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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식의 회화세계 / 본능⋅행위⋅유희의 정신성

김영호

이두식의 회화세계 - 본능⋅행위⋅유희의 정신성 


김영호 (미술사가, 미술평론가)


1. 20세기 한국미술사의 얼개는 ‘서구미술’의 수용과 극복이라는 문제의식 위에 형성되어왔다. 그리고 그 대안은 대부분 ‘전통미술’이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과 교집합 되어있었다. 유입된 서구미술과 전통미술 사이의 융합적 사유와 표상이 한국 현대미술사 기술의 방법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고희동과 김관호를 통해 유입된 서구미술이 20세기 한국미술사 형성의 길잡이가 된 이래 오지호, 이인성, 박생광, 김환기, 유영국, 이우환, 박서보, 김창열에 이르는 미술의 흐름은 서구미술의 수용과 극복이라는 공식으로 일관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에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전통적인 사상과 연계되어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서 문화 정체성의 자존감을 고수해 왔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팝아트나 하이퍼리얼리즘 그리고 비디오아트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20세기 한국미술사의 미술경향들이란 이렇듯 구미지역 미술양식의 수용과 극복의 노력 그리고 전통적 가치로의 변용을 거치며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한국미술이 서양미술사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은 대안으로서 전통이 다름 아닌 동양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양사상의 근간은 대개 고대 중국의 노장사상과 그 시각적 표상의 규범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중국화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무위사상을 담은 도덕경이나 6세기 중엽 남조시대에 활동했던 사혁이 제창한 6법 화론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상과 화론에 젖줄을 대고 있는 것이 한국인 공동체의 사상인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역사논쟁과 문화적 헤게모니 싸움이 심화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의 전통이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논리가 과연 합당한 것일까? 한국의 현대미술사는 이렇듯 서양과 동양이라는 거대 지역의 문명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이라는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역학관계를 풀어야 하는 이중적 과제인식의 상황에 봉착해 있다. 


혹자는 다시 말할 것이다. 20세기 이후 한국미술의 정체성은 중국의 그것과 다르며 중국문명의 수용과 극복의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이러한 주장은 물론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한국미술의 뿌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한국의 전통적 사상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전통=동양문화=중국사상이라는 앞선 전제를 부정하고 한국사상이 중국의 영향 속에서도 중국과 다르고 한국이라는 지역이 지닌 문화적 고유성을 발견하는 일로 귀착된다. 실재로 근대이전의 한국미술사는 동양과 중국의 문명사적 범주를 넘어 지역적 특성을 내세우는 문화의 결실들로 채워져 있다. 가령 도자기나 불상 그리고 장례문화재와 서화에 이르는 문화유산들로서 고려청자나 이조백자, 반가사유상이나 석굴암 본존, 그리고 무속화나 민화들은 좋은 사례가 된다. 아시아문화권에서 한국미술의 특수성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국가간의 문화적 차이를 찾는 노력으로 세분화되어 나타난다는 점이 분명해 지고 있다.


