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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 시대 이후의 예술

김영호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가 1984년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고 미술계가 이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지 30여년이 지났다. 그가 주장한 예술의 종말이란 예술자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예술개념의 종말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60년대 이후부터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을 규정해 온 비평원리나 미학이론이 더 이상 동시대 미술을 진단하는 잣대가 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예술의 종말을 믿는 사람들은 오늘의 예술이 새롭고 전위적인 활동이며 순수하고 철학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오늘의 예술은 현실과 일상의 온갖 것들을 차용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하며 다양한 장르를 혼성적으로 받아드리는 활동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그것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이다.

예술의 종말은 비단 예술개념 자체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으로 세력을 확산시켜왔다.  예술개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미술관, 미술시장, 미술제를 변화시켰고 나아가 예술을 해석하고 감상하는 비평가와 대중들의 시선도 변화시켰다. 이러한 일탈의 상황은 예술계를 위기로 몰아갔다. 현대미술관은 산업폐기물이나 생경한 자연물을 수집하고 미술시장에서는 포르말린에 담긴 절단된 동물의 시체나 인쇄 복제물들이 고가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남성용 소변기나 슈퍼마켓의 포장박스가 예술작품으로 둔갑해 거래되는 것은 이미 고전이 되었다. 어디 그 뿐이랴. 자신의 몸에 면도칼로 상처를 내거나 수술적 변형을 시도하는 신체미술에 이르면 혐오감이 치밀어 오른다. 오늘날 예술은 과연 총체적 종말과 위기의 상황을 맞고 있다.    
 
예술의 종말은 가치의 종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담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간을 지탱해 오던 진과 선과 미의 가치들은 예술에서 멀어져 가고 그 자리에 위와 악과 추의 이미지들이 대체되고 있다. 그들은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로 부터 이론적 양분을 공급받으며 욕망과 충동 그리고 본능이라는 무의식의 세계로 모험을 실천한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라캉의 ‘부정적 숭고’, 들뢰즈의 ‘욕망’, 푸코의 ‘광기’, 데리다의 ‘해체’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지닌 모순과 역설의 구조를 대변해 주는 용어들이다. 예술의 종말이 주는 위기상황에서 오늘날 청년 예술가들은 질문한다. 예술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사유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예술의 종말은 창조의 제로지점이며 자유의 획득인가? 이에 대해 아서 단토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이다. 그들은 어떤 것이 가능한지 않은지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미리 말해줄 수 있다. 예술의 종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오히려 역사의 종말에 대한 헤겔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역사는 자유에서 종말을 고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들의 상황이다.”

자유는 불안과 고독을 동반한다.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듯 인간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이자택일의 선택 속에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종말 시대를 사는 예술가들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과 고독이 함께하는 자유이며 예술창작은 이 역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라일보 월요논단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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