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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예술로 이끄는 미술관

김영호

 I. 필자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특별한 관심을 두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자연친화적인 주차장에서 미술관으로 통하는 여유로운 동선과, 건축물 내외부에 넉넉히 배치된 만남과 휴식의 광장이 그렇고, 우면산에서 내려오는 계절의 싱그러운 바람도 이곳을 즐겨 찾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두는 부분은 예술의전당이 운영을 위한 핵심가치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공공성’에 있다. 저간의 사업유형에 비추어 볼 때 한가람미술관이 지향하는 공공성은 ‘대중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외부 기획사가 개최하는 대중적 전시회들, 가령 아트페어나 블록버스터형 전시들에서도 그 속성을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람미술관이 대중성을 지향하는 문화시설이라 부를 수 있는 최상의 근거는 대관전이 아니라 미술관이 주최하는 기획전이다. 필자는 기획전이야말로 한가람미술관의 대중적 정체성을 이끄는 견인차라 생각한다.  

  미술관이 대중성을 추구한다 할 때 우리는 종종 오해를 하게 된다. 예술사회학자들이 규정한 ‘대중’이란 말이 ‘세속적이고 무책임하며 예술을 부의 논리로 바라보는 속물적 취향의 군중’을 의미하는 단어로 규정해 온 탓이다. 이 경우 대중성은 값싼 스노비즘으로 취급되며 따라서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작금에 현대미술에서의 대중은 가벼이 상대할 집단이 아니다. 미술관이 기획한 학술 강좌에 참여한 관객의 질의내용에서 어린 자녀를 이끌고 전시실을 찾는 부모들의 작품해설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의 심미안이나 비평적 관점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꿈꾸던 ‘한 단계 높은 대중문화’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도래한 느낌이다. 매년 배출되는 3만여명의 예술대 졸업생에 힘입어 대중들은 이제 예술을 문화로 읽고 거기서 삶을 볼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 단계 높아진 대중문화를 선도할 양질의 전시회를 생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예술성이 높으면서도 대중성을 충족시키는 전시를 만드는 일은 그만큼 전문적인 능력과 경륜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위상은 자체기획전에 의해 백일하에 그대로 드러난다. 단체장이 아무리 지고한 운영지침을 선언한다 하더라도 실무팀이 기획한 전시회 하나를 보면 조직의 현재와 미래가 그대로 판명되는 것이다. 필자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기획전을 방문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이번 개최되는 기획전 <한국현대미술과 빛 - 빛나는 미술관>에 거는 기대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부산함 없는 날을 빌어 조용히 감상할 것이다. 

       

    

  II.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좋은 전시회란 대중과 소통하는 전시회라 할 수 있다. 대중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전시회가 질높은 대중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 우선 ‘주제설정’이 그래야 하고, 주제를 전시작품으로 풀어나가는 ‘기획능력’이 그래야 하며, 내세운 주제를 실현해 줄 우수한 작가의 ‘선정능력’도 질높은 전시회를 위해 예외로 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관이 담당해야 할 역할들이며 대중들이 개입하는 단계 이전의 요소들이다. 대중들의 역할은 전시회가 개막되는 순간부터 주어진다. 대중들의 질 높은 반응은 전시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고 할 때 좋은 전시는 결국 대중들의 역할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전시의 완성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방문할 <한국현대미술과 빛 - 빛나는 미술관>의 경우를 들어 살펴보도록 하자. 