오늘날 외래문화의 수용과 극복 그리고 고유성 추구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차별화 문제를 넘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소집단과 개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체성 찾기의 근간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거대단위에서 개인이라는 미세단위로 이동한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담론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이라는 주체가 타자를 수용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제3의 가치들이 한국미술사의 사료가 되고 있다. 전통이란 개인사의 집합이며 개인의 작품은 문화의 DNA로서 지역 공동체의 특성을 도출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화단에 주어진 과제는 서구미술사에 종속이 심화되어온 20세기 한국미술사의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서구미술의 수용과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전통의 개념을 중국화론에 연결시킴으로서 생겨나는 이중적 한계에 주목함으로서 한국미술사 기술의 새로운 방법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며 형성된 한국인의 융합적 세계관과 그 세계관이 구체적 실재로 표상되는 조형방식의 특수성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작가들의 개성적 세계관과 조형방식에 나타나는 보편적 가치를 도출함으로서 한국미술사의 고유성을 가려내려는 것이 한국화단에 주어진 과제다. 이 글은 이러한 조형방식의 사례를 중견화가 이두식의 작품을 통해 모색하려는 것이다. 한국미술사의 격변기인 20세기 후반을 활동했던 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두식의 작품에 나타나는 특수성을 외래문화의 수용과 극복의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그의 작품 형식에 담긴 개체성과 그 안에 녹아있는 전인류적 보편성이 한국미술사 기술의 토대임을 밝히려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2. 중견화가 이두식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저간의 기록은 다양한 비평가와 저널에 의해 드라마틱하게 정리되어 왔다. 그 내용들을 일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47년 경북 영주부석사 근방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그림그리기에 소질을 보이며 성장했고 미술에 조예가 깊던 부친의 지원으로 일찍이 상경해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명망 높은 스승들로부터 배웠다. 대학시절에는 학군단에 가입해 1969년 졸업하면서 장교로 군복무를 했고 대학원을 다니며 ‘수출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작품을 위해 부지런히 연구했으며, 자성의 시간과 더불어 얻은 개성적 드로잉 회화 시리즈인 <생의 기원>으로 1976년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화단에 데뷔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이후 부터는 추상경향인 <축제> 시리즈의 작업으로 세간에 화려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오늘까지 약 2400점의 작품을 생산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두식의 일생은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 30여년간 후진을 양성하는데 할애했다. 또한 미술인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의 이사장, 부산의 대표적 국제미술제의 운영위원장 등 사회적 봉사에도 열정을 쏟음으로서 ‘미술가로서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폭넓은 삶을 살아온’ 그였다. 이렇듯 이두식의 삶은 캔버스를 넘어 학교와 사회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대목에서 존재감이 한층 더해진다. 특히 동시대에 활동했던 음악인들로서 이장희, 조영남 등 ‘세시봉파’나 소설가 최인호와의 우정은 세간에 소상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채로운 삶의 진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다. 예술고등학교 시절의 동창생과 첫사랑 끝에 결혼한 순정파 청년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이태리 로마의 플라미니오 지하철역에 대형벽화를 남기는 폭넓은 활동반경에 이르기 까지 그의 일생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차에도 흥미를 두어 벤츠는 운전기사에게 맡기고 포르쉐를 몰고 주말여행을 떠나는 작가로 소개되는 대목이면 젊은 화가들의 로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조직폭력배의 보스처럼 보이는 ‘과도한’ 정장의 옷차림에다 거구의 몸집 그리고 고릴라로 명명된 그의 면모 앞에서 우리는 이미 그의 오래된 팬이 되고 말 것이다. 


거침없고 화려한 이두식의 삶은 그대로 그의 화폭에서 발견된다. 미술작품이 환경의 산물이자 화가의 삶과 시대를 반영한다면 그 정의는 이두식의 그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의 예술세계에는 열정과 생명 그리고 인간과 문화정치에 이르는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녹녹히 흐르고 있다. 지극히 이두식 다운 세계다. 그가 그린 <축제> 연작은 음악과 소설의 세계이자 인간사의 희노애락과 생노병사를 갈음하는 세계이며, 그것이 화폭위에서 표상되고 소통되는 과정에서 산출된 특정 개념과 표현의 방식들은 고유한 의미와 가치들을 획득하게 된다. 화가로서 이두식의 삶과 작품에는 서양미술사의 다양한 사조들이 읽혀진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특정한 사조에 묶어 놓기에는 무리인 것은 외래문화의 수용과 극복으로 다져온 한국인의 특수한 정신성이 화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두식의 작품에 흐르는 의미와 가치는 회화세계를 경영하는 본능적 행위와 유희가 지닌 정신성이라는 것을. 그것은 사조나 유파 이전의 가치이자 회화 예술이 지닌 본성적 가치라 할 것이다.  


