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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의 단면 (an aspect of Korean contemporary art)

김영호




김영호(미술사가, 중앙대교수)




Introduction

우리는 오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미술의 경향을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소개하고자 한다. 시간적으로 보면 1960년대에서 오늘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나는 동시대 미술의 경향들에 대한 소개가 될 것이다. 그 다섯 개의 카테고리란 1. 단색화, 2. 민중미술, 3. 극사실회화, 4. 코리안팝, 5. 개별적 경향들이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임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작가들이 펼치고 있는 다양한 개성적 미술경향들이 다수 누락되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특강이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한국현대미술전을 계기로 기획된 것인 만큼 그 경향의 마디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이번 특강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모스크바의 대중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토록 하는데 있다.     

    

1. 단색화 / Dansekhwa(Korean Monochrome Painting)

한국의 주요 미술대학에서는 회화 분야의 학과(Department) 단위를 '서양화'와 '동양화(또는 한국화)'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재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양화과는 유채를 기반으로 한 학과이며, 동양화과(또는 한국화과)는 수묵을 기반으로 교육하는 학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르구분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는 유화/국화로, 일본에서는 유화/일본화로 나뉘어 있다.) 예술의 장르간 경계가 와해되고 재료와 기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미술의 양상을 생각하면 이러한 구분은 점차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학과 단위는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기초적 단서가 된다. 서양화와 동양화의 접점, 바로 이것이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들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정립하기 위해 주목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국내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청년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한국 현대미술은 바로 이 서양과 동양의 문화 사이에 놓인 접점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 이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들여온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영향을 받아 물감이 지닌 물성과 표현의 제스추어에 열광하면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불과 몇 해 만에 동양과 서양의 예술이념과 조형방식을 융합한 새로운 경향의 미술을 탄생시켰다. 이른바 '단색화'라 명명되고 있는 미술경향이 그것이다. 단색화는 한국 현대미술 1세대가 낳은 첫 결실로 평가되고 있으며 최근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화가들 중에 박서보, 하종현, 윤명로, 정영렬, 이우환의 작품을 이 특강에서 소개할 것이다. 박서보(1931-)는 <묘법> 시리즈를 통해 '그리기'의 반복적 행위를 명상과 무화의 세계로 융합하는 방법론을 개척해 왔다. 이러한 조형방식은 캔버스 표현에 덧붙여 올린 한지를 반복적으로 밀어내어 밭고랑과 같은 골을 세우는 작품 시리즈로 발전되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종현(1935-)의 경우 <접합>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어법을 세웠다. 기존의 캔버스 대신 거칠게 짜여진 마포를 사용하여 뒷면에 물감을 발라 올리면 물감이 올 사이를 빠져 나와 앞면으로 솟아오르는데 이때 나이프나 붓으로 원하는 드로잉을 한 것이다. 그의 작업은 물감이 화면을 관통하는 현상을 물을 흡수하는 한지의 재료적 속성에 연계시켜 이해하고 이러한 현상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융합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원리를 세웠다. 윤명로(1936-)의 경우 그가 실행하는 조형 방식은 일필휘지와 기운생동을 필법으로 내세우는 동양화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재료가 쇳가루라는 점을 아는 순간 색다른 감흥의 세계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 이후 <얼레짓>, 1990년대 이후 <익명의 땅>, 2000년대 이후 <겸제예찬>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영렬(1934-1988)의 <적멸> 시리즈 역시 그리기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니르바나로 표현된 무작위적 명상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우환(1936-)은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모노하> 운동을 주도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작가다. 그의 <점에서>시리즈나 자연석과 철판을 설치한 <관계항>시리즈는 자신이 일관되게 정립해 온 '만남의 현상학' 논의를 통해 독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상의 한국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단색을 즐겨 사용한다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서구 모더니즘을 극복하기 위한 형식논리를 동양사상에서 발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1970년대가 지나는 동안 한국 단색화는 현대미술의 대표적 경향으로 정착되었다.  




