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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박물관·미술관 법체계 및 정부조직의 이원화 문제

김영호

한국 박물관·미술관 법체계 및 정부조직의 이원화 문제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1. 서언
    한국의 뮤지엄 정책은 정부가 추진한 1,000관 시대라는 목표를 달성한 2014년(등록뮤지엄 기준) 2015년도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의하면 2014년말 현재 뮤지엄 수는 1,011관이며 그 중 박물관이 809관(국공립 371, 사립 336, 대학 102), 미술관이 202관(국공립 51, 사립 140, 대학 11)으로 되어 있다.

 이후 제2라운드를 맞고 있다. 뮤지엄의 양적 증가를 정책의 우선순위로 정했던 과거를 넘어 질적 모색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에서 뮤지엄 정책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의 뮤지엄 정책의 대계를 위해 시급하게 정비해야 할 문제가 관련법에 명시된 박물관(museum)과 미술관(art museum)의 법체계 이원화에 따른 혼란의 극복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견을 개진해 왔다. 김영호, 「한국뮤지엄 정책에 대한 비판적 소고」, 2015 영월국제박물관포럼, 2015. 김영호, 「한국 미술관정책의 현황과 과제」,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7권 제2호, 현대미술학회, 2013. 채연선,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효과와 과제」, 예술문화융합연구, 제2호, 중앙대학교 예술문화연구원, 2014.  

 하지만 정부기관에서는 이렇다 할 구체적 대응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 박물관과 미술관의 분리 체계는 현장과 제도 그리고 학계의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하나의 사례가 기존의 ‘한국박물관협회’와 별도로 2016년 새롭게 출범한 ‘한국미술관협회’ ‘한국미술관협회’는 2005년 설립된 ‘한국사립미술관협회’가 국립, 공립, 사립미술관을 포괄하며 확대된 조직이다. 설립근거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34조 1항 “문화관광부장관은 ... 필요한 경우에 박물관협회 또는 미술관협회의 법인 설립을 허가할 수 있다”에 있다. 
다. 

  미술사가로서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여기서 뮤지엄 단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발언을 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작금에 야기되고 있는 법체계와 정책 추진체계의 이원화가 한국의 뮤지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제 정점에 이르렀으며, 법제의 손질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관련 법제의 문제가 방치되면서 뮤지엄 관련 연구보고서나 학술논문들이 모순과 오류 투성이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에 따른 낯선 제안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 ‘박물관법’과는 별도로 ‘미술관법’ 제정에 대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술관의 미래는 박물관의 그것과 차원을 달리할 때 낙관의 세계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일까? 
          
2. 무엇이 문제인가 ?
     
  우리나라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라는 세계 박물관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법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법명이 고고·역사 중심의 박물관 정책을 극복하고 현대미술 중심의 미술관 진흥을 위한 지혜의 산물로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 여기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박물관과 미술관 법체계의 이원화는 우리나라 뮤지엄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조직의 이원화를 고착시키고 나아가 뮤지엄 정책의 비효율과 예산의 낭비 그리고 국제교류의 혼란과 다양한 뮤지엄 주체들 사이의 대립구조 심화 등의 문제를 야기하며 우리나라 뮤지엄의 지속적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왜 받는 것일까. ‘미술관을 박물관과 분리하여 규정하고 업무를 분장하는 것은 실무상 통계자료의 오류를 야기하고 결국 박물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박물관 정책의 결정·집행·평가로 나타나게 되며 전체 박물관 업무와 청책의 효율을 저하 시키는 배경이 되었다.’(채연선, p.211)는 지적은 이제 학계에서 상식이 되었다. “한국 박물관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무어라 명쾌하게 답할 수 있을까? 뮤지엄 관련 거의 대부분의 논문에 “여기서 박물관은 미술관을 포함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할 것임”이라는 표기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 것인가?  

