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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얼리즘’의 가능성 연구

김영호

‘한국 리얼리즘’의 가능성 연구   
                       : 신형상 미술에서 제기되는 리얼리티의 양식화 문제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1. 들어가기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화단에서 전개되어온 새로운 형상미술은 크게 두 가지의 양상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현실과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둔 '민중미술'이며 다른 하나는 사물의 물상과 존재양태에 주목하는 '극사실 회화'가 그것이다. 통칭 신형상 미술로 불릴 수 있는 이 구상적 미술 경향은 한국 현대미술 운동사의 맥락 속에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집단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상미술은 아직도 보편적 양식으로 정착되지 못한 채 섹터주의(sectarianism)의 범주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중미술의 경우 서구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동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발언으로 화단에 급속히 부상했고 급기야 국립현대미술관이 대규모 전시를 기획함으로써 한국미술사에 자리매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94년 봄 <민중미술 15년전>을 개최한다. 이로써 1979년에 창립된 현실과 발언을 비롯한  몇몇 소집단들이 1985년의 민족미술인협의회와 1988년의 민족미술전국연합회와 더불어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단체로 공인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책을 참고할 것 / 원동석, 『민중미술의 논리와 전망, 민중미술 15년 1980-1994』, 삶과 꿈, 1994.  
 하지만 미술 양식사적 맥락에서 볼 때 민중미술은 정치운동과 민중해방 이데올로기에 편향해 예술적 형상을 통한 보편적 공감을 획득하는데 소홀함으로써 진보적 미술운동으로서 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주영, 「미술에 적용된 서사성의 미학적 구조- 80년대 한국의 비판적 리얼리즘미술을 중심으로」, 미학예술학연구, 37집, 2013, 44-45쪽. 이주영은 이 논문에서 민중미술은 문화운동의 차원에서 주로 논의가 이루어졌고 미학적 관점과 미술의 특수성을 고려한 차원에서 심도 있는 고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루카치의 문학기반의 리얼리즘론을 미술에 무리하게 도식적으로 변용함으로서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국내 신문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을 배경으로 부각된 극사실 회화의 경향 역시 집단적 현상을 보이고 있으나 미국에서 밀려들어온 하이퍼 리얼리즘과 팝아트의 양식사적 그늘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논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 요지는 한국의 극사실주의는 ‘사실주의’라는 유전자 없이 태어난 경향’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에 아류적 경향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 김영호,「한국 극사실 회화의 미술사적 규정문제」, 현대미술학논문집 제13호, 2009, pp.6-28.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화단에서 신형상 미술의 양식적 열세 현상은 여전히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화가 주류적 미술경향으로 자리 잡아온 1980-90년대의 미술시장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은 새로운 형상미술의 경향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미술양식들, 가령 독일의 신표현주의, 프랑스의 신구상, 이태리의 트랜스아방가르드, 미국의 베드페인팅 등과 연대하지 못한 채 편향된 담론의 범주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소극적 태도의 탓이 크다. 21세기의 국내화단 현상을 일견하면 여전히 새로운 형상미술의 가지들이 풍요롭게 존속하며 그 위세가 다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새로운 기류의 본질과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비평적 기준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 글은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새로운 형상성을 띤 미술의 경향들을 그룹이나 섹터의 차원을 넘어 미술사의 보편적 가치로서 리얼리즘의 맥락에서 그 양식화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신형상 미술에 미술사의 보편적 양식인 리얼리즘의 옷을 입히는 일은 그리 단순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작품에 대한 실증적 분석과 미학적 규정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리얼리즘의 가능성 연구는 나름의 필연적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리얼리즘은 현실에 기반하여 예술의 본성을 규정하는 보편적 양식이며 리얼리즘의 핵심적 개념인 ‘리얼리티’, 즉 실재의 얼굴은 미술사의 문맥에서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이 분야의 리얼리즘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형상성을 내세우는 작가들과 작품들이 집단적으로 존재하며 집단적 현상과 문화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의(definition)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연구범위는 위에 언급한 신형상 미술의 두 가지 양상 중에서도 사물의 물상과 존재양태에 주목하는 극사실적 경향의 미술에 중점을 둘 것이다. 그리고 극사실 회화의 양식화 가능성을 위한 핵심적 개념을 ‘리얼리티’에 두고 그 개념의 변천과정과 현대적 변용의 당위성에 대해서 모색할 것이다. 한국 극사실 회화에 대한 선행 연구문은 위의 졸고 외에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다 : 윤난지, 「한국 극사실화의 ‘사실성’ 담론」, 『미술평단』, 2009년 제93호, 108-110쪽 / 김영호, 「1970년대 한국의 극사실 회화」, 『한국현대미술의 형성과 전개』,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14, 109-126쪽 / 김영호, 「한국 극사실 회화의 현주소」, 『미술평단』제96호,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10.   