2. 민중미술 / Minjoong Art (People Art) 

1980년대 초에 등장한 민중미술은 한국 현대미술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대표적 미술경향으로 자리잡았다. 민중미술은 한국 리얼리즘 운동의 대명사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이는 소련연방이 내세웠던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과 비교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개의 미술운동이 모두 사회와 현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그 탄생 배경과 전개 방식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정부가 내세우는 이념과 정책을 옹호하고 선전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면 한국의 민중미술은 정부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반발과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중미술의 작가들은 초기에 정부 기관으로부터 감시와 억압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과 사회 비판적인 미술운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격변하는 정치사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 사회로 변화해 온 한국 근대 정치사의 길목에 민중미술이 존재한다. 민족과 민중 그리고 전통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 운동의 대표작가들은 신학철, 임옥상, 강요배 , 이종구, 황재형 등이 있다. 


신학철(1944-)은 <한국근대사 연작>을 통해 민중미술의 대표적 작가가 되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의 재건과 군부독재 등 격변하는 한반도의 시대상을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극명하게 집합해 놓았다. 임옥상(1950-)은 대지와 농부 그리고 정물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통해 현실에 대한 통찰과 비판적 발언을 시도해 왔다. 파헤쳐진 들판의 붉은 황토를 그린 풍경 <대지>는 도려내진 인체의 살처럼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다. 강요배(1952-)는 한반도 남쪽의 섬 제주에서 발생한 4?3 양민 학살사건을 소재로 삼아 폭력과 광기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고수해 왔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에 정착해 바람 부는 대지와 바다 그리고 초목과 조충의 이미지를 알레고리 기법으로 표현해 내며 독자적인 화풍을 세우고 있다. 이종구(1954-)는 한국 근대화 시대의 농민과 농촌의 현실에 대해 주목해 왔다. 농민화가로 불리우는 그는 농부들의 순박하고 건강한 삶을 묘사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피폐해 가고 있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정직하게 녹아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산야와 사찰 풍경으로 이어지며 국토의 정신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황재형(1952-)은 대학을 졸업한 후 태백산맥 오지의 탄광촌으로 들어가 광부로 살아가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그려왔다. 후에는 현지에 사설 미술교육기관을 설립해 삶과 현실을 반영하는 공동체 미술문화의 지역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민중미술은 격변기의 한국사회가 낳은 산물이었다. 농민과 노동자를 내세운 동시대의 민중문학운동과 연관 속에서 열기가 급속히 고조되었고 민주화에 대한 당대 청년세대의 각성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민중미술은 모더니즘 미술의 단색화 헤게모니가 장기화 되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미술운동이기도 했다.   



3. 극사실 회화 (Korean Hyper Realism)

한국의 극사실 회화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신형상 회화의 한 경향으로, 1980년대가 지나는 동안 민중미술과 더불어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경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미국에서 등장한 하이퍼 리얼리즘과 비교되는 미술운동이지만 그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양자 모두가 대상에 대한 치밀하고 극사실적 묘사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이 냉정한 시각으로 인물이나 사물의 외형을 재현하고 이를 통해 묘사된 이미지를 하나의 사물로서 대상화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한국의 극사실 회화는 단순한 대상의 사진적 재현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는 한국 특유의 맛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대상에 대한 작가 개인의 세계관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한국의 극사실 회화 1세대 화가들로서 고영훈, 지석철, 주태석, 김강용, 이석주 등이 있다. 이들의 작품에는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함께 어우러진 세계가 있으며 이러한 작업태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관점을 새롭게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고영훈(1952-)은 <이것은 돌입니다> 시리즈로 화단에 주목 받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를 캔버스에 채워 넣은 그림으로 서구의 하이퍼 리얼리즘 미술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관찰된 대상의 극명한 묘사를 넘어 시각의 정신성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리얼리티의 세계에 대한 논의를 제안하고 있다 . 지석철(1953-)은 <반작용> 시리즈를 내놓아 극사실 회화의 대표주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가죽소파의 표면에 파인 주름과 단추의 이미지는 낯선 얼굴을 가까이서 대면할 때 느껴지는 인상처럼 생경하게 다가온다. 주태석(1954-)은 <철길> 연작을 내놓으면서 이 분야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철도목과 그 아래에 깔린 자갈들 그리고 사이사이에 널려있는 신문이나 잡지의 파면들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장치들이다. 김강용(1950-)이 묘사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벽돌이다. 질서 정연하게 쌓아 올린 벽돌들은 그저 거기에 그렇게 있지만 그것이 캔버스라는 장소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미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석주(1952-) 역시 벽돌을 소재로 삼아 연작을 그리면서 극사실 회화의 대열에 참여했다. 이후에는 익명의 도시인들에서 초현실적 풍경에 이르는 주제를 통해 일상적 세계와 상상적 세계의 접경지대를 담아내고 있다. 