  관객은 우선 전시의 주제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전시주제는 기획자의 기획의도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미술과 빛 - 빛나는 미술관>이라는 제명으로 정해졌고 빛을 주제로 삼아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15인의 작가들의 작품 60점을 선보인다. 회화, 조각, 영상, 설치를 망라한 작업들이다. 한가람미술관 전시실은 이러한 빛의 작업들로 채워짐으로서 빛나는 미술관이 되겠지만, 정작 기획팀의 진짜 의도는 ‘미술관의 기능’에 대해 성찰하도록 관객을 유도하는데 있다할 것이다. 빛은 자체가 예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작품 혹은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빛은 예술적 인식의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 뒤샹의 변기처럼 축성된 공간으로서 미술작품이나 미술관의 영역에 들여온 빛은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빛나는 미술관이 문자 그대로 빛을 내는 미술관의 차원을 넘어 빛을 예술로 빚어내는 공간으로서 미술관이 되기를 바라는 기획자의 의도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한편, 주제를 전시작품으로 풀어가는 기획자의 능력은 설정된 주제를 구체적 조형작품으로 제시하여 관념을 생산하도록 이끄는 능력을 말한다. 빛을 소재로 미술관에 설치된 다양한 기법과 형식의 작품들이 어떻게 예술의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관객에게 주어진 두 번째 몫이다. 기획자의 기획의도와 관객의 감상행위가 서로 연결되어 생겨나는 동질감도 이 대목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된다. 따지고 보면 빛이 예술이 된 역사는 미술사에서 아주 길다. 구약시대에 하느님이 창조하고 신약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징표가 된 빛은 중세의 스테인드 글래스를 통해 작품으로 구현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발명된 명암법은 빛에 의해 드러난 외적 세계를 평면위에 환영적 이미지로 표상하기 위해 이룩한 성과였다.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방)’를 통해 풍경의 이미지를 관찰했다는 고대의 기록도 흥미롭다. 빛이 그림이 된 이후 바로크에서 인상주의 미술에 나타나는 빛의 예술은 외적 세계에서 부터 심리적 인상의 세계로 전환되는 선적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모더니즘 미술의 노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빛은 화면을 벗어나 빛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전구와 형광등이 표현의 매체였다. 이후 현대미술의 한 복판에 들어오면서 빛은 디지털 픽셀로 전환되고 미디어아트라는 장르를 파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획자의 기획의도와 관객이 만나는 접점은 이러한 빛의 길다란 사연의 지점들 위에 설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는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빛의 메시지를 집합시켰다. 이 때 관객에게 주어진 역할은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빛의 세계를 받아드리고 누림으로서 기획자가 바라는 전시의도와 소통하는 일이다. 관객들은 어떤 작품들이 어떠한 개념을 만들어내는지를 나름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전시의 질을 담보하는 것은 그 작품에 사상의 옷을 입히는 작가들이다. 물론 작가들의 역량은 작품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작품의 행간에 숨겨진 사상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이나 예술철학을 바탕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작품의 질을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시기의 한 때는 작품의 형식과 물질 자체가 작품의 본질과 순수성을 드러내는 전부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작품은 작가로부터 나온 것이고 작품의 사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의식에 연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가의 선정과 작가의 인성과 예술성에 대한 공부를 통해 예술의 폭을 측정할 수 있다. 뒤샹의 변기는 뒤샹이라는 작가의 사상과 그 울타리에서만 가치를 지니게 되는 이치와 같다.

 

 

  III.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15명의 작가는 김성수 박제성 백남준 부지현 신성환 신정필 윤애영 이상진 이용덕 이준우 이진준 장유정 정정주 최수환 홍승혜 들로서 대부분 국내화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증식되어가는 소비와 향락의 밤을 밝히는 인공적인 불빛 속에서 결핍된 삶의 모습을 발언하고, 네온싸인의 기호를 광고학적 언어로 번안하며, 증식을 멈추지 않는 디즈니세계의 휘황한 환영의 놀이기구를 디지털 이미지로 극대화시켜 공허한 욕망의 끝자락을 제시하는가 하면, 집어등을 미술관 공간으로 끌어들여 삶의 메타포를 드러내는 작업에서, 빛의 움직임이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되고 모니터에 입력해 다시 관객의 이메일로 전송되는 생산과 소통의 작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빛의 변주를 보여준다. 한편 관객과의 적극적인 교감을 보여주는 작업들로서 환상적 이미지 작품과 빛에 의한 잔상 이미지를 통해 존재감을 유도하는 작품은 이미 국내외 미술계의 전시를 통해 잘 알려진 경우다. 거장과 신인에 이르는 비디오와 컴퓨터 작업들은 빛이 현대미술에 중심축에 들어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 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예상되는 파급효과는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빛 미디어가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있을 것이다. 또한 빛이 미술관에 들어옴으로서 관념이 되고 그것이 다시 관객들의 의식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얻게될 새로운 경험도 기대할 만한 요인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한단계 높은 대중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2012.11)  

 

 

한국현대미술과 빛 - 빛나는 미술관>전(2012.12.7-2013.1.27) 프리뷰

출처 : <Beautiful Life>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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