  우리가 오늘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근간은 우리나라의 뮤지엄 관련 법제인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소명을 다해 부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정된 이래 20차례가 넘는 개정이 진행되면서도 근본적 문제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탓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년 정부차원의 중장기 박물관정책이라는 취지하에 ‘박물관 발전 기본구상’ 박물관 체질개선을 위해 평가와 인증제 도입, 공립박물관 등록승인을 중앙정부가 담당하고 평가와 감리제를 도입해 건전성과 책무성 확보, 공공성을 위한 소장품 목록화 지원, 학예사 등급 단순화 및 전문영역 세분화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로 되어있다.  

을 발표하였고, 뒤이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역시 관련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보고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선방안 연구』 박소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선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2.8 
를 내놓았다. 최근에는 2016년 5월 동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내용을 보면 공립박물관 건립시 사전평가제도 의무화, 설립 등록 후 평가인증제도 실시, 기증유물 감정평가제 도입 , 국공립 박물관 등록 의무화 등이다. 

 하지만 정부는 개정의 핵심사항인 법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잘못 끼워진 첫 단추처럼 문제가 법제, 조직, 현장, 학계, 지원사업 등 전반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뮤지엄 행정체계의 이원화 실태   

  우리나라에서 박물관과 미술관 지위체계가 이원화된 배경은 여러 가지로 추론된다. 우선 법 제정당시인 1990대 초 문화체육관광부 내의 뮤지엄 업무 추진체계가 이미 2개의 국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즉 박물관 업무는 ‘생활문화국 박물관과’가 담당하고 있었고 미술관 업무는 ‘예술진흥국 예술1과’가 담당하고 있었다. 1991년 당시 문화부 직제(대통령령 제12895호, 1990.1.3. 제정)에 따르면 ‘생활문화국 박물관과’에서 담당했던 업무는 박물관진흥 종합계획수립, 공·사립박물관의 육성·지원, 국립중앙박물관의 지도·감독 등이었으며, ‘예술진흥국 예술1과’의 담당 업무는 회화·조각·공예·사진·디자인·환경미술 등 조형예술의 진흥에 관한 사항, 대한민국예술원 및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도·감독 등이었다. 채연선,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효과와 과제」, 예술문화융합연구, 제2호, 2014, p.210

 이러한 근거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행정 조직의 분장 업무를 기준으로 삼아 정해진 법명이며 행정편의주의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법제정 이후 25년이 지난 2016년 현재 관련부서 행정조직 편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수차례의 개·제정에도 불구하고 박물관과 미술관 법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행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에 따르면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뮤지엄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은 ‘문화예술정책실’ 내의 두 과로 나뉘어 있다. ‘문화기반정책관 박물관정책과’와 ‘예술정책관 시각예술디자인과’가 그것인데 여전히 미술관에 관한 업무를 박물관정책 담당 부서가 아닌 예술정책 담당 부서에 두어 별도로 분장하고 있다. 세부내용을 보면 ‘문화예술정책실 박물관정책과장’의 분장 업무는 박물관정책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조정 및 시행, 박물관 진흥을 위한 조사연구, 국립박물관의 설립 협의에 관한 사항, 공립·사립 박물관의 육성·지원 및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운영 지원 및 관리 업무 등이다. 한편 ‘문화예술정책실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의 분장 업무는 시각예술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 조정 및 시행, 국립 공립 시설의 공간기획 및 지원에 관한 사항, 국립현대미술관에 관한 업무 등으로 되어 있다. 