3. 이두식의 작품에 대한 비평적 영역들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 드로잉과 색채 그리고 여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영역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회화예술의 기본적 조형요소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조형요소들은 작품에 적용되는 특별한 동기와 방식에 따라 그 결과와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가령 그가 사용하는 선묘나 색채가 재현적 회화에 속하느냐 아니면 추상적 회화에 속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방식과 정신적 의미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여백의 경우도 그것이 배경이냐 아니면 바탕이냐 아니면 공간이냐에 따라 거기에서 파생되는 가치와 미학적 의미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의 관심은 이 세 요소가 이두식의 작품에 어떤 특수한 형식논리로 전개되는지를 살펴보는데 있다. 아울러 그 형식논리가 동시대의 시대적 역사적 환경과 어떤 연대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작가 개인의 작품에 스며있는 보편적 가치들을 도출해 내는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우선 이두식의 드로잉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드로잉은 1975년 명동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계기로 자기화 단계에 들어가며 독자성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생의 기원>으로 명명된 이 시기의 작업은 종이 위에 연필을 가지고 씨앗이나 열매 혹은 신체의 부분을 연상케하는 형상을 세밀한 기법으로 묘사한 것이다. 배경은 담채 효과를 통해 투명하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며 보는이들의 시각을 극사실과 초현실의 영역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 시기의 드로잉적 요소 중에 전에 없이 특이한 것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있는 선’이다. 종이의 표면에 세워놓은 듯 그려진 짧은 선들은 저마다 그림자를 안고 있어 물성과 더불어 존재감이 돋보이게 된다. 그것은 마치 피부위에 솟아올라 자라는 털 같기도 하고 대지를 뚫고 생장하는 죽순 같기도 하다. 아니면 철갑을 입은 복어의 가시처럼 어떤 날카로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강조된 선의 촉각적 물성은 관객들에게 미시적 시각체험과 긴장감을 제공함으로서 작가가 의도하는 생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서있는 선의 무리들이 생명의 속성과 연계되는 이유는 그 주변에 배치된 유기적 형상의 자연물이나 신체이미지들과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데로 그것은 씨앗이나 열매, 꽃 그리고 배꼽이나 유두, 성기 따위를 연상케 하는 파편화된 신체이미지들이다. 서있는 선과 유기적 형상은 여백의 배경으로 스며들고 퍼지며 시간과 더불어 응고된 수채물감의 담채효과에 의해 우연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그 우연성의 효과를 제어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이른바 화면의 기하학적 분할이나 화면 중심에 주제들을 배치하는 연극적 공간 설정이 그것이다. 이렇듯 이두식의 드로잉 연작 <생의 기원>은 선과 형상 그리고 담채와 화면구성의 다양한 기법들에 의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성으로서 생명을 둘러싼 우연성과 필연성, 미시와 거시의 시각, 자연과 인위의 세계 따위의 대립적 개념들의 융합이 화면에 파생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1980년대 후반이 지나면서 이두식의 드로잉은 파격적인 변화를 보이게 된다. 짧은 선들은 길이가 크게 자라 포도나무 넝쿨 처럼 화면에 산포되었다. 섬세하고 절약되었던 드로잉의 선율은 거친 질감과 동세를 드러내면서 화면에 역동성을 자아내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생에 대한 명상적 태도는 생의 ‘역동성과 환희’를 드러내는 차원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은밀하고 신비스럽고 정적인 사유의 세계에서 벗어나 활력이 넘치는 현상적인 세계로의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이두식의 작품에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것은 자연물의 이미지들이다. 씨앗이나 열매의 형태는 물고기나 잠자리, 하트와 같은 구체적 물상들로 대체되고 선묘의 흐름 속에 녹아있는 신체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드로잉과 이미지가 분리되지 않는 상태의 표현적 현상’ 작업 시리즈에 작가는 <축제>라는 제명을 붙였다. 이제 그의 작품에서 감지되는 것은 음악과 춤 그리고 연극적 속성들이다. 그러나 서사가 아닌 음악과 춤과 연극의 본능적 행위와 유희할 부를 어떤 속성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두식의 <축제>는 선묘의 자유로운 선율로 옷을 갈아 입으며 삼라만상의 현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평론가 신항섭의 표현을 빌자면 “삶의 에너지를 응축한 현란한 선의 유희”가 거기에 있다.  


이두식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본적 조형요소로서 드로잉은 작가의 작품에 본질로 자리하고 있다. 부언하자면 회화예술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선이 삶과 연대하는 길목에 이두식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의 기법은 앞서 언급한데로 짧게 무리지어 서있는 단선에서 자유분방하게 화면속을 유영하는 거칠고 촉각적인 선에 이르기 까지 변주되어 왔다. 때로는 덮여진 물감의 층을 가래질하고 파내는 나이프의 선이나 드리핑에 의해 무작위로 뿌려지는 선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선의 굵기도 다양하다. 평필에서 세필로 펼쳐지는 붓의 유희에 의해 어느덧 선은 면이 되고 그 면은 다시 형상을 지닌 얼굴이 되고 꽃잎이 되면서 그 위에 노니는 세필 드로잉의 희롱을 수용한다. 사실 이두식의 선묘가 사물이나 인간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선이 지향하는 바는 사물이나 인간의 형상에 대한 재현과 묘사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의 화면에서 선은 선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에너지를 품은 선, 자라는 선, 유동하는 선 따위의 개념이 그것이다. 이렇듯 이두식의 드로잉은 형상과의 교접을 통해 세계를 드러내기도 하고, 명증한 선 자체의 운율에 충실하면서 추상적인 영역으로 보는이들을 안내하고 있다.


