빛이다. 이상민의 유리 조각이 완성된 이후 나름의 형태를 갖춘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유리의 표면에 투사된 빛의 효과에 따른 것이다. 작가의 유리 조각을 둘러싼 형식 논리는 결국 빛의 조형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IV. 이상민의 유리 조각은 형상의 부재 속에 비쳐진 존재의 실상을 드러내는데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부재의 존재성을 드러내는데 기여하는 것은 유리의 표면에 반응하는 세밀한 빛이라 할 수 있다. 깎인 유리면에 투사 혹은 반사되는 빛의 양에 따라 우리의 망막에 신비로운 일루전을 만들어 낸다. 직진하는 빛의 일부는 깎인 유리의 요철 면에 의해 난반사되며 투사해 유리면 뒤쪽의 벽에 그림자를 남기고 이 과정에서 허상과 허상의 그림자라는 이중의 일루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일루전 사이에는 미묘한 공간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유리 조각을 품은 액자 너머로 투명하게 드러난 벽면의 물성이 이 두 개의 일루전에 현실 공간의 존재성을 불어넣으면서 감상자의 시각 체험은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유리 위에 만들어 놓은 물상이 물의 그것과 오버랩 되도록 하는 것은 작가의 희망사항이다. 그리고 유리 조각 안에서 벌어지는 빛의 작용이 사물의 존재성을 인식케 하는 물리적 요소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우리가 세상 만물과 만나게 되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작가의 노력은 과학적 토대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만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빛에 의해 만들어 진 미묘한 일루전과 공간의 구조를 본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관조와 직관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다섯 개의 감각기관 너머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상민의 유리 조각을 ‘형상 이전의 형상, 형태 너머의 형태를 품은 몽환적 풍경’이라 보는 어느 비평가의 주장은 합당하다는 생각이다.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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