  위의 분장형태에 따르면 박물관정책과에서 박물관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한편 미술관정책 업무는 박물관정책과의 분장업무에서 나타나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수행해야 할 업무를 규정하면서, 자체 업무 이외에도 국내·외 미술관자료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국내 다른 미술관에 대한 지도·지원 및 업무협조 업무, 국내 미술관 협력망의 구성 및 운영 업무, 그 밖에 국가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시각예술디자인과가 국내 미술관에 관한 전반적인 정책업무를 직·간접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시각예술디자인과의 업무 분장표를 보면 본 과 직원이 담당해야 할 업무에 ‘미술관정책’이라 명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관정책 업무를 시각예술디자인과에 분리 이관시킨 것은 관련법의 법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박물관정책을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정책부서에서 추진하는 미술관정책은 국가적 뮤지엄 정책의 근간인 ‘정책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조정 및 시행’, ‘관련 법령 및 제도의 정비’, ‘진흥을 위한 조사·연구’라는 핵심 업무를 감당해 내기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장을 지낸 박광무 박사가 지난 2015년 영월국제박물관포럼 발제를 통해 정부조직의 차원에서 “박물관행정과 미술관행정이 정책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또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결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은 박광무, 「한국 박물관 정책과 제도의 방향성」, 2015 영월국제박물관포럼 자료집, p.94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미술관 측에서 내세우는 법명 이원화의 실과 허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미술관이 박물관의 하위 개념임을 정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명에 등위 개념으로 명기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20세기 중반 이후 근·현대미술관의 약진 현상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주지하듯 1950년대 이후 상파울루비엔날레(1951), 토쿄비엔날레(1952), 카셀다큐멘타(1955), 파리비엔날레(1959), 인도트리엔날레(1968), 시드니비엔날레(1973), 방글라데시비엔날레(1981), 이스탄불비엔날레(1987), 리용비엔날레(1991) 등 근대미술의 헤게모니를 주도하기 위한 국제미술제가 각국에서 창설되었고 이와 더불어 근·현대미술관이 줄지어 탄생되었다. 미국에서는 막대한 재력을 배경으로 하는 개인이 설립한 뉴욕근대미술관(MOMA, 1929), 휘트니(1931), 구겐하임(1937)과 같은 굴지의 미술관들이 뮤지엄 세계의 총아로 일찍이 등장하게 된다. 영국 역시 테이트리버플(1988), 테이트세인트이브(1993), 테이트모던(2000), 테이트브리튼(2000) 등으로 구성된 테이트 갤러리(the Tate Gallery) 미술관이 줄지어 생겨났다. 프랑스의 경우는  퐁피두센터의 국립근대미술관(MNAM, 1977), 오르세(1986), 피카소미술관(1985)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경우 미술관은 1969년 설립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뒤늦게 각 시도에 시립미술관과 도립미술관들이 확충되기 시작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과 세계미술의 시대적 경향을 수용할 목적에서 경복궁에 처음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왕가미술관의 역사가 스며있는 덕수궁 석조전 시절을 거쳐 1986년 과천관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아시안게임에 이어 국제올림픽을 치루며 개방된 서구화의 물결을 따라 고고역사유물 중심의 ‘상설전시’를 중심으로 한 박물관 운영체계와는 다른 예술품 중심의 ‘기획전시’를 중심으로 한 미술관 활동에 대한 지원책도 고려되었을 터이다. 

  결국 이러한 근·현대미술관의 약진 현상은 우리나라 미술계를 전통미술과 근대미술로 분리하고 조선후기까지의 서화를 박물관의 범주에 넣는 관례를 만들어 내었다. 이른바 국립중앙박물관 컬랙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미술은 박물관의 영역에, 근대 이후의 미술은 미술관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관례로 정착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행정조직에 ‘미술부’가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미술품은 박물관 활동의 영역에서 중요한 대상이다. 그러나 박물관은 고대와 중세의 미술품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근대와 현대의 미술품은 미술관의 몫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유럽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같은 뮤지엄은 고대에서 근대 이전 까지의 미술품들을 다루고 있으며 인상파를 기점으로 삼는 근대미술 이후의 작품은 미술관의 영역으로 분류해 소장관리하고 있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같이 근·현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의 약진이라는 국제적인 추세를 명분으로 내세워 새로 제정된 뮤지엄 관련법에 미술관이라는 용어를 삽입시킬 수 있었다. 이후 부산, 대전, 제주, 대구, 경남, 경기, 전북 등의 광역자치단체가 대규모 미술관을 줄지어 건립된 것은 지방자치제도의 도입으로 변화해 온 시대적 정황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미술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게 해 준 「박물관 및 미술관법 진흥법」이 일구어 낸 역설적인 성과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다시 흐르고 박물관 정책의 2라운드를 맞은 오늘날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는 미술관 정책과 박물관 정책의 이원화가 21세기 변화하는 뮤지엄 산업의 대계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근현대미술과 고대미술의 분리된 상태에서 뮤지엄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모더니즘 미술이 종식을 고한 작금의 상황에서 근·현대미술관의 고립은 곧바로 미술관의 고립이자 나아가 미술문화의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로 귀결되기 쉽다. 세계는 융합과 통섭의 시대로 진입해 있다는 사실은 예술이 과학, 경영, 산업과 융합하고 고고, 인류, 역사, 해양, 민속 등의 학문영역과 연계 하는 시대로 와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삼성미술관 리움’의 컬랙션과 운영체계가 하나의 대안적 모델이라 보고 있다.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을 연계한 뮤지엄의 운영체계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미술의 뿌리를 확인하는 이중의 효과를 만들어 내면서 대표적 미술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의 백자와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같은 공간에서 비교 감상할 때 느껴지는 감동은 이전의 어떤 미술관 경험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고려청자와 단색화의 조합은 또한 어떠한가! 

