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제주도 대포해안에서의 하루

김영호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코리아 2014> 참관소감  

제주도 대포해안에서의 하루  



2014년 4월 18일. 이름 모를 작은새 한 마리가 해안 자갈 틈새에 죽어있다. 몸통과 날개의 깃무늬가 비교적 온전한 것은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이 미물을 우연히 발견한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사체 주변의 자갈을 정돈하고 원형의 울타리를 두른다. 태양 빛에 바랜 자갈들 사이로 드러난 붉은색 화산암 파편인 ‘송이’는 속살처럼 붉다. 무심으로 일손을 계속하던 그녀의 시선은 울타리 안에 돋아난 한줄기의 이름 모를 풀에 꽂힌다. 산화된 동물의 곁에 피어난 식물은 생명의 순환성을 담은 기호처럼 다가온다. 그녀 곁을 지나치던 나는 묻는다. 무슨 일이 있나요? 우연히 죽은 새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자꾸 눈물이 나네요. 나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여객선 ‘세월호’의 재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 전인 4월 16일. 안산의 한 고등학교 수학여행단 학생을 포함해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는 이곳 대포해안 북쪽 100km 남짓한 해상에 뒤집혀 있다. 그녀가 속해있는 다국적 예술가 일행은 목포에서 출발해 바로 사고선박과 같은 물길을 거쳐 제주항으로 왔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방송으로 접하면서 제주시 숙소에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 이곳 중문의 대포해안으로 곧장 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죽은 새 한마리와 그 곁에 영혼처럼 피어난 풀 한포기였다. 메멘토 모리. 태어나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돌무덤을 빠져나와 온 몸으로 절박하게 흐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드니 하늘에 걸린 수평선 아래 검은 화산암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해저화산이 토해낸 마그마 덩어리가 바닷물과 만나 뒤엉키며 생겨난 바위들이며, 영겁의 세월이 파도를 도구삼아 만들어낸 기이한 물상들이다. 이 바위들은 조물주 자연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지금도 파도와 바람에 의해 깎이며 변태를 계속하고 있다. 몇몇의 바위들은 자신이 품고 있는 각종 생명들의 형상을 닮아 있다. 바닷게, 고동, 물고기, 전복, 소라, 갈매기... 곳곳에는 조수에 밀려와 바위틈에 자리잡은 부목과 어구들이 완벽한 추상적 조형미를 뽐내며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위틈에 뿌리내려 자라는 초목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또한 어떠한가! 일행들은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해안풍경에 숨겨진 영겁의 시간과 자연의 이치에 감복하며 그 안에 서식하는 생명과 생태의 신비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자연에서 예술의 새로운 길을 묻는다. 