4. 이두식의 회화비평에서 언급되는 두 번째 요인으로서 색에 대한 논의 역시 드로잉과 동일한 비중으로 그 의미를 추적해 낼 수 있다. 색은 선과 더불어 회화예술의 기본적 언어로서 미술의 장대한 역사와 연구서들을 태동시킨 요인이기도 하다. 이두식의 경우 색은 오방색으로 규정되며 그 의미를 생산해 왔다. 주지하듯 오방색은 다섯 개의 방위를 나타내는 상징색으로 되어 있으나 중국의 음양오행설과 연계되면서 관념화되고 만물의 상과 교합의 이치를 드러내는 역학이론과 철학적 의미로 정착되어 온 것이다. 오방색은 다섯 방위의 공간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목 화 토 금 수로 축약된 천지만물의 상과 조화를 상징하는 색으로, 나아가 우주만물의 생성과 상극상생의 관계를 나타낸다. 이같이 오방색은 이두식의 화면에 공간구성을 위한 의미론적 조형장치로 사용될 가능성을 지닌다. 그리고 오방색의 확장인 음색(陰色)으로도 불리우는 사이색으로 변주되면서 색채 경영의 범주는 다양해진다. 가령 녹색, 벽색, 홍색, 유황색, 자색 등의 사이색에 의한 시각적 감흥은 개인과 집단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될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두식은 자신이 사용하는 색채는 중국이나 일본과도 다른 색감의 것이라 말한다. 너무 진하지 않고 너무 다듬어지지 않는 중용의 색이라는 것이 그가 내세우는 주장의 요지다. 그리고 그것의 사례는 단청과 상여 그리고 무속과 한복 따위의 전통에서 들고 있다. 이른바 고대 이래 이어져 내려온 관혼상제에서 쓰이는 민족적인 원색들은 민족의 근원적 정서를 드러내는 고유색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에는 동양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오방색에도 각가 민족적 특수성을 보이는 색채 감흥의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이두식의 화면에 배치된 색들이 특수한 미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는 배경이다.  


색채가 감흥을 일으킨다면 이두식의 색채 감흥은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온 것이라 한다. 이 때 샤머니즘적 감흥은 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조형적 체험에서 얻어지는 감흥의 세계로 설명한다. 작품에 작용하는 색채가 감정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화면에 표상된 영감과 감성이 샤머니즘적 체험과 비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꽃상여에 장식된 오방색들은 슬픔 속에서도 화려함을 추구했던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요 엑스타시의 서정성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이렇게 화면을 장식하는 화려한 오방색은 급기야 화면에 화려함을 넘어 죽음과 슬픔의 영역과 끈이 닿아있는 황홀경으로 보는이를 안내하는 장치들을 개입시키고 있다. 이때 작가가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금색은 화면에 올려진 색채에 화려와 발광의 견고성을 드러내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금색은 주변의 색들에 명도차를 한차원 상승시키며 일종의 아우라를 공급하는 광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두식의 색채에 적용된 오방색은 그것의 상징과 그 철학적 해석 가능성의 차이로 인해 특수한 환경과 시대적 조건을 살아온 지역의 문화양태를 나타내는 요인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조형 원리로 사용되는 오방색의 특수성은 색채 감흥의 차별성으로 이어지면서 독자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두식의 작품에 등장하는 오방색은 색채의 상징과 색채의 감흥 사이에 융합된 어떤 세계를 지시한다. 그 세계란 드로잉과 더불어 얻게되는 본능적 행위와 유희의 정신성에 끈이 닿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두식의 오방색이 주는 정신성이란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종교의 주술적 에너지를 말하는 것인가? 무당의 춤이 환자를 치유하는 신비를 지닌것 처럼 이두식의 그림은 오방색과 드로잉이 만나 발생하는 시각적 엑스타시에 의해 보는이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5. 끝으로 이두식의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조형요소로서 여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종의 공간경영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린버그가 주장한 모더니즘 회화의 본성이 평면성으로 환원되기 이전까지 서양회화의 역사는 화면에 일루전적 공간을 표상하기 위한 실험과 노력의 역사였다. 하지만 회화의 본성이 평면을 넘어 개념적 공간으로 환원된 모더니즘 이후의 회화에서도 여백은 조형의 기본을 이루는 요소로 남아 있다. 동양회화의 핵심적 화법으로 다루어지기도 하는 여백은 여전히 동서양을 막론하고 작가의 개성과 특수성을 대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두식의 경우에도 여백의 공간을 표상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스프레이 작업이다. 물감을 분사하는 기법은 화면에 배치된 색과 선들이 떠있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 작가는 말한다. 떠있게 한다는 것은 화폭에 원경과 근경을 표상한다는 말이며 화면의 전통적 구성과 구도를 따른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실재로 그가 사용하는 색과 선들은 삼차원적 공간을 드러낸다. 가령 캔버스 위에 칠해지는 물감의 순서에 따라 겹쳐지는 중첩효과가 그것이며 그 위를 부유하는 선들과 색면들이 삼차원적 시각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선과 면 그리고 색의 중첩되면서 이 조형요소들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가는 행위와 유희 이두식의 회화세계를 개성적으로 이끄는 요인이 거기에 있다.


