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예술과 정치 그리고 도립미술관

김영호

예술과 정치 그리고 도립미술관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 혹은 한 편의 시가 지닌 힘이 새삼 크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고교시절이던 1970년대, 마을의 이발관 벽면을 어김없이 장식했던 밀레의 <이삭줍기>나 <만종>, 통학버스 운전대 앞에 부적처럼 걸려있던 <기도하는 소녀>, 교내 시화전에 양념처럼 쓰이던 프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이 그것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대, 노동의 경건함과 가족의 소박한 삶을 그려낸 작품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서민들의 일상적 아이콘들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시위를 벌이다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는 대학생 <이한열 열사>의 사진 한 장은 프랑스 유학중인 나에게 전환기 한국 현대사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증표였다. 외부로 눈을 돌리면 베트남전쟁 당시 종군기자 에디 아담스가 찍은 <사이공식 처형>, 미국의 네이팜탄에 의해 화상을 입은 알몸의 소녀 킴 후크가 울부짖으며 거리를 달리는 사진도 있다. 이들 그림과 사진 그리고 시들은 예술작품으로서 동시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이념과 삶의 규범을 세우는데 기여했다. 


예술과 정치는 오래전부터 공생해 왔다. 정치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행사하는 활동이며 집단과 집단사이에 생기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고도의 기술이라면, 정치활동에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이념으로 세우는 활동인 예술이 정치와 공생관계를 맺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작가로서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고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권력의 후원과 집단의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 이래 정치가는 예술을 후원하고 예술가는 정치에 봉사해왔던 것이다.  


예술과 정치가 만나는 접점은 어디일까. 바로 이미지다. 선거와 여론조사에서 대중을 이끄는 것은 이미지이며, 나아가 어떤 이념을 창출해 내기 위해 이미지를 창출하는 일은 더없이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이 정치적 이미지를 만들고 이념으로 발전시키며 선전과 선동을 위한 도구로 활용해 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932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채택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그중 하나다. 이는 국가를 통치하는 하나의 기술로써 예술을 채택하고 국가가 필요한 이미지 생산의 임무를 예술가들에 부여했던 경우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용한 사례들은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며 그 자체가 혁명과 통치이념을 세우는 반석이 되기도 했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예술과 정치의 거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관계의 건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 풍요로워지고 정치가 예술을 통해 많은 성취를 얻어내려면 예술과 정치의 차별성과 공생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제주에서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가 마무리되었고 행정조직이 재편되는 시기에 와 있다. 이 대목에서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되새겨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최근 예술과 정치의 관계가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제주도립미술관의 경우다. 개관 5주년을 맞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의 편제와 조직이 아직도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학예실이 없는 전국 유일의 미술관’이라는 부끄러운 지적은 개관 이래 지속되어 왔다. 정치활동에 전문부서가 필요한 것처럼 미술관도 전문조직이 미술관 사업을 위한 성패의 관건이다. 새로 출범한 도행정부의 활동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단체장으로서 도지사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예실의 독립은 더 이상 미룰 사안이 아니다. 제주도립미술관 분관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관리 경영할 편제와 전문조직의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다. (2014년 8월 4일자 / 한라일보 월요논단)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