 연구 방법으로는 지난 봄 평창동에서 열린 ‘한국 리얼리즘’ 관련 주제의 콜로키움과 ‘아시아 리얼리즘’이라는 제하에 열린 전시회를 대상으로 설정해 사례 분석을 할 것이다. 한국 리얼리즘에 대한 연구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할 거대과제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준비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위에 언급한 콜로키움의 내용에 제한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했으며 향후 지속될 한국 리얼리즘의 조직적 연구를 위한 발제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2. ‘한국 리얼리즘의 가능성’ 콜로키움

  ‘한국 리얼리즘(Korea Realism)의 장르와 양식 규정의 가능성 모색을 위한 콜로키움’은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로 성장해 온 형상미술의 계보와 유파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양식인 리얼리즘의 맥락에서 고찰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토론회다. 이 콜로키움의 특성은 ‘한국 리얼리즘’이라는 이슈를 전면으로 내세운 난상토론회라는 점 외에도 동시대 극사실 회화의 주역들과 이론가들이 다수 참여한 행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콜로키움은 2014년 5월 31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다. 평론가 6인(김복영, 김영호, 김영순, 정연심, 정은영, 김성호)과 화가 17인(한만영, 이석주, 주태석, 김강용, 고영훈, 황순일, 김영성, 이원희, 정보영, 김남표, 두민, 권경엽, 강세경, 마리킴 등)을 포함해 30여명의 미술인들이 참석했다.  
 
  주지하듯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리얼리즘이란 ‘객관적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묘사하려는 태도와 창작방식’으로 통용된다. 리얼리즘에 대한 논쟁은 ‘리얼리티’의 개념과 그 표상방식을 둘러싼 담론을 거치며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실재, 존재, 사실, 진실, 본질, 현실과 같은 철학적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물론 리얼리즘은 단순한 철학적 문제만이 아니었다. 리얼리즘을 정치적 실천적 문제로 보고 노동자, 민중, 대중, 시민과 같은 개념들을 경제 및 사회구조나 계급투쟁의 좌표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각을 달리하면 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인식능력을 전제로 삼아 추상기법까지를 이용하는 예술적 방법으로 구분되는 경우도 있다. 루카치외,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홍승용역, 실천문학사, 1987, 85-86쪽. 이 책에서 루카치는 객관적 현실의 합법칙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리고 깊숙이 감추어진 사회현실의 제반 연관관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추상기법을 쓰는 중요한 리얼리스트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추상작업을 통해 추상을 지양하고, 급기야 형상화된 삶의 표면구조를 드러내는 예술의 모순적 구조를 ‘본질과 현상의 변증법’이라 명명하고 있다. 


 이같은 리얼리즘의 개념적 혼란상은 시대와 지역의 특수성에 기인하면서도 리얼리즘이 시대사조, 인식론, 창작방법 등 서로 다른 차원에 적용되었던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박현동, 「루카치의 리얼리즘론」, 블로그 전문 이글루스, http://egloos.zum.com/cndlfcjs/v/6885938


미술의 경우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리얼리즘이 ‘시대와 현실을 진실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며 하나의 미술양식으로 출발한 이래, ‘사회주의 리얼리즘’, ‘쉬르레알리즘’, ‘누보 레알리즘’, ‘하이퍼 리얼리즘’, ‘포토 리얼리즘’, ‘레알리즘 판타스틱’ Jean-Claude Guilbert, 『Le Realisme Fantastique』, Paris, editions Opta, 1973 / 초현실주의 운동의 뒤를 잇는 환상적 경향의 유럽작가 40명을 소개하는 책에서 제시된 리얼리즘의 한 경향. 이 책의 서문을 쓴 마크 티볼레(Marc Thivolet)는 미학적 견지에서 리얼리즘은 엄밀히 ‘실재의 환영(illusuion du reel)으로 규정되며 오늘날의 미술에서 실재는 환상(fantastique)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위가 바통을 이어받으며 변태와 분화를 계속해 왔다. 1980년대 초 장 보드리야르가 내놓은 하이퍼리얼리티와 시뮬라시옹 이론은 기존의 실재와 이미지를 둘러싼 개념과 해석방식을 근본적으로 해체시키면서 리얼리즘 미술의 생태계를 전과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실재와 이미지에 대한 혁신적 인식의 예는 다음과 같은 이미지의 연속적 단계에서 엿볼 수 있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 이지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다 :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이다.”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하태환역, 민음사, 2010 (원서초판 1981), 27쪽. 
 재현에서 시뮬라크르에 이르는 변증법적 단계 박정자는 보드리야르의 허무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이미지는 깊은 실재성의 반영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그것은 깊은 실재성을 감추고 변질 시켰다. 그 다음 단계에서 그것은 깊은 실재성의 부재를 감추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이미지는 그 어떤 실재와도 아무 상관이 없고 다만 자기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박정자,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에크리, 2011, 205쪽. 
는 현대미술을 무력화시키는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렇듯 예술의 본성이 변화하는 현실과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의 활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리얼리즘 논의는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주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전후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서 리얼리즘 논의가 비평가들 사이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신형상 미술의 출현과 맥락을 같이하면서였다고 주장된다. 김복영, 『눈과 정신』, 한길아트, 2006, 275-294쪽 참조할 것. 
 이른바 ‘단색화’로 대변되는 추상미술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 국내 화단에서 전래적 구상회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으로서 신형상 미술은 신문사 주최의 공모전들의 출범 1978년에 창설한 동아일보사의 동아미술제와 중앙일보사의 중앙미술대전은 각각 ‘새로운 형상성의 추구’와 ‘한국미술의 새시대를 연다’는 표제를 내걸었고 1981년 국전의 폐지와 더불어 화단의 미술경향을 다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
에 의해 탄력을 받았으며 1980년대가 지나면서 하나의 경향으로 부각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형상성의 발현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 경향은 독자적인 양식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지 못한 채 오래 동안 섹트주의의 울타리에 가두어졌거나 서구 특정양식의 그늘에 놓여 있었다. 
