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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만 / 추상으로 변주된 관능․탐미․고독 그리고 절제된 욕망의 시선

김영호

김교만 / 추상으로 변주된 관능․탐미․고독 그리고 절제된 욕망의 시선


김영호 (미술사가, 미술평론가)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미술대전을 통해 화단에 데뷔한 이래 30여 년간 나체 여인상을 고집해 오던 화가가 그간의 화제(畵題)를 접고 색면 추상으로 과감히 노정을 바꾼 데도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인체는 미술의 기원 이래 숱한 화가와 조각가들의 조형적 연구 대상이자 시대의 변화상을 담아내는 상징 기호로 기능해 왔다. 특히 여체는 생산과 양육의 상징이거나, 미와 성애의 표상으로 다루어지기도 했고 근대에 와서는 타락과 유혹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면서 미술사의 패러다임을 이끌어 온 화제였다. 김교만 화백의 경우 인체 연구는 ‘관능․탐미․고독 그리고 절제된 욕망의 미학’으로 정리되어 왔다. 2001년 개인전 서문에서 필자는 창백한 육체와 냉각된 공간으로 구성된 화백의 누드화는 관능적 아름다움과 절제된 욕망 사이를 오가는 멜랑콜리의 서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묘사한 바 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김교만 화백이 이후 누드화에 관심을 벗어버린 것은 몸의 내러티브와 그 역사적 상징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색면 추상을 향한 화백의 변신은 미술의 역사 이래 여성의 신체 위에 덧씌워졌던 온갖 기호적 규약들로부터 벗어나 화면 자체의 물성에 대한 관심과 그 감각적 표상의 세계로 노정을 바꾸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재현에서 표현으로의 변화였다.
         

변화는 언제나 과거와 연계를 지닌다. 변화란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업적을 전제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교만 화백이 새로 찾은 색면 추상의 세계는 이전의 인체 작업과 연계 속에서 비평적 특수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구상에서 추상으로 표현양식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작의 주체로서 화가의 예술적 본성은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백의 색면 추상 신작들에는 과거의 인물화에서 탐구 되었던 ‘엄격하게 분할된 화면과 투명한 색채 그리고 환영적 공간’ 등의 조형방식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화백의 신작에서 읽을 수 있는 화풍은 인체 탐구의 오랜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고유한 감각과 시선 그리고 조형적 장치들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가령, 등을 돌리고 누운 인체의 포즈나 의도적으로 배치된 사물들이 주는 절제된 욕망의 서정은 그의 색면 추상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억제된 관능미 역시 겹쳐진 색면의 층위와 그 위에 콜라주 된 자연물 사이에 여전히 숨쉬고 있음을 보게 된다. 


김교만 화백의 색면 추상에는 여전히 누드화의 기본적 형식이 존재한다. 이질적인 재료를 하나의 화면에 결합해 특수한 서정성을 연출하는 복합적 환상의 기법은 하나의 예이다. 화려하고 투명한 색면들이 화면에 중첩되면서 촉각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면, 그 위에 콜라주 된 야생의 꽃이나 씨앗은 바로 그 공간속에 자리 잡은 여인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김교만 화백의 색면 추상은 이렇듯 감각적이면서도 연극의 무대처럼 치밀하게 의도된 공간으로 짜여져 있다. 화면에서 서사적 줄거리는 사라졌으나 채색된 한지의 평면에 배치된 양귀비 꽃이나 해바라기 씨앗은 나르시스적 욕망의 돌기를 자극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말하듯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 욕망이기에 화백의 색면 추상은 본능과 규약이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는 신화적 세계로 안내한다. 김교만 화백의 작품은 단순한 구조와 물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범주에 속해 있으나 치밀하게 연출된 연극적 공간으로 짜여진 환영적 세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   



김교만, The Landscape of Image 17, 145x75.5cm, 한지 위에 아크릴릭, 2013



김교만, The Landscape of Image 25, 145x75.5cm, 한지 위에 아크릴릭, 2013


변화는 삶의 본질이다. 변화는 과거를 미래로 연계해 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김교만 화백의 변화하는 작품세계는 변증법적 인생사의 노정을 따르고 있다. 규정된 세상의 규약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기존의 윤리와 규범에 충실하게 따랐던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김교만 화백의 예술은 인체화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따랐으나 그 방식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순수 직관과 시선의 세계로 방향을 전환했다. 최근 김교만 화백의 색면 추상은 마크 로스코의 그것처럼 어떤 풍경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이중적 환영을 만들어 내는 화백의 화면은 재현과 표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치열한 조형적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스프레드(spread) 기법으로 중첩된 물감과 콜라주 기법이 만들어 내는 촉각적인 공간은 일루전의 환영적 영역을 넘어선 직관적 감각의 세계를 보여준다. 캔버스 위에 겹을 이루는 색면의 층은 붓으로 물감을 흩뿌리는 반복적 액션의 결과물이다. 때로 화백은 물감의 층 위에 천을 올렸다 떼어내면서 표면의 질감을 색다르게 만든다. 붓에 의한 색의 스프레드와 겹쳐진 색면의 층 그리고 그 사이로 솟아나며 다채로운 색의 광휘는 그 위에 덧붙여진 마른꽃과 어우러지면서 절제된 욕망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2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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