이상의 작가들은 대부분 198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극사실 회화의 범주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 극사실 회화의 범주를 넘어 신형상 미술의 차원에서 자신의 미술적 과업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극사실 회화는 하나의 경향성을 이루면서 집단적 운동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향후 그 운동이 어떤 미술사적 경향으로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4. 코리안 팝 (Korean Pop)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과 일상에 대한 관심은 1990년 이후의 한국 청년작가들에게도 하나의 새로운 경향으로서 '코리안 팝'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이들이 말하는 현실과 일상이란 후기 소비사회 혹은 대중 정보사회의 현실을 의미한다. 정보미디어를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광고이미지에 대한 관심은 동시대의 청년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새로운 예술적 경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지하듯 소비사회나 정보사회에 대한 관심은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성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1960년대 이후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러시아에도 이와 유사한 경향의 작품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나름의 특수성을 발견할 수 있다. 대중들이 열광하는 코리안 팝은 아이돌 그룹에서 더 강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소녀시대(걸즈 제네레이션)이나 슈퍼주니어, 빅뱅, 카라, 원더걸스와 같은 아이돌 그룹의 활약상은 아시아 지역을 넘어 세계무대로 전파되고 있다. 미술에 있어 코리안 팝에 대한 논의는 좀더 시간을 두고 정리되어야 할 동시대 미술이라는 점에서 여기서는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제한하려 한다. 여기서는 이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들로 최정화, 이동기, 권기수, 손동현을 소개할 것이다. 