  이번 ‘한국 리얼리즘’ 콜로키움은 한국의 새로운 형상미술이 국내화단에서 집단적 현상으로 주목 받고 있는 현실임에도 양식으로서 특수성과 가치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현실을 고려해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콜로키움의 기조발제를 맡은 김복영 은 리얼리즘을 둘러싼 장르와 양식의 규정문제에 대해 개괄적으로 언급했다. 그 내용은 현대미술에 있어 장르란 시간과 공간에서 나타나는 예술현상을 총칭하는 개념이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체계화되고 규정된 형식이 양식이라는 것, 그리고 1970년대 이후 한국화단에서 집단적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형상미술의 경향을 장르로 분류하고 양식화 시키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발제는 1970년대 이후로 전개되어 온 한국 신형상회화의 계파를 단순한 그룹이나 섹트를 넘어 장르현상으로 재설정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포괄적인 외연을 넓힘으로써 세계화에 동참하자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네 명의 멘토 중 첫 번째로 발의를 맡은 김영순은 이번 콜로키움의 성격과 주제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제시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가치생산을 위한 공론장은 공공미술관이나 비영리 전시공간이어야 하며 상업갤러리가 기획을 주도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사업취지의 변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 논의와 관련해서는 21세기 글로벌 자본재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실질적인 담론생산의 장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과거의 리얼리즘 담론에 대한 재검토 및 재평가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한국 리얼리즘을 위한 작업으로서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집합적 기억과 상기, 민속담론에서 문화사회학에 이르는 분야의 학제간 융합적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두 번째 멘토 발의에 나선 김성호는 「월경하는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콜라주」라는 제명아래 서구적 리얼리즘과 한국적 리얼리즘의 전개양상을 비교했다. 그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한 리얼리즘을 ‘사실주의’가 아닌 ‘현실주의’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며 유럽의 리얼리즘과 미국적 리얼리즘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의 극사실주의 역시 외연적 사실에 근거한 미국적 리얼리즘(사실주의)로부터 출발해 유럽의 리얼리즘(현실주의)에 접목하려고 시도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한국의 리얼리즘은 구미지역의 리얼리즘과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가운데 이미지 리얼리즘, 사회적 리얼리즘, 디지털 리얼리즘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멘토로 나선 정연심은 한국 리얼리즘이란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는 동시대 작가들이 구축한 ‘세상보기 해독법’으로 정리했다. 또한 일상적 리얼리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미디어로 대변되는 현실과의 관계성 즉 충돌, 타협, 중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에 해당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 형식을 이미지 비틀기, 새로운 장소의 체험, 사진적 타블로, 타블로적 사진, 그리고 이미지 콜라주 등으로 분류하면서 이들을 통해 또 다른 문맥과 기법의 리얼리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발의한 정은영은 리얼리즘의 한국적 버전은 우리가 흔히 서양화라 부르는 것이 이미 한국의 체질에 맞게 한국적 버전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한국의 정서와 체질에 따라 형성된 리얼리즘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사실주의는 출발과 지향이 객관에 있기 때문에 한국식 리얼리즘이니 미국식 리얼리즘이니 하는 것은 이미 리얼리즘이라는 정의에서 벗어난 것이라 해석함으로써 한국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가 난제라는 점을 아울러 지적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전개되었던 한국의 리얼리즘은 구상회화를 둘러싸고 민중미술 계열과 극사실주의 계열로 구분되며 ‘현실과 발언’과 ‘시각의 메시지’ 그룹을 각각의 예로 제시했다. 
  이상의 기조발제와 발의문에서 엿볼 수 있는 특징은 한국 리얼리즘이란 하나의 단일한 형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 미술의 공백기로 남아 있는 1970년대 이후의 새로운 형상미술에 대한 새로운 해독법과 리얼리즘에 대한 양식규정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했다. 작가로 참여한 김남표의 경우 한국의 현대미술 토양에는 리얼리즘의 토대가 부족하다보니 소재주의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내 비평 환경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 논의와 담론이 필요성을 토로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리얼리즘 경향의 미술이 양식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얼리즘이라는 보편적 미술양식에 한국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도출하는 일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우리는 역사적 맥락에서 전개되어 온 리얼리즘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리얼리즘의 변천과 리얼리티의 문제

  전술한 콜로키움에서 확인되듯이 리얼리즘의 개념에 대한 학자들의 접근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19세기의 시대를 대변했던 ‘특정 예술사조’로 보는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탈역사적 개념을 내세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보편적 예술의지의 체계’로 인식하는 시각이다.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가 리얼리즘을 <고전적 리얼리즘>, <비판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등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리얼리티를 객관과 주관의 변증법적 통일에 의한 총체성의 획득으로 파악하는 경우로 후자의 범주에 포함 된다 게오르그 루카치, 『현대리얼리즘론』, 황석천역, 열음사, 1994 참조.