이두식이 경영하는 여백에는 또 다른 의미가 주어지다. 여백이란 말 그대로 조형이 이루어지고 남은 빈자리다. 비어있는 자리는 주로 화면의 좌우 하단부로 정해져 있다.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소맷자락이 허공을 덮는 춤꾼의 몸짓을 받아내듯 그 여백은 다시 공간을 가르며 내려올 소맷자락을 기다리는 긴장의 장소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떤 에너지가 바람처럼 맴돌고 있기도 하다. 시각을 달리하면 이두식의 화면에 표상된 여백은 드로잉과 색채의 강렬한 광휘에 의해 피로해진 시선이 쉬어 머무르는 공간이다. 그것은 엑스타시가 숨쉬는 공간이자 정신적 치유의 공간이다. 결국 이두식의 회화에 표상된 여백은 비어있으며 채워진 공간으로서의 정신성을 드러낸다.  


6. 이상의 형식논리를 지닌 이두식의 추상작업은 유럽의 앵포르멜 혹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자주 비교되어 왔다. 1950년대 후반에 유입되어 국내 화단의 일각을 풍미했던 유럽과 미국 추상미술의 표상 형식은 이두식의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축제> 시리즈와 비교될 가능성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들 회화양식의 특성으로서 자발적 제스추어, 서체적 기술방법, 표현적 재료사용, 설명적 형상의 거부 따위는 이두식의 작품에도 동등하게 나타나는 요소들이다. 또한 앵포르멜 추상에 여전히 남아있는 회화의 전통적 조건으로서 구도나 구성 그리고 연극적인 공간과 서사구조를 이두식의 그림에서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외형과 형식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두식의 그림은 유럽과 미국에서 발원한 추상경향과 차이를 지니고 있다. 우선 프랑스 앵포르멜의 발생은 이차세계대전이 주는 현세에 대한 불신과 실존적 불안 그리고 허무주의의 기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 작가들이 사용하는 색채는 무채색에 가까운 것이었고 ‘오트 파트’로 불리우는 두꺼운 물감 사용방식에도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 앵포르멜 미술이 표상하는 불안한 서정성은 이두식 회화의 제작배경에서 그 표상방식에 이르기 까지 비교될 수 없는 차이를 지니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 발현한 추상표현주의의 경우에는 이두식의 추상과 차이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특성이 전면회화, 즉 회화의 정면성을 부정하고 화면의 중심과 주변에 등급을 균질화함으로서 평면성으로 귀결시키는데 있다면, 이두식의 작품과의 거리는 그만큼 멀게 느껴진다. 이두식은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국내에 유입되던 시절의 작가가 아니라 외래사조가 급격히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목격한 세대였다. 1970년대의 다변화되는 미술의 양상속에서 서구미술은 수용의 차원을 넘어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서구미술의 수용과 극복의 시간은 이두식에 있어서도 정신적 원천을 찾기위한 노력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찾은 것이 동양적 전통이었다. 서체적 추상이 주는 동양사상과의 결합은 서구미술의 극복에 어떤 자존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거기에도 인정할 수 없는 요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 미술평론가 짜오 리(Zhao Li)는 이두식의 추상예술의 근원을 노자의 도덕경과 중국화의 전통으로 귀결시키고 있는 경우다. 그는 ‘The great appearance has no set form’이라는 제명하의 평문에서 이두식의 작품을 ‘동방추상(Eastern Abstraction)’이라는 용어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그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대범하여 삼라만상하고 무한생기가 있으며 표달하려는 것이 장려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기패와 경계”로 설명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짜오 리는 이두식의 추상이 중국서법과 연계하면서 이두식의 작품의 특성을 기백과 우연성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이렇듯 이두식의 그림을 ‘동방추상’이나 ‘중국서법’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은 흥미롭고 타당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해석의 자의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짜오 리의 주장에는 미학적 근원과 정신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는 이두식의 추상미술은 한국민족 문화전통에 영향을 끼친 중국적 근원을 발견함으로서 시야가 넓어지고 심오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의 수용과 극복의 과정에서 발견한 한국 추상회화의 근원은 다시 중국의 사상과 서법에 의해 해석됨으로서 정체성의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과연 이두식의 추상회화의 사상과 형식은 중국의 전통적 사상과 서법에서 온 것인가? 