  오늘날의 한국 미술관은 전통미술에서 그 뿌리를 찾고 창조의 원형을 세워야 한다면 미술관과 박물관의 협력은 훌륭한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부의 뮤지엄 정책은 미술관과 박물관의 통합을 기본 전략으로 내세워 통한 21세기 한국 뮤지엄 정책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법률과 정부의 행정조직을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5. 미술관과 박물관의 이원화에 따른 문제 예시 

  우리는 앞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법체계 이원화에 따른 혼란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혼란에 대한 사례는 이미 수많은 연구보고서나 논문을 통해 제시되어 왔다. 주어진 지면을 고려하며 간단히 정리해 본다면 법체계의 이원화는 정부조직의 이원화를 고착하여 기관 업무의 중복에 따른 인력 낭비와 그에 따른 예산의 낭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뮤지엄 정책이라는 동일 과제에 대한 종합적 시책과 업무추진의 측면에서 정책의 비효율성이 쉽게 예측된다는 것이다.

  법체계의 이원화와 정부조직의 이원화에 따른 인력의 낭비 사례는 정부의 지원사업에서 쉽게 발견된다. 법제의 이원화에 따라 등장한 각급 사립뮤지엄 협회들은 주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주관하는 업무를 맡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박물관협회, 한국미술관협회(한국사립미술관협회), 한국사립박물관협회,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서울특별시박물관협회, 경기도박물관협회, 영월박물관협회, 제주도박물관협회의 주요사업들은 박물관의 협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연회비를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각종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립 뮤지엄에 대한 지원사업의 종류는 기획제정부가 내놓은 복권기금 (특별전시 프로그램 지원) 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학예인력지원 사업이 있고, 시도로 확대되면서 사립미술관 청년인턴 지원사업, 미술품전문해설사 지원사업, 문화사업비 및 특화사업비(이상 서울시), 박물관미술관 전시교육체험 프로그램 지원사업(경기도) 등이 있다. 

 이러한 지원사업의 법적 근거는 「박물과 및 미술관 진흥법」이 규정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립뮤지엄의 설립을 돕고 지원과 육성을 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낭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재정 자립도가 열악한 사립 뮤지엄의 경우 정부지원에도 불구하고 선순환구조를 안착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립자의 세대교체가 되면 70%의 뮤지엄이 폐관될 것이라는 현장의 소리는 그저 여담으로 흘릴 사안이 아니라 본다. 법제와 조직체계의 이원화에 따른 단체의 난립과 지원사업의 낭비적 요소가 따르는 지원체계의 문어발식 확장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    

  법체계의 이원화가 가장 심각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분야가 바로 통계자료 분야라 할 수 있다. 통계자료의 오류는 박물관 현실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만들고 결국 뮤지엄 현실과 동떨어진 뮤지엄 정책연구나 정책결정 그리고 집행과 평가의 분야에 걸쳐 혼란을 야기 시키게 된다. 그것은 전체 박물관 업무와 정책의 효율을 저하시키는 배경이 되고 국제교류의 혼란과 다양한 뮤지엄 주체들 사이에 불신을 조장하게 된다. 심지어 통계청이 발표한 뮤지엄 통계 자료에도 오류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박물관 통계자료인 ‘등록박물관/미술관 현황’을 보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2007년 박물관 수는 562관이고 인구 8.6만명당 1관으로 통계가 잡혀 있다. 이 때 박물관의 수는 미술관을 포함한 숫자여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8년의 뮤지엄 수는 박물관(579)과 미술관(128)을 합쳐 707관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일년사이에 145관이 증가되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잘못된 통계 수치는 곧바로 정책보고서의 정책결정과 집행에 쓰이게 된다면 어떤 폐해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6. 외국의 사례를 굳이 들자면  