고 할 수 있다. 어쨌든 특정 예술사조로 규정된 프랑스 리얼리즘과 현실 또는 실재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보편적 예술적 태도로서 리얼리즘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시대에 부합하는 다양한 리얼리즘의 경향들을 탄생시켰다.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레알리즘 판타스틱’에 이르는 리얼리즘의 역사는 각각 동시대의 현실이나 정신현상을 반영하는 특수한 경향들로 기록되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조건과 예술적 환경은 새로운 유형의 리얼리즘을 요청하고 있다. 이른바 기술의 변화가 문화변동을 가져온다는 미래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드린다면 디지털미디어가 야기하는 ‘비트’ 기반의 탈물질적 세계관은 ‘원자’ 기반의 물질적 세계관과는 다른 차원의 리얼리즘 패러다임을 수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리얼리즘 운동이 나름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독일의 사상가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의 저서에서도 확인된다. 서구 리얼리즘의 발달사를 추적한 명저 <미메시스(Mimesis)> 에리히 아우어바흐, 『미메시스』, 김우창, 유종호역, 민음사, 2012 (원서 1946년 발간). 문학 작품 비평서로서 “이 책은 ‘관습이 어떻게 역사를 통하여 예술적 표현을 제약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어떠한 사회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는가, 또 예술은 어떻게 이러한 것을 개조하고 새로운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예술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에서 아우어바흐는 ‘예술의 존재양식은 예술가가 속해 있는 사회의 관습에 의해 끊임없는 제약을 받아 왔지만 예술의 존재양식은 바로 그 제약이라는 사회적 조건을 개조하려는 노력에 의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예술의 양식을 이해하는 기본이라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입장은 미국의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발견된다. 그녀에 있어 리얼리즘이란 리얼리티의 표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시대의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예술적 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클린은 현대의 모든 리얼리즘은 19세기 리얼리즘에 빚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그녀에 따르면 “19세기에 이르러 리얼리즘은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시대적 표명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전혀 다른 어떤 특징들로 채워져 있다” 린다 노클린,『리얼리즘』, 권원순 역, 미진사, 1997, 59쪽.  
고 주장하면서 19세기의 리얼리즘은 그 이후의 모든 리얼리즘을 추구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에 중요한 지표이자 모범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클린이 힘주어 말하는 19세기 리얼리즘의 지표와 모범의 실체란 무엇일까? 그것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실과 똑같이 묘사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렇다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하는 리얼리스트들의 열망은 또한 어디에서 비롯될 것일까? 그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러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에는 한계가 뒤따르게 된다. 본다는 것은 망막의 시각 현상을 넘어 지각의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으며 지각이란 언제나 시대의 특성과 환경의 영향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은 시대에 따라 다른 지각체계의 간섭에 의해 저마다 다른 양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노클린이 예시했듯이 19세기 쿠르베의 경우와 모네의 경우는 모두가 자연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했으나, 그 결과로서 양식은 ‘뚜렷한 윤곽과 세밀한 화법’과 ‘불확실한 윤곽과 활발한 붓질’이라는 화법의 차이를 만들어 내었다. 후에 양식으로 체계화 되는 이러한 화법의 차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지각체계의 차이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노클린은 자연과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에 있어 ‘문화적 진공상태의 지각’이란 있을 수 없으며 사물에 대한 지각의 진실을 찾으려는 시도들은 기존의 관습에 대한 부정과 이탈을 통해 전개되어 왔음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위의 책, 59쪽. 
고 결론짓고 있다.
‘리얼리스트의 작품과 사고방식은 그 당시의 사회구조의 일부로 기능한다’는 마르크스 추종자들의 주장도 한국 리얼리즘의 가능성 연구에서 주목 위의 책, 60쪽. 
해야 할 대목이다. 위에 언급한 사실주의나 인상파의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들은 1848년 출간 발표된 공산당 선언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 사상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집필된 공산주의자들의 강령적 문헌으로 1848년 출판되었다. 
과 마찬가지로 19세기 중반에 형성되었던 사회적 리얼리티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린 도시 노동자와 농부의 이미지, 그리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파리의 도시풍경과 부르주아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동시대의 리얼리티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세기 중반의 진보적 화가들은 형이상학적 교리나 고대의 신화를 둘러싼 도식이나 이념을 따르지 않았으며, 오래되거나 전통적인 주제들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현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러한 태도와 시선은 지각체계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로 파생된 독자적인 작품과 사고방식은 리얼리즘 예술의 양식화를 위한 나름의 원천이 되었다.  
 이상에서 본 리얼리즘의 역사적 규명 방식은 20세기에 들어와 전개되었던 다양한 리얼리즘 운동을 해석하는데 하나의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소련에서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등장했다. 후에 시각예술의 기본 창작방법으로 제시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인생을 개관적이고 충실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19세기 리얼리즘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낭만주의적 영웅사상을 수용해야만 하는 자기모순을 품고 있었다. 결국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채택한 미학이자 선전적이고 이념적인 기능을 수행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정치적 산물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체제의 몰락과 함께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주의 정신에 맞게 사상을 개조하고 교육하기 위한 과제’ 1934년 소비에트작가동맹은 제1회 대회를 통해 사회주의리얼리즘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올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그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근로자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된다.” 존 버거, 『사회주의 리얼리즘』, 김채현 역, 열화당, 1996.  