필자는 이두식의 드로잉적 추상을 중국사상과 서법 글씨체 구조로 의미화시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이두식의 작품에는 서체 구조학적인 짜임이나 필법의 논거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필력의 자유분방한 기운은 원초적 행위로서 그리기의 유희성이 강조되어 시각을 진동하고 있다. 서체의 고난한 법칙성과 수련의 과정 후에 나타나는 자유분방함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는 원초적 그리기의 행위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두식의 회화에 나타나는 행위는 삶의 본능적 행위이며 삶의 유희이자 원초적 정신성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것은 서양이나 중국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선 인류 보편적 속성며 그 속에서 파생되는 정신성은 그가 속한 시대와 환경에서 얻은 특유성을 지닌것이다. 


7. 이상에서 보듯이 이두식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과 색 그리고 여백은 회화예술의 기본형식  위에 구축된 특수한 세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가 추가한 개념과 기법의 방법론에 기인한 것이다. 과거의 아카데미즘 회화가 눈을 통해 망막에 비친 빛의 이미지에 어떤 개념과 방법론을 추가시킴으로서 작가의 개성이 확립되었던 것처럼, 이두식의 그림은 조형의 형식으로서 선과 색 그리고 여백의 보편적 특성에 특수한 개념과 기법을 추가시킴으로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개념과 기법은 그가 미술학교에 입학해 수학하면서 배운 서양의 미술양식과 기법들이자 그것에서 피어난 개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의 기간을 마치고 자신의 작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양미술사의 기법들과 개념들은 자기화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 한국의 전통성을 추구하면서 다시 중국사상과 화법에 빚지게 되었으나 궁극적으로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개성은 주어진 환경과 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는 것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두식은 말한다. “현대미술로서 한국적이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작품하고 있는 감성대로, 서양의 앞선듯한 것에 지나치게 매료되지 않고 자기식으로 그리면 그게 한국적이다. 그게 잘 표현되면 세계적인 것이 된다”. 이두식의 회화가 20세기 한국미술사에 자리하고 있는 주소지는 어디쯤일까. 서양미술사의 지류에 편입되지 않고 중국미술사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은 어디인가. 


이두식의 회화가 지닌 궁극적 가치는 ‘그린다는 본능적 행위의 유희와 그 정신성’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서양이니 중국이니 한국이니 하는 지역과 그 지역들이 생출한 문화적 관습들 모두를 끌어안고 벗어버린 세계로서의 작품세계이다. 그의 작품에 주요한 요소인 여백이 그런 것처럼 그의 화면은 비워냄으로서 채워지고 채움으로서 비움을 지향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생명의 선율들과 색채들은 우리의 삶에 열정과 환희의 서정을 드러내며 자연과 문명 사이의 조화를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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