저녁 무렵 대포해안은 전시장으로 변했다. 다국적 예술가 집단은 대포해안에 흩어진 자갈과 바위를 미디어로 삼아 다양한 설치물을 만들었다. 한시적인 작품들이며 시간과 함께 다시 자연 상태로 되돌아갈 그런 조형물들이다. 어떤 이는 거대한 바위 위에 작은 돌들을 올려놓아 군상을 만들었다. 선반위에 옮겨진 수석처럼 오브제에 선택과 전치의 행위를 부여함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예 돌맹이를 쌓아올려 돌무덤을 만든 작가도 있다. 어떤 이는 통나무를 물웅덩이에 띄우고 그 위에 돌맹이를 가지런히 얹혀 놓아 자연에너지를 이용한 키네틱 아트를 시도한다. 어떤 이는 풀잎을 연속적으로 바위틈에 끼워 놓거나 돌맹이로 눌러놓아 리드미컬 한 조형적 감흥을 자아내고 있다. 바위의 표면에 두 개의 나뭇가지를 꽂아 뿔을 지닌 순록을 연상시키는 설치물을 만든 것도 같은 작가다. 불에 그을린 통나무 하나를 바위에 조심스레 걸쳐 놓아 관계의 의도성을 드러내는 작업도 있었다. 나의 시선을 가장 끌었던 작품은 기이한 동물의 마스크를 닮은 바위를 이용한 작업이다. 벌집처럼 숭숭 뚫린 바위의 표면의 구멍에 자갈을 끼워 넣은 것이다. 작가는 구멍에 맞는 조약돌을 찾아 즐겁게 채우는 놀이를 했을 것이다. 작가의 개입이 최소화 되면서 자연물의 물성과 형상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업에서 자연미술가로서의 경륜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떠난 이후 이들 설치물들은 바람과 파도에 의해 해체될 것이다. 흔적 없이 떠나는 노마드의 삶처럼 작가들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영구적 설치물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한다. 하지만 아쉬울 것 없다. 작가들은 자신의 노정을 사진으로 채취해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물 자체가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 철학자들이 예술미를 자연미와 구분해 놓은 데서 비롯된 생각이다. 헤겔은 인간정신의 산물이라는 점을 들어 예술미의 우월성에 손을 든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후기근대 시대가 도래 하면서 미술가들은 예술과 자연의 경계를 점차 허물어 버렸다. 사실 오래전부터 예술은 자연과 불가분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예술은 그 기원에서부터 자연의 모방이었고 자연의 형상으로부터 벗어나 내적 순수성과 표현을 주장했던 근대미술의 경우에도 자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인간의 몸과 생각이 곧 자연이며 자연의 순리와 법칙 속에 살다 가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 대지미술이 하나의 예술운동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예술사의 발전단계에 비추어 당연한 결과였다. 꽃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통해 꽃이 비로소 나에게 다가와 의미가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고백처럼 예술의 원천은 자연이었다. 


자연미술은 예술의 본성에 물음을 제기한다. 자연미술가들에게 예술이란 자연에 대한 사유이며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다. 하나의 조약돌이나 한 무리의 돌무덤이 사유의 대상이 되고 의미생산의 대상으로 작용하는 한 예술의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 자연미술가들은 자연물과 자연풍경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축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조형작업과 행위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집단으로 토론과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이다. 


제주도 중문지역의 대포해안에 모여든 다국적 예술가들은 자연미술의 실천자들이다. 인도, 남아프리카, 이란, 루마니아, 영국, 프랑스, 헝가리, 리투아니아 등지에서 참가해 온 이들 자연미술가 20여명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자연과 대면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대포해안에 하루 종일 머물면서 돌과 나뭇가지와 부유물 그리고 작은 동물의 사체 따위를 이용해 다양한 설치작품을 제작했다. 한시적이고 원상회복이 자연스레 뒤따르는 그런 미술관을 조성한 것이다. 현장 작업이 마무리되고 숙소로 돌아가면 토론회가 열리고 영상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하루의 생각을 정리할 것이다.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유목적 형태의 미술 행사로서 세계 각국의 자연미술가들이 참여해 각국의 자연을 돌며 현장에서 얻은 자연물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새로운 개념의 미술행사다. 현장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과 그를 둘러싼 지리, 환경, 문화, 역사의 특성에 대한 탐색의 결과를 공유하는 이 야심찬 이동 프로젝트는 현재 11개국의 19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2018년까지 지속적으로 지구촌을 탐방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을 흔드는 지진, 홍수, 가뭄, 전염병, 쓰나미와 같은 거대한 위력의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연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절감케 되었다. 자연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의 방식도 전과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연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떠날 때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노마드의 삶처럼 작가들은 현장에서 제작한 작품들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세계를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얻은 것은 비단 사진과 영상이라는 기록물만이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일구어 온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중문 대포해안에서의 일정을 위해 예술가들이 제주에 도착한 것은 세월호가 침몰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대포해안에서 작업하고 숙소로 돌아와 토론하고 해상기후의 악화로 출항을 연기하는 체류기간 동안 예술가들에게 엄습했던 무겁고도 애절한 추모의 시간은 남다른 것이었다. 자연과의 공존방식을 외면하고 내세우는 이기적 합리와 구조적 편견에 의해 우리사회가 대재앙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절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