의 하위에 속한 강령이었으므로 19세기의 비판적 리얼리즘과 다른 차원의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앞서 유럽의 중심부 프랑스에서 발생한 쉬르 레알리즘의 경우는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부여하려는 생각에 기초해 등장한 사조라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무의식의 세계나 자유로운 상상력에 관심은 어쩌면 리얼리즘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콜라주, 프로타주, 파피에콜레, 데페이즈망, 자동기술법등으로 대변되는 쉬르 레알리즘의 표현방식 역시 모방과 묘사에 근거한 리얼리즘의 그것과 대비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리얼리즘이 쉬르 레알리즘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문학적 어휘를 빌자면 쉬르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이 낳은 거대한 사생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합리, 이성, 인습을 존중하는 리얼리즘의 속성에 반대하여 상상, 감성, 꿈, 광기를 예술 표현의 원리로 내세우는 쉬르 레알리즘은 앙드레 부르통이 주장처럼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잠재의식을 향한 모험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쉬르 레알리스트이 추구하는 세계는 ‘비현실’이 아닌 ‘초현실’이며 따라서 초현실은 현실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또 하나의 실재로 보아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관념이 현실을 형성하며 현실은 관념의 외적 현상형식에 불과하다’는 헤겔의 주장 헤겔은 미를 ‘이념의 감각적인 현현’이라 규정했다. 이는 예술작품 속에서 관념은 감각적이고 외적인 형태로 발현된다는 것이며 이 때 절대정신과 구체적인 표상으로서 현실은 동일한 사유적 토대위에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진석, 「헤겔의 예술개념」, 『미학의 역사』, 서울대학출판부, 2008, 401-403쪽 참고. 
을 애써 적용하지 않더라도 초현실과 현실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라는 선불교적 동양사상과의 융합적 맥락에서 쉬르 레알리즘의 리얼리티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콜로키엄에서 김영순이 연구 방법론으로 제시한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집합적 기억과 상기 등은 리얼리티의 융합적 연구에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1960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등장한 누보 레알리즘은 19세기 리얼리즘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 누보 레알리스트들은 캔버스에 대상을 재현하는 전래적 회화기법 대신 주로 공업제품이나 폐기물 또는 일상적 오브제를 직접 작품으로 직접 제시하는 방식으로 동시대의 리얼리티를 구현했다. 이 운동의 참가자들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적 접근’ 다니엘 아바디, 『누보 레알리즘』, 김정란 역, 열화당, 1988, 17쪽. 
이라는 개념을 기본적 공식으로 설정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대변되는 후기 산업사회의 현실에 주목했다. 누보 레알리즘은 일상적 사물에 대한 지각체계와 표현의 방식의 전도를 시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피에르 레스타니가 자신이 창안한 그룹에 레알리즘이라는 용어를 붙인것은 리얼리티의 가변적 운용 가능성이 전에 없이 확대되었음을 알리는 사례가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에 대두된 하이퍼 리얼리즘은 일상적 풍경이나 인물을 평면위에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리얼리즘의 맥락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대상 묘사를 위해 기계적 방법의 수용을 주저하지 않았던 작가들의 태도는 시작에서부터 물의를 일으켰다. 슈퍼 리얼리즘, 포토 리얼리즘, 래디컬 리얼리즘(radical realism) 등으로 불리우는 가운데 하이퍼 리얼리즘은 시각적 재현의 문제를 넘어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폭로하려는 예술경향으로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착시현상을 이용한 눈속임 효과를 기계적으로 극대화함으로써 이 경향의 예술적 목표는 대상을 정밀하게묘사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리얼한 묘사도 결국은 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이퍼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이 극단화된 형태로 볼 수 있지만, 극도로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아이러니컬한 경향이 되었다. 하이퍼 리얼리즘은 현실 자체를 재현하고 해석하고 표현할 방식을 상실한 현대미술의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레알리즘 판타스틱은 리얼리즘의 개념을 확대시킨 또 하나의 경우였다. 두 개의 대립되는 단어가 조합된 모순적 언어구조를 가진 레알리즘 판타스틱은 말 그대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해체시키고 두 개의 영역이 일원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원적 세계관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인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성과 감성이 융합된 인식체계가 현실이며 이 때 현실은 비현실이 아닌 초현실, 즉 현실 너머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문맥에서 레알리즘 판타스틱은 프랑스 쉬르 레알리즘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양자의 차이가 있다면 태도에 있어 쉬르 레알리즘은 환상적 또는 초월적 ‘현실’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레알리즘 판타스틱은 현실에서의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에 대한 규정을 해체하려는 의도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리얼리즘 변천사에서 보듯 리얼리즘은 동시대의 현실세계를 진실하고 객관적이며 편견 없이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실하고 객관적이며 편견 없이 표현하고자 했던 리얼리티의 개념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크게 변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로 하여금 리얼리즘 연구를 위한 몇 가지 문제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우선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리얼리티라는 개념을 둘러싼 중요한 철학적 물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티는 플라톤 이래 추구해 온 오래된 철학적 화두로서 ‘단순한 겉모습’과 ‘진실한 본질’의 가치를 따지는 기준이기도 했다. 리얼리티의 문제는 18세기와 19세기에 체계화된 미학이론에 이르는 동안 형이상적 관념론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헤겔은 진정한 리얼리티란 우리들이 매일 대하는 대상과 직접적인 감각 너머에 있으며, 일상적인 리얼리티의 단순한 겉모습과 묘사를 떠나서 예술은 한층 높은 리얼리티와 더욱 진실한 존재를 표현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선 가치를 추구했다. 헤겔에 따르면 예술에 있어 객관적인 현실의 대상성은 객관적 현실에 속하는 필연적인 내용이 아니라 관념화된 정신이 표현된 것으로 보고 자연미보다 예술미를 더 높이 평가한다. 강대석,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 서광사, 1984, 152쪽.  
