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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fferent Dimension’ : 세상을 향한 다섯 개의 시선 / 제5회 노보시비르스크 국제현대사진페스티벌 (러시아)

김영호




김영호(미술평론가) 


I. 오늘날 예술계는 온통 종말론으로 얼룩져 있다.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사의 종말까지, 이미지의 종말에서 저자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대상도 구체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 종말론이 파괴를 뜻하는 부정적 의미로 치우쳐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의미부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올바른 의미부여란 종말론에 담긴 긍정과 생산의 미학에 주목하는 일이며 오늘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해석을 내리는 것이다.
        

예술종말론은 사진에도 적용된다. 사진의 종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말은 사진은 더 이상 특정 집단이나 전문가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의 죽음은 사진이 모두의 것이며 일상의 영역으로 흡수되고 보편화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마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우리는 사진을 찍고 소비하며 사진기와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고 잠자리에 든다. 스마트폰으로 명명된 이동 전화기에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융합된 이래 사진은 이제 삶의 일부가 되었다. 결국 사진의 죽음은 현대의 모든 이들이 사진기를 감각기관처럼 사용하게 되는 상황에 다름 아닐 것이다. 눈이 시각을 위한 신체임을 의식하지 못하듯 몸의 일부가 된 사진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의 그 사진이 아니다.         


사진의 종말은 전통적 사진기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디지털 미디어의 출현에 따른 아날로그 사진의 죽음이다. 사진의 종말은 결국 아날로그 사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의 기술적 전이에 따른 결과로 여길 수 있다. 포토샵의 등장은 암실의 종말을 의미하며 노출과 포커스를 맞추는 손의 노동의 종말로 이어진다. 이렇듯 사진의 종말이 뜻하는 두 번째 의미는 전통적 사진 매체와 기술의 종말이다. 디지털 기기가 등장한 이래 필름사진은 사라져 버렸고 현상소는 대형 마켓의 구석에서 종말을 위한 마지막 절차로서 장례 서비스를 다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해체와 대체로 명명되는 사진의 종말은 이른바 시뮬라크르의 승리를 의미한다. 사진의 미학적 종말이란 아날로그가 고수해 온 ‘현존성(being)’의 몰락이다. ‘사진이 지켜온 진실성의 무화(無化)를 진정한 죽음으로 봐야 한다’는 어느 사진비평가의 발언은 그래서 주목된다.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시대, 그래서 진실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 시대에서 사진의 종말은 사진기법이나 사진적 프로세스의 종말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이미지의 종말이자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의 종말이다. 이러한 종말론 앞에서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가? 


II. 노보시비르스크 사진축제가 내건 주제인 ‘색다른 차원(Different Dimension)’은 사진 종말론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사의 지향점이 전통적 사진기법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든 아니면 작가가 시도하는 시선의 변화를 의미하든 간에 새로운 차원의 사진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통해 표현되는 색다른 차원이란 동시대 작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환경으로써 문화사회학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사진축제에 참가한 다섯명의 한국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독자적인 주제와 문제의식 속에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이명호의 사진은 이미지의 현존성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실재하는 대상과 사진적 이미지의 관계를 혼란시켜 색다른 차원의 체험을 유도하는데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시각적 장치는 야생의 나무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전부다. 일견 간단해 보이는 이 작업은 실재 크레인 트럭과 같은 중장비가 동원이 된다. 그의 작품은 나무의 현존성을 드러내기 위해 배경의 공간을 프레이밍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통해 구획되어진 공간을 다시 프레이밍 함으로써 사진적 행위의 중심이 되는 프레임의 기능에 대한 물음을 시도하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사물의 현존성은 사진적 행위와 그 행위를 주관하는 시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명호에 있어 사진적 행위란 프레임되어진 사물을 다시 프레임하는 행위 즉 이중 프레이밍이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사진적 행위는 결국 시선의 문제로 이어지며 예술적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물의 현존성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써 시선의 이중적 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사진의 색다른 차원을 느끼게 하는데 손색이 없다.  
    