최정화(1961-)는 고급문화에 대한 일종의 의도적인 저항을 키치적 재료와 기법으로 드러낸다. 저속 취미와 촌스런것에 대한 예찬이 그의 작업에 일관되게 흐른다. 연성재질인 천으로 제작한 거대한 연꽃은 기계적 장치에 의해 접고 펼치기를 반복하며, 플라스틱 광주리로 세운 거대한 탑은 대중문화의 기념비로 다가온다. 한편 거대한 과일과 채소롤 이루어진 나무는 보는 이들의 시각에 흥미를 제공한다. 이동기(1967-)는 <아토마우스>연작을 통해 코리안 팝의 대열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아톰과 미국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를 하나로 결합시킨 캐릭터인 아토마우스는 한층 복합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권기수(1972-)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나 동양화가 제시하는 전통적 정신성과 양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노선을 정했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Run Run Run)> 연작은 작가가 만든 캐릭터 '동그리'를 대량으로 제작해 설치해 놓은 작품이다. 손동현(1980-)은 헐리우드 영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비롯해 유명 브랜드의 로고 등을 장지 위에 동양화 물감으로 그리는 작업을 시도해 왔다. 문자도와 낙관 따위의 동양화 형식과 신형상 미술 형식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세운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코리안 팝의 작가들은 이전의 추상으로 일관된 모더니즘 미술이나 정치적 현실에 관심을 보이는 민중미술 그리고 대상의 치밀한 묘사를 방법적으로 수용한 극사실 회화와도 다른 길을 모색했다. 이들은 미국의 오래된 팝아트의 어법을 수용해 그 생각을 실천했다. 하지만 미국의 팝아트가 현실에 대한 현상적 태도를 고수했다면, 이들 코리안 팝의 작가들은 현실의 관습과 역사의 무게를 가벼운 언어로 말하고 그 방법을 유머와 놀이로 풀어나가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일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는 팝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5. 개별적 경향들 / Individual Activity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그룹이나 경향에 속하지 않고 개별적인 작품들로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다. 이번 모스크바 한국현대미술전에 소개되는 작가들은 이 범주에 속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유럽과 미국의 화단에 잘 알려져 있으며 뉴미디어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도 아직도 그의 영향력은 유지되고 있다. 전통적 회화나 조각의 범주를 넘어 설치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로는 뮌과 김기철, 박선기, 김수자를 들 수 있다. 사진작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적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는 작가는 천경우, 한성필, 이명호, 김아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사진의 특수한 형식으로서 기록성과 보존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강형구 역시 극사실적 인물화를 통해 자신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으며, 최우람은 인공 생명체에 대한 관심으로 움직이는 기계를 통한 허구적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우선 뮌은 부부작가 최문선(1972-)과 김민선(1972-)이 정한 예명이다. <기억극장>은 뮌의 대표적 작업 시리즈로 다섯개의 탑을 세우고 그 안에 구획된 방에 다양한 미니어처 조각이나 오브제들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이 미니어처들은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고 설치된 빛을 받으며 주변의 창과 벽에 그림자를 드리워 낸다. 기억극장은 우주의 비밀을 담은 지식의 공간이자 지식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과시하는 권력의 공간이었다. 작가는 이 기억극장을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들여 지식과 권력의 공간이 언어와 관습으로 축적된 일루전의 세계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김기철(1969-)은 조각을 전공했으나 이후 음향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이라는 특수한 경향의 작업으로 자신의 예술적 노정을 펼치고 있다. 투명 낚시줄에 스피커를 매달아 빗소리를 연출해 낸 <소리보기> 시리즈는 종교적 명상의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시각에 청각을 도입한 그의 작품은 두 개의 감각기관이 조응하는 가운데 기존의 공간체험과 미적 경험과는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 관객을 이끈다.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배열로 설치한 투명 유리관에 스피커를 얹혀놓은 작업으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박선기(1966-)는 조각을 전공한 작가로서 다양한 재료와 형상의 작업을 시도해 왔다. 그 중 작가의 대표적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시리즈는 숯 조각을 낚시줄에 매달아 공중에 특정 볼륨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원형 또는 원통형의 볼륨은 찍혀진 점과 같이 나열된 숯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3차원의 공간에 부유하는 숯 조각들은 마치 우주를 형성하는 별들의 모습이거나 아니면 세상을 이루는 다양한 개별적 존재들로 읽혀진다. 그의 작품에는 이렇듯 자유롭게 부유하는 숯조각이 있으나 그 속에는 계획되고 계산된 질서와 규칙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자연의 모습이나 그 이치를 닮아있다.

김수자(1957-) 역시 설치와 비디오 그리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왔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생활용품인 이불보를 이용한 보따리 설치작업은 그녀를 국제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리는데 기여했다. 그녀가 채택한 보따리는 한국의 전통적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자 삶의 애환과 이주 그리고 이별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품은 기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보따리를 트럭에 가득 실어 국내의 산천을 유랑하는 보따리트럭 프로젝트는 그녀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 보따리 트럭은 이어 지구촌의 다양한 장소로 이동되면서 유목적 삶을 드러내는 작가의 아이콘이 되었다.     

천경우(1969-)는 사진을 매개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가 실행하는 퍼포먼스는 시간과 관계 그리고 공감에 관한 것이다. 한쪽 어깨를 교차하고 마주 앉은 두 인물을 장노출 사진기법으로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종이에 프린트 한다. 그의 작품에는 시간이 존재하며  시간이 연출해 낸 특수한 상황으로써 공감의 흔적들이 담겨있다. 이러한 특수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미지의 경계와 색를 모호하게 만드는 촬영기법 때문이다. 작가는 이 시각의 모호성이 주는 공백을 지각과 인식의 메커니즘으로 보완해 채워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존재와 관계의 미학을 제안하는 것이다. 