 19세기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의 한사람으로 불리는 보들레르 역시 헤겔과 같은 형이상적 관념론의 맥락에서 ‘시는 가장 완벽한 진실’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리얼리즘의 역사에 대해 연구할 때 두 번째 고려할 점은 각 시대의 리얼리스트들은 언제나 동시대의 윤리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리얼리스트들은 눈속임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속해 있는 근대 혹은 현대라는 동시대의 시대상을 나타내는데 주력함으로써 순간적 사실성에 표현의 무게를 두었다. ‘지금 여기’의 사실성에 대한 포착은 예술에 있어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기준을 파괴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이를 통해 리얼리스트들은 사실로서 인지된 독립된 순간의 의미를 보다 확고하고 구체적인 사실로 고정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린다 노클린은 이러한 성과의 사례를 마네의 <황제 막시밀리안의 처형>에서 증명해 보였다. 린다 노클린, 앞의 책, 34-38쪽. 노클린은 마네의 <황제 맥시밀리앙의 처형>을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 : 불란서인의 스페인에게 가한 총격>과 비교하면서 고야의 그림이 인간의 비인간성에 관하여 일반화된 해석으로 구림의 의미를 변형시키고 있는데 반해 마네는 그림의 의미를 보다 확고하고 구체적인 사실로 고정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동시대성의 윤리에 대한 신념으로 인해 각 시대의 리얼리스트들은 자신의 살고 있는 시대의 현실을 예술로 표상할 수 있었다. 진실과 정직이 리얼리스트의 구호가 되는데 기여했다는 점은 한국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데 또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아시아 리얼리즘’과 신형상 미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리얼리즘 논의는 아시아지역의 큐레이터와 비평가들에게 관심사가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아시아 리얼리즘>이라는 제하의 전시와 이를 계기로 출간된 출판물에서 확인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시아 리얼리즘> 외에도 국내에서 개최된 극사실 회화의 대표적 전시회로는 <사실과 환영: 극사실회화의 세계>, 삼성미술관( 2001.3.3-4.29)을 들 수 있다. 
 <아시아 리얼리즘>은 싱가포르 국립갤러리와 공동주최로 진행되었는데 한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해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 지역 10개국 작가들이 참여했다. 19세기말부터 198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을 모은 이 기획전은 격동기 아시아의 어둡고 무거운 시대적 환경 속에서 예술가들이 동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며 그린 형상미술의 경향들을 총체적으로 일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전시회의 도록에는 각국의 기획자들이 쓴 발문들이 게재되어 있었는데 그 중 패트릭 플로레스(Patrick Flores)가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우시로쇼지 마사히로(Ushiroshoji Masahiro)의 다음과 같은 선언은 이 전시회의 지향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 “바야흐로 ‘서양’으로부터의 배움이 절대적 가치로서 신봉되었던 아시아 근대의 막이 닫히려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시아 미술에서 ‘근대기’의 뼈대도 극복되고 있다. 새로운 리얼리즘의 출현은 아시아에서 새로운 포스트-모던의 출발을 선언한다” Ushiroshoji Masahiro, 4th Fukuoka Asian Art Show: Realism as an Attitude, Fukuoka Art Museum, 38쪽의 내용을 페트릭 플로레스가 인용 (패트릭 플로레스, ‘동남아시아에서의 양식 : 정치사’,  <아시아 리얼리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록, 2010, 274쪽).  

  <아시아 리얼리즘>전이 열리게 된 시발점은 2007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같은 주제의 심포지엄이었다. 이 심포지엄에 참여한 각국의 이론가들은 대부분 리얼리즘의 접근방식을 단순히 현실모사의 재현적 양식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태도(attitude)’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서양을 받아드리고 새로운 전통으로 채택된 것들이 어떻게 아시아의 고유한 성격과 만나고 자체적으로 발전해 나가는가 하는 지점에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다. 이 두 개의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그들은 리얼리티에 대한 동서의 차이를 제시하였다. 그 요지는 ‘아시아의 전통회화에서는 서양의 객관적 리얼리티에 대한 개념을 추구했다기 보다 사물의 정수에 깊이 침투하여 그 기운을 포착한다는 의미에서의 사실적 태도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으로 사실(real)에 대한 아시아적 인식은 언제나 비-물질적 세계를 둘러싼 것이었다’는 곽 키엔 초우(Kwok Kien Chow)의 주장 곽 키엔 초우, 「외관상의 사실, 실재 사실, 현실로서의 사실」, <아시아 리얼리즘>, 앞의 책, .251쪽. 
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전시도록에 공동발문을 쓴 싱가포르국립미술관 큐레이터 조이스 펜(Joyce Fan)과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김인해는 아시아에서의 리얼리즘의 맥락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아시아에 있어 리얼리즘은 단순히 그럴듯한 시각적 재현의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도발적인 이미지의 힘을 의식적으로 이용했던 작가들은 아시아의 사회적 리얼리즘의 흐름을 형성했으며, 이들의 선언은 대부분 비판적인 리얼리즘의 형태를 유지하며 도시와 일상적 노동의 삶을 묘사하는데 두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전쟁으로 아시아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이를 비판하는 사회적 리얼리즘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뒤이어 전후의 시기에 들어서면 리얼리즘의 탐구는 미국의 문화권에 포함되었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 내부에서 독재적 정치체제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1980년대 후반의 달라진 정치사회적 상황은 다음 세대로 하여금 리얼리즘이 또다시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사회, 정치, 정부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에 대한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은 계속될 것이라 전망 조이스 팬, 김인해, ‘아시아 미술에서 리얼리즘 활용전략’, <아시아 리얼리즘>, 앞의 책, 10-16쪽. 