  각국의 뮤지엄 관련법은 대부분 다양한 문화적 토양과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 왔으므로 일관된 지표로 분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을 법명으로 이원화해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136개국의 뮤지엄을 대표해 윤리강령을 제시하고 있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에서도 박물관(Museum) 외에 미술관(Art Museum)을 따로 정의하지 않는다. 

  ‘팔걸이 원칙’으로 표현되는 창조산업 육성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영국의 경우 「대영박물관법 1963(British Museum Act 1963)」이라는 일관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법령은 이사회(trustees)의 구성과 권력에 대해 명시하고 있으며 자연사박물관의 독립적 운영을 위한 이사회 구성에 대한 내용도 규정하고 있다. 영국의 뮤지엄 관련법에서 주목해 볼 것은 1992년에 제정된 「뮤지엄과 갤러리 법 1992 (Museums and Galleries Act 1992)」은 이른바 박물관과 미술관이 법명에 동시에 적시되어 있는데 이 법령은 The National Gallery, The Tate Gallery,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and The Wallace Collection 등 4개의 국립미술관을 운영하기 위한 이사회의 구성을 위해 만들어진 의회법이다. 따라서 특정 갤러리(미술관)의 운영을 위한 운영조례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국가주도의 정책을 추진해온 프랑스는 2002년 ‘프랑스뮤지엄 관련 법령(Loi no 2002-2005 du 4 janvier 2002 Relative aux musées de France)’을 새롭게 제정했다. 이 법령은 ‘프랑스뮤지엄(Musées de France)’이라는 배타적 명칭을 사용해 위상을 정립한 것을 특징의 하나로 삼는다. 이 법령은 국립뮤지엄들이 달성해야 할 주요 목표들과 이를 실행할 수단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립뮤지엄들은 공공기금을 감소하고 기업후원을 통한 자체 재원을 확보하면서 재정자립 역량을 강화토록 했다. 이후 루브르박물관이나 베스사이유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 등 국립기관에 일정 부분의 예산운영 자율권을 부여하면서 문화통신부의 역할을 직접운영에서 감독으로 전환했다. 이전에 프랑스는 1992년 법령에 의해 문화통신부 산하 프랑스뮤지엄국(Direction des Musées de France, DMF)을 설치하고 프랑스 전역의 뮤지엄에 관한 행정과 정책 업무를 담당해 왔다. 

 미국의 뮤지엄 정책 추진체계의 큰 특징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역할분담을 수행한다는 점과 뮤지엄법과 도서관법을 합친 통합 법률이라는 점에 있다. 국가차원의 뮤지엄 정책은 연방정부가 관장하고 실질적 집행은 주정부가 책임을 지는 체제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박물관정책과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현실법령은 2003년 제정된 「박물관도서관서비스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령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ICOM 의 뮤지엄 윤리강령에 입각해 있으며 개정 이후 뮤지엄의 경제적 가치와 지역사회에 밀착된 역할이 강화되어 공공서비스 및 지역 발전에 기여도를 높이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박물관도서관서비스협회(IMLS)와 그 아래에 국가박물관도서관서비스위원회(NMLSB)를 설치하도록 규정하여 위원회가 연방정부의 도서관 및 뮤지엄 지원기금 운영에 전반적 권한을 행사하는 새로운 연방기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연방정부에 의해 관리되는 박물관과 연구집단의 대표적인 경우는 스미소니언협회이다.  