한성필(1972-) 역시 사진의 영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은 <가림막 시리즈>인데, 공사가 진행되는 건물이나 역사적 기념물의 주변에 둘러쳐진 가림막을 촬영한 것이다. 존재하는 것의 실체와 그 환영적 이미지 사이의 틈은 작가의 사진작업을 통해  하나의 미학적 논의의 차원으로 전환된다. 때로 작가는 가림막을 직접 제작해 설치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이 매력적인 것은 디지털 미디어 정보이미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에서 관객들에게 실재와 환영 사이에 자리잡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호(1975-)는 사진작가의 반열에 있으나 대형 설치 프로젝트를 연출해 냄으로써 독자적인 노선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업은 자연에 서있는 나무의 배경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크레인과 같은 대형 장비를 필요로 하는 그의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캔버스에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나무 이미지다. 자연 속의 나무는 그 배경에 캔버스를 통해 새로운 지각의 대상이 되며 작가는 이러한 과정에 개입해 사진으로 그 상황을 다시 포착해 낸다.  그의 작품에 적용되는 주요한 미학적 장치는 대상의 크기를 결정하고 사진으로 포착하는 프레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아타(1956-)는 공학을 전공했으나 설치와 연출이 가미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특유한 사진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퍼포먼스 연출은 때로 과격하며 금기시된 상황을 나타내기도 한다. 가령 사찰의 부처상을 대신해 벌거벗은 여인이 자리잡고 있거나 유리로 제작된 사각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한 쌍의 커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연출의 방식은 기존의 관습과 윤리와 도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지의 표명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일종의 파괴와 도전과 해체를 원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응한 전략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초월의 세계를 드러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초월의 세계가 지극한 현실의 세계와 맥이 닿아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형구(1954-)는 거대한 안면 초상으로 짧은 시간에 국내외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작가가 대형 초상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응시'의 상황이다. 관객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정치인이나 사상가 그리고 연예인이나 예술가들과 마주하며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이 때 작가는 관객을 향한 작가의 시선에 어떤 힘을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동원한다. 가령 안구 부위에 알루미늄 판을 붙여 그 위에 눈의 이미지를 그려 넣음으로써 발광되는 자연의 빛과 안광의 효과를 일치시키려 한다. 이러한 노력은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그의 끝없는 실험성이 앞으로 떤 예술적 성취를 거둘지 귀추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우람(1970-)은 인공 지능을 지닌 기계의 존재를 실재의 상황으로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다양한 키네틱 사이보그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크기도 소품에서 거대한 작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며 공중에 부유하는 연출방식은 보는이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그의 작업은 공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담론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공학예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예술의 형태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도입에서 가치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의 속성은 공학의 수용이나 기술의 경쟁이 아니라 그것이 야기할 미래의 부정적 가치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나가는 말

오늘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현대미술의 양상은 몇 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해방 이후 국내파 청년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1960년대의 현대미술 운동은 구미지역으로부터 유입된 모더니즘 미술의 수용과 극복에서 시작되었다.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일본에 유학한 선배화가들과는 달리 이들은 구미지역 미술계와의 직접 교류를 통해 세계미술의 흐름에 동참하기를 바랐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극복해야 할 대상은 일본의 관전을 답습한 국전과 그 경향들이었다. 단색화는 이 과정에서 탄생된 산물이다. 둘째로 1980년을 전후로 시작된 민중미술은 모더니즘 미술이 지닌 세계화의 물결에 반발하여 민중과 민족의 특수성과 문화에 주목하고 미술의 본연으로서 리얼리즘에 천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한편으로는 당시 국제적으로 전개되던 신형상미술 경향에서 운동의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세째로 소개한 극사실 회화는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형상의 재발견을 위한 노력이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과 연계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들의 주장은 '우리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아류가 아니다'라는 선언적 의도 속에 신형상 미술과 리얼리티의 성찰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많은 추종자들을 형성했다. 네째로 소개한 코리안 팝은 급속한 경제 발전에 따라 형성되었던 대중문화의 확산에 부응해 나타난 미술 경향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채택하면서도 선배화가들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노정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개별적인 작품세계를 찾아나선 작가들이야 말로 현대적이라 할 소명과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경우다. 이들의 예술에는 역사, 정치, 욕망, 권력, 유목, 폭력에서 심리, 사회, 죽음, 종교, 섹스, 그로테스크, 키치에 이르는 다양한 현대적 징후들이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때로는 상징으로 때로는 알레고리의 방법으로 표상되는 이들의 작품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스크바 한국문화원 특강 / 201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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