을 하고 있다.   
  리얼리즘의 본성으로서 리얼리티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으며 시각과 지각의 틀을 창조해 내는 인식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입장은 인도네시아 평론가 짐 수팡캇(Jim Supangkat)의 글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는 리얼리티를 실존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식이며 이러한 인식은 문화적 배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미술사에 내포된 획일문화적 징후들이 다문화 세계 내의 리얼리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 각국의 리얼리즘을 일관하면 아시아인들은 20세기의 역사적 순간마다 리얼리즘이라는 용어에 대해 이해를 달리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자국의 리얼리즘은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고유의 전통적 문화를 개혁하기 위한 도구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중국 광동미술관 큐레이터 차이타오는 20세기 초에 중국에서 리얼리즘은 합리적 정신을 의미했으며 사실적 회화가 사회현실의 개혁을 위해 수용되었고, 1920년부터 서양식 교육배경의 미술가들이 미술교육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리얼리즘은 중국미술에 강력하고 오랜 영향력을 행사했다 차이타오, ‘20세기 중국의 리얼리즘’  <아시아 리얼리즘>, 앞의 책, 2010, 282쪽. 
고 적고 있다. 또한 중국에 사회주의가 확산되던 1930년대에는 소련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등장하게 되었고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리얼리즘은 중국의 지배적인 미술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위의 책, 283쪽.
고 주장한다. 마오저둥의 지도아래 선명한 정치적 이념을 담은 ‘혁명적 리얼리즘’이 미술의 핵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1960년대 문화혁명의 광기어린 정점에서 홍위병 미술운동이 등장하면서 ‘혁명적 낭만적 리얼리즘’의 정점에 달했고, 1980년대 이후의 동시대미술에 이르기 까지 리얼리즘과 그 변화한 형식들은 여전히 중국미술계의 주요한 시각적 흐름을 이루고 있다 위의 책, 283쪽. 중국의 리얼리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책을 참고할 것 / 전형준, 『현대 중국의 리얼리즘 이론』, 창작과 비평사, 1997. 
고 주장한다. 
  근대기의 리얼리즘의 성립과 발전이 서양 리얼리즘의 수용으로 시작되는 견해는 일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동경예술대학 미술사교수 후루타 료(Furuta Ryo)는 서양 리얼리즘의 수용과정에서 형성된 일본적 리얼리즘에 대해 살펴보는 흥미로운 글을 남겼다. 그는 리얼리즘의 근간인 리얼리티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일본의 리얼리즘에 대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 재현적 묘사의 수용은 에도시대 후기에 시작되었으며 메이지 유신의 시기에 와서 서양의 리얼리즘의 수용은 미세노모(見世物)라는 흥행용 구경거리의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미세모노 그림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다’는 세밀한 묘사를 통한 환영에 초점을 둔 것이었지만 그 중에는 물질 그 자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이른바 물의(物意)의 표현을 시도한 작품 경향으로 정착되었다. 
는 것이다. 이른바 일본적 리얼리즘의 한 표현형식으로 제시된 이 경향은 다카하시 유이치(Takahashi Yuichi)의 작품에서 보이는 ‘대상의 사실성에 몰두하는 경향’은 중년의 고급창부를 그린 <오이란(Courtesan)>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일본적인 리얼리즘이 이른바 ‘사물이 거기에 존재하는 그 자체의 불가사이함’을 드러내는 것이자 인물에 스며있는 ‘내적인 미’의 표현으로 결론지우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 리얼리즘의 개념과 표상을 둘러싼 아시아지역의 비평가들의 견해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논의의 근간에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서구에서 유입된 리얼리즘은 주로 전쟁기의 사회상황에서 하나의 장르로 신봉되었으며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는 1950년대 후반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영나, 「냉전 이데올로기와 리얼리즘 미술」, <아시아 리얼리즘>, 위의 책, 261-267쪽. 
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리얼리즘에 대한 일반적 경향은 <사회논평의 수단으로서의 리얼리즘>과 <재현양태로서의 리얼리즘>의 차원을 넘어 <지각된 리얼리즘>과 같은 확장된 개념을 새로운 리얼리즘의 범주에 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 문제의 초점은 사실(또는 사실성)이라는 용어에 집중되고 있으며 사실개념의 확장이 새로운 리얼리즘의 단초가 되고 있음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가령 외관상의 사실(looks real), 실제적인 사실(in fact real), 현실로서의 사실(as real) 따위로 표현된 리얼리즘의 좌표는 20세기의 여러 전통적 형상미술과 새로운 형상미술의 경향을 고찰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제시되고 있음 곽키엔초우, 앞의 책, 255쪽. 
을 알 수 있다. 


5. 한국 리얼리즘의 양식화 가능성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는 문학에 비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최은주에 따르면 1980년대초 동시대 한국사회와 미술계의 현실비판을 시도하면서 등장했던 이른바 ‘민중미술’이 리얼리즘에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전의 전통적 양식고찰의 맥락 속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미술표현의 한 형식으로 갑자기 그리고 폭발적으로 출몰한 것’ 원동석, 『민중미술의 논리와 전망, 민중미술 15년 1980-1994』, 삶과 꿈, 1994, 17-20쪽 재인용 (최은주 「한국 근대미술에서의 리얼리즘」, <아시아 리얼리즘>, 앞의 책, 295쪽). 