  동양의 경우 일본의 「박물관법」은 「사회교육법」의 하위 법률로 1951년에 제정되었는데 국립을 제외한 공립 및 사립의 등록 박물관만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박물관법에서 박물관은 세 개의 카데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등록박물관, 박물관상당시설, 박물관유사시설이 그것이다. 일정요건의 충족이 기준이며 박물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 박물관유사시설이다. 이와는 별도로 과학박물관의 「독립행정법인 국립과학박물관법」이 있다.
 국립박물관의 경우 1999년 성립된 국립박물관법에 따라 2001년 독립행법법인제도가 발족된 이래 <독립행정법인 국립박물관>에서 관할하게 되었고 그 후 2007년에 발족된 <독립행정법인 국립문화재기구>가 운영하고 있다. 일본 최초로 설립된 도쿄국립박물관이 대표적인 관리 대상이다. 한편 국립미술관의 경우 <독립행정법인 국립미술관>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이 법인이 담당하는 미술관은 5관으로서 도쿄국립근대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교토국립근대미술관, 국립국제미술관, 국립신미술관이며 본부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있고 본부직원은 미술관직원을 겸임하고 있다.   
 
  이상에서 간추려 보듯 각국의 뮤지엄 관련 법제는 기본적으로 뮤지엄법의 범주에서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예외가 없지 않지만 대개의 경우 박물관법을 통해 국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혹은 국립박물관법을 중심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장하는 독립행정법인을 설치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각국의 법령체계는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 속에 독자적으로 축적해 온 문화적 맥락에서 구축되어 왔으므로 이를 참고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7. 결언  

  한국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제정 배경에는 복잡한 행정조직의 구조와 연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 시각예술문화의 변화에 따른 자구적 노력과 정부의 뮤지엄 지원정책을 둘러싼 박물관과 미술관들의 이해관계가 경쟁적으로 얽혀 있다. 다변화되는 21세기의 뮤지엄 환경에 대비해 질적 차원의 뮤지엄 정책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법체제와 조직의 이원화에 국한해 제시된 다음과 같은 전문가들의 권고사항에 정부의 결단이 요구된다. 

  1) 형식상 미술관이 박물관과 대등한 개념으로 되어 생기는 논리적 오류를 피하기 위해 협행 법률 이름을 다시 「박물관법」으로 변경하고, 각조항들에 대한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2012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내놓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선방안』에서 개정방안의 방식을 전부개정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음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2) 뮤지엄 관련법에 의거해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행정조직이 통합되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박물관정책과에 미술관정책을 담당하도록 직제 개정이 필요하다. 박물관정책과 미술관정책의 분리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정부 시책의 효율성을 약화시키고 뮤지엄 운영자들의 혼선을 야기시켜 왔다는 지적에 대응하는 것이다.  

  3) 새로운 박물관법에는 뮤지엄 분야의 총아로 자리한 미술관의 육성에 대한 구체적 정책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때 미술관 진흥과 미술진흥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수반 연구되어야 한다. 미술진흥 시책은 회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분야의 창작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미술관 진흥은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연구·전시·교육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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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성하, 『우리 박물관의 역사와 교육』, 혜안, 2007
- 김영호, 「한국뮤지엄 정책에 대한 비판적 소고」, 2015 영월국제박물관포럼 자료집, 2015, pp.35-52
- 김영호, 「한국 미술관정책의 현황과 과제 : 조직과 법제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7권 제2호, 현대미술학회, 2013, pp.113-145
- 김정희, 『문명화, 문화주의, 기업문화 : 영국정부와 예술정책』,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 나애리, 「1980년대 이후 프랑스 박물관의 변화와 문화정책」, 『프랑스문화예술연구』, 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06, pp.67-93
- 박광무, 「한국 박물관 정책과 제도의 방향성」, 2015 영월국제박물관포럼 자료집, 2015. pp.73-102
- 박소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선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2.8
- 서원주, 「동서양 박물관 명칭의 어원과 용례」, 『인류에게 박물관이 왜 필요했을까?』, 민속원, pp.37-62
- 윤태석,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량강화를 위한 협력 방안과 과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령, 규칙)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을 중심으로」,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제64회 춘계학술발표회, 2011
- 채연선,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효과와 과제」, 『예술문화융합연구』, 제2호, 중앙대학교 예술문화연구원, 2014, p.20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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