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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림-홍은경 / 세상을 향한 두 개의 환상

김영호

세상을 향한 두 개의 환상



우리가 세상과 만나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서다. 예술의 비밀은 세상과 감각기관들 사이의 긴밀하고도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 만들어진다. 그리고 재현은 감각의 산물이자 예술의 본성이었다. 화가는 도시의 외관을 재현하고, 무용가는 백조의 자태를 재현하며, 음악가는 다뉴브강의 물결소리를 재현하는 식이다. 시나 연극의 경우도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사를 재현하는 활동이고 보면 예술이 본성이 모방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세상을 받아드리는 방식은 경이롭다. 가령 우리 눈이 사물을 대할 때 망막이 들여온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의 상이다. 사물의 외관에 투사된 빛이 만들어 내는 허상일 뿐이다. 감각기관이 하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망막에 맺힌 상은 신경세포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가 경이로운 것은 입력된 정보처럼 뇌에 저장되고 필요에 따라 불러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이 이미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관념이 개입되어 새롭게 태를 갖추기 때문이다. 수천억개의 신경세포로 조직된 뇌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데 우리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예술가의 망막을 통해 받아드려진 사물의 상이 이미지가 되어 뇌로 인지되는 과정에서 사물의 이미지는 신경구조로 변화된다. 객관적 사물의 상이 주관적 사물의 이미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환 이미지를 다시 화면위에 재현해 내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일정한 형식으로 고착되는데 우리는 이를 양식이라 부른다. 그림은 사물의 외형을 모방하려는 충동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이미지로 변주되고 다시 화면위에 표상되는 과정에서 전에 없는 풍요로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가치란 이렇듯 그저 망막에 비친 객관적 세상을 그림으로 재현해 내는 차원의 활동을 넘어서 있다. 망막에 비친 상이 시각 이미지가 되는 과정에서 개입하는 관념의 질과 그것이 그림으로 재현되는 과정에서 구현되는 형식의 독자성에 의해 작가의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의 전당 미술아카데미의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된 두 명의 작가에게 주어진 기획전이다. 선발된 작가들의 작업이 지닌 공통점은 작가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적 존재 혹은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물들이 감각기관을 통해 이미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개성적인 관념을 개입시키고 있으며, 그 이미지를 다시 화면에 표상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형식을 구축해 내고 있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윤정림은 일상적 도시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도심을 채우고 있는 빌딩과 언덕을 덮고 있는 주택들 그리고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구조물이나 전선 따위의 각종 시설물들이 그가 속해 있는 환경으로서 도시 풍경이다. 작가의 눈을 통해 망막에 투사된 도시 풍경들은 점차 그의 시각 이미지를 지배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대상의 외관을 넘어 대상의 원형적 구조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시각 이미지로 전환된 도시 풍경은 입방체의 형태를 넘어 수직과 수평 혹은 사선으로 짜여진 구조적 선율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윤정림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평과 수직의 기하학적 단선들은 원형적 구조로 환원된 도시 풍경을 나타낸다. 객관적 묘사에서 주관적 표현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전환은 모더니즘 미술이 추구해 왔던 일련의 실험적 행보를 연상시킨다.


윤정림


  윤정림의 그림은 심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도시의 빌딩숲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궁극적으로 작가의 심안에 의해 선과 공간 그리고 구조로 환원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의 작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도시 이미지가 기하학 패턴을 넘어 회화적 풍경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작가가 서 있는 지점은 모더니즘 미술에 의해 도태되어버린 환상적 세계의 회복이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도시의 서정성은 시각 이미지에 가미된 관념과 실천적 회화의 노정에서 찾아낸 가치일 것이다. 윤정림에게 주어진 과제는 도시 자연에서 얻은 관념의 정체를 더욱 정련해 나가는 일이며 그것은 시각 이미지를 조형 이미지로 표상하는 예술의지에 의해 한층 더 정제되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홍은경의 작업은 자전적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과 미물들은 이미지로 전환되고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품은 대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기억 속에 저장된 이미지들이 화면위로 다시 외출을 나오게 되면서 몽환적 서사성을 만들어 낸다. 마치 동화속의 배우나 소품들처럼 그의 캔버스는 환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풍요로운 색채와 형상들의 이색적인 구성이다. 담백한 석채 성분의 질감으로 채색되어 촉각적인 서정성을 드러내는 그의 화면은 마치 초현실주의자의 그림처럼 몽환적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홍은경


홍은경의 몽환적 풍경은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것이 낯선 이유는 이미지에 입혀진 관념이 개성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가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온 것이며 지금 여기라는 시공을 넘어서 있지 않으므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다. 홍은경의 작품에는 온갖 미물들이 등장한다. 연인과 의자 그리고 나비, 물고기, 꽃, 자동차, 코끼리, 시계, 눈사람, 개와 소녀, 케익, 별, 풍선, 고양이, 촛불, 숟가락, 찻잔, 인형, 손거울, 사진첩, 묵주, 책, 반지 따위가 그것이다. 화면에 초대된 미물들은 집이나 교회당이 보이는 마을 어귀의 거대한 나무에 달려있는 수많은 잎사귀가 되어 무대위에 펼쳐진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세계이면서도 현대인의 꿈과 욕망을 반영하고 있기에 우리가 어찌 그의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상에서 보듯 두 작가의 작품은 개성적 관념과 독자적인 형식으로 표상된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개성적 형식논리가 보편적인 미술사의 경향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색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장점은 향후 더욱 성찰해야 할 요소라 생각되며 두 작가가 작품을 통해 실현해 낸 두 개의 환상 세계에 박수를 보낸다. (2014.1)


김영호 (미술평론가, 중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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