이라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비정상적 발현’은 서구미술사조의 전래와 수용이 자발적이지 않고 변형과 왜곡의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진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있어서 근대성의 자각과 더불어 시대적 각성을 반영하는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7세기말 중국으로 연행(燕行) 떠났던 사행원들을 통해 유입된 서양의 유화를 통해서 사실주의적 기법의 서구미술을 경험했고, 미국의 화가 휴벗 보스(Hubert Vos)가 그린 고종황제 초상은 유화로 제작된 첫 초상화라는 획을 그었다. 한편 뒤늦게 유럽으로부터 전해온 사진기술은 초상화에 사실과 실재의 반영이라는 무게를 더해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사실주의 기법은 고희동과 김관호를 통해 국내에 알려지면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조선미술전람회의 역할은 시대상화이나 현실의식과는 무관한 예술관을 조선의 작가들에게 심어주었으나 식민지 시기의 민족적 애환을 간접적, 잠재적으로 표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분단과 전쟁의 시기에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은 이쾌대, 이수억, 변월룡, 그리고 재일화가 전화황, 송영옥, 조양규 등의 작품을 통해 추적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오윤, 신학철, 임옥상, 홍성담 등을 중심으로 민중미술이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 한국 리얼리즘은 자생적 얼개를 지닌 것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중심 주제인 극사실적 경향의 형상미술과 연관해 한국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면 주목할 것은 1980년대 이후 실재와 환영 사이의 관계항에 대한 지각체험은 전과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물의 물상과 존재양태에 주목하는 극사실 회화를 둘러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은 동양 예술론에서 미학적 기반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이론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일루전이 실재하는 대상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는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 일루전과 실재의 경계가 해체되고 나아가 일루전이 새로운 실재로 인식되는 과정은 새로운 경향의 리얼리즘 미술을 양식화하는데 더없이 유효하다. 대상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모사하는 방식에서 시작된 리얼리즘은 점차 모방된 이미지와 실재가 충돌하는 차원의 단계를 넘어 드디어 이미지가 현실을 넘어선 세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선언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 때 현실을 넘어선 세계란 실재하는 사물에 대한 인식의 단계를 넘어선 세계이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새롭게 품은 세계를 지시한다. 
  한국 극사실 회화의 주역의 한 사람인 고영훈의 작품을 예로 들자면 돌이라는 대상을 극사실적 기법으로 묘사하는 단계를 시작으로 해서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프로세스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다시 책이나 신문의 페이지를 화면에 콜라주해 배치하고 그 위에 부유하는 돌맹이를 그림으로써 실재와 환영 사이의 역전현상을 연출할 수 있었다. 콜라주로 펼쳐진 배경은 실재 오브제이자 동시에 그림의 바탕이다. 그 위에 부유하는 돌맹이들은 허상 이미지이지만 착시현상에 의해 허공에 부유하는 초현실적 물질이 되었다. 그 다음 단계인 현실을 넘어선 세계로의 진입은 3차원의 공간을 넘어 시간을 품은 4차원의 세계에 대한 표상의 탐구로부터 온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다수의 캔버스에 복수시점에서 포착한 항아리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현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종합하거나 점차 사라지게 하는 다면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김영호, 「시각의 환영을 넘어 사유의 전환으로」, 고영훈 개인전도록 서문, 가나아트, 2014. 
  
  한국 극사실 회화를 둘러싸고 리얼리티를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는 한국 리얼리즘의 양식화에 하나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관념들의 사실성에 대한 플라톤 이후의 관념론, 즉 개별적 존재들은 관념들의 반영일 뿐이라는 오래된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비평의 절대적 가치로 신봉되었던 모더니즘의 막이 서서히 닫히고 모더니즘에 대한 정의와 질서가 새롭게 극복되기 시작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리얼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은 당면과제로 보인다. 그리스 고전조각의 규범이 인도와 중국을 거쳐 동북아지역의 불상에 이르기 까지 복잡하고 풍부한 혼합과 변용을 계속해 왔을 때 누구도 그리스 고전의 규범성을 묻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의 미술현장은 서구의 규범화된 리얼리즘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기준을 요청하고 있다. ‘새로운 리얼리즘이란 지극히 견고해 보이는 서구의 개념 그 자체를 다른 문맥에 놓고 비춰보고 상대화시키면서, 그 미지의 가능성을 활성화시키는 것’ 미즈사화 츠토무, 「발견의 틀」, <아시아 리얼리즘>, 위의 책, 257쪽. 
이라는 미즈사와 츠토무(Mizusaw Tsutomu)의 주장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6. 나가기 

  전후 한국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리얼리즘의 양식화 문제를 연구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사실(real)' 혹은 ‘사실성(reality)’이라는 개념의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숙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현실이나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한 혼합적 시각을 의미하며 리얼리즘 미술사의 영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방과 물질 그리고 사회라는 개념이 표현된 전 영역의 미술경향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외에도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은 전통적 리얼리즘을 초월하는 다양한 경향의 리얼리즘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가령 동양적 신화나 판타지 그리고 개인적 트라우마 등은 확장된 리얼리즘의 미학체계에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지역의 생태, 인권, 종교, 젠더, 대중, 민속 등 오염되지 않는 문화적 가치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새로운 리얼리즘 연구가 신형상 미술에 가득 자리 잡고 있는 무수한 실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이라면 실재의 실체를 밝히는 노력으로써 양식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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