유현미의 사진이 지닌 ‘색다른 차원’은 조각과 회화와 영상을 융합한 미장센의 기법에서 출반한다. 공간연출 작업과 회화적 프로세스를 거쳐 사진의 형태로 작품을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녀는 우선 실내공간에 의자나 테이블 같은 가구를 제작해 배치하고 사물의 표면에 거친 붓질로 채색을 가함으로써 회화적 속성을 덧씌운다. 여기까지의 작업은 작가가 작품으로써 사진 이미지를 얻어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 작업이 마무리된 후 작가는 적절한 뷰포인트와 프레임을 정해 사진을 찍고 프린트해 작업을 완성한다. 연출가로서 유현미가 채택하는 사물은 테이블, 공, 캔버스, 돌맹이, 거울, 숫자, 퍼즐 따위이며 사물의 도상적 해석의 차원을 넘어 알레고리의 단계를 거치며 자신의 소우주를 드러낸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사진과 회화 그리고 영화와 단편소설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녀의 작업 태도에서 존재의 실재와 허구에 대한 흥미로운 고민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그녀의 작업이 사진의 죽음 이후에 사진이 걸어야 할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면 그 길은 다양한 장르들의 집합 형태인 융합(convergence)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김수강의 사진은 이미지의 생성과 그 존재방식에 대한 질문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녀가 피사체로 선택한 사물은 보자기, 돌맹이, 플라스틱 물병과 같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녀의 사진위에 재현된 사물들은 도감서적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동식물의 이미지처럼 정직하게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치밀하고 계산된 사진적 프로세스를 통해 생산된 이미지는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리얼한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저 거기에 있음’ 대한 경의의 시선이다. 카메라로 사물의 이미지를 포착해 네거티브 필름으로 원판을 만들고, 이를 다시 감광용액을 바른 판화지 위에 현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그녀의 작업은 엄격한 장인적 프로세스를 요구하고 있다. 수채화 물감과 아라비아 고무액(Gum Arabic) 그리고 암모니엄 비슈로메이트 용액의 유제를 다루는 기술도 그녀의 작업에 중요한 요소다. 고도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 하나의 작업은 회화와 판화 그리고 전통적 사진의 프로세스가 융합된 산물이다. 사진 이미지는 마치 그려진 회화작품의 이미지처럼 원본성을 지닌다. 그녀의 작품이 지닌 존재성, 즉 ‘있음에 대한 경의(homage to being)’의 비밀은 다장르를 융합하는 기법의 전문성에서 온 것이다.    


조인증은 전통적인 사진 기법을 사용해 이미지를 얻는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의 가치는 오늘날 보편화된 디지털 카메라를 거부하고 필름사진, 그것도 흑백의 필름사진을 고집하는데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날로그 작품은 세밀하고 감각적이며 무엇보다 순수하다. 작가는 현존성과 손의 기술에 기반한 전통적 사진의 서정을 자연 풍경을 통해 실현시킨다. 한폭의 수묵 산수화처럼 풍경은 그의 선택에 의해 잘리고 단편이 되어 화면에 이미지로 재생된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풍경들은 떨림을 주제로 나타낸 것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은 생명현상을 노래한다. 이렇게 생산된 사진에는 그의 시선이 오롯이 들어있다. 자연을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각의 프레임으로 떠낸 시선이다. 작가의 시선이 향한 지점은 항구적인 구조를 지니고 왕성한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자연일 것이다. 조리개와 거리를 세밀하게 수동으로 조정하며 찍은 수많은 자연의 이미지는 때로는 수묵화처럼 때로는 한편의 서정시처럼 다가온다.
   

김중만의 경우 그의 사진작업에 표현된 ‘색다른 차원’의 세계는 연출에 의한 것이다. 광고사진 분야에서 이미 명성을 쌓은 그에게 미장센의 기법이 아직도 그의 작품 양식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음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사진 작업은 조선시대의 관료이자 풍속화가였던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연출해 사진으로 재현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시리즈에 “신윤복을 기리며(Homage to Shin Yoonbok)”라는 화제를 달았다. 사진 속 여인들은 순수함과 에로틱함이 함께 느껴진다. 짧은 저고리 아래로 드러난 젖가슴은 모성의 순수함이 있으나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의 자태에 가해진 에로티시즘은 연출가로서 작가의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기생과 모델의 이미지가 오버랩 지점에서 조선여인과 현대여성의 풍모를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흐르는 해학과 재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김중만의 작품의 백미를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사진축제에 참가하는 다섯 명의 작가는 저마다 독자적인 방식으로 작가의 시선을 드러낸다. 세상을 향한 다섯 개의 시선이다. 예술의 종말이 선언된 이후 예술가들은 역사 앞에서 자유를 구가하게 되었다. 자유란 예술의 조건이었던 형식과 내용의 굴레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예술의 본성을 규정했던 개념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우리가 사진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사진이 창조의 제로지점에 서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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