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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을 위한 과제

김영호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을 위한 과제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제주의 문화환경이 바뀌고 있다. 제주 미술계의 기둥이었던 제주출신 원로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외지에서 입도한 미술인들이 채우고 있다. 바뀌는건 사람만이 아니다. 갤러리나 미술관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나 예술인마을 같은 문화기반시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제주는 한반도의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를 요구한다. 제주도를 문화가 숨쉬는 섬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제주문화 진흥을 위한 예술인 유치전략과 문화기반시설 중장기 마스터 플랜이 다시 세워져야 할 시점이다. 무엇이 제주문화란 무엇이며 제주문화를 어떻게 진흥시킬 것인가? 지난 6월 8일 타계한 변시지 화백은 제주미술인들에게 과제를 남겨 놓았다.


변시지 화백은 1926년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오사카와 서울 그리고 제주를 선회하는 삶의 서클을 그리며 세계인들의 시선을 제주로 이끌었다. 황톳빛 바탕에 간결한 필치와 독자적인 예술의지를 통해 화백이 남긴 ‘제주화’를 통해서다. 특정작가의 화풍에 지역명을 붙인 경우는 전례 없는 일이다. 화백의 작품은 단순한 소재주의를 넘어서 화산섬의 문화형성에 지대한 공헌이 인정되는 대목이다.


변시지 화백은 제주 지역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제주에서 비롯되었지만 제주의 울타리를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초가집이며 돌담, 정주석, 소나무, 조랑말, 그리고 까마귀 같은 제주의 풍물들은 화백이 경영하는 화면에 초대되어 새 생명을 구가하고 있다. 사색의 마당에 거칠게 자리잡은 황갈색 빛과 검정색 선묘는 은유와 환유의 언어가 되었고, 폭풍속에 초가집을 지키는 외로운 사내는 인간의 실존상황을 드러내는 시각기호가 되었다. 변시지 화백이 연출해 내는 세계는 고독, 은둔, 대화, 기다림, 방랑, 무소유 등의 보편적 인간의 삶과 연계되어 있다. 나아가 변시지 화백의 예술은 무소유의 철학을 드러낸다. ‘가진것이 없기에 숨길것도 없는 제주인의 삶’을 드러내고 있음은 밭이나 언덕 그리고 초가집 내부 등 간략하고 비어있는 삶의 공간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가치들은 변시지 화백이 겪었던 시대적 상황과 인고의 시간을 통해 얻어진 결실이라는 점에서 숙연해 진다.


변시지 화백은 역사속으로 날개를 접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신화가 되어 재활할 가능태로 남아있다. 그의 ‘제주화’가 탄생시키는 고유한 예술형식과 정신적 가치들이 새롭게 숨쉬는 제주문화 진흥의 자원으로 활용될지 아니면 개인사 속으로 편재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제주 미술인들의 몫이다.  


최근 물방울화가로 불리는 김창열 화백이 제주도에 작품 200여점을 기증했고 제주도는 미술관 건립을 약속했다 한다. 제주도가 환태평양의 눈으로 생장하는 한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제주도는 이중섭미술관을 개관한 이래, 장리석 화백으로부터 작품 110점을 기증받고 제주도립미술관 내부에 기념관을 설치했다. 저지리 제주현대미술관 내부에는 김흥수 화백의 특별전시실도 들어선 상태다. 최근에는 이왈종 화백이 개인 미술관을 개관했으며 박서보, 박광진, 조성묵 같은 유명화가 들도 제주도 정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환의 시기에 국내외 미술계의 대표작가들을 제주도로 유치하는 일은 제주도정 문화부분의 핵심사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비전과 방법이다. 제주도정은 50년 후의 제주도 미술지형을 지금 설계해야 한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기념관 건립 논의는 그 설계도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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