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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남, 오래된 미래와 도래할 미래 사이

고충환




이상남, 오래된 미래와 도래할 미래 사이 


고충환 | 미술평론가


어릴 때 작가는 집안에서 철물점을 했다. 장안에서 손에 꼽는 큰 철물점이라고 했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시절 작가는 철물점에 가득한 철물들을 보고 만지면서 놀았다. 파이프와 앨보, 볼트와 너트 같은 철물들은 기능을 알 길 없는 작가에게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냈을 것이고, 사물들 저마다 고유한 형태와 구조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철물점의 추억은 작가의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의식적인 기억보다는 몸 기억으로 등록되었을 것이다. 의식은 잊어도 무의식이 기억하고 몸이 기억하는 반자동적인 기억으로 등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알게 모르게 작가의 현재 작업을 지지하는 모티브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관련해서 작가는 인공에 대한 기억(인공적인 기억?)이라고 했다. 인공에 대한 기억? 인공적인 기억? 인공에 대한 기억이든 인공적인 기억이든 만들어진 기억을, 조형된 기억을 상기시킨다. 특히 인공적인 기억이라는 말은 칩 형태의 조작된 기억을 이식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기시키고, 그 로봇이 추억하는 조형된 기억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말 자체만 놓고 보자면 물질이 정보로 환원된 시대 감정을 상기시키고, 가상과 현실,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 감정을 상기시키지만, 정작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도래할 미래 그러므로 지금의 미래보다는 그때의 미래를 상기시킨다. 

이를테면 많은 부분 실현되지 못한 채 청사진 형태로만 남아있는 미래주의 건축을 상기시키고, 실현된 경우로 치자면 유리와 철골 구조물 건축이 막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를 상기시키고,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보들레르의 플라뇌르(정색하고 보는 대신 스치면서 보는, 도시의 산책자)를 상기시킨다.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반영된 기계주의의 시대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를 상기시킨다. 사물과 향수, 혹은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로 치자면 벤야민의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것인데, 벤야민은 새로운 모든 것(그러므로 사물)은 빠르게 시간 속으로 흡수되고, 향수를 자극하는 정서적 대상으로 전이되는 것이 사물의 운명이라고 했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에는 사물의 형태와 구조에 대한 호기심이, 오래된 미래에 대한 선망이, 기계주의의 시대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향수가 있다. 그리고 그 향수 중 일정 부분(어쩌면 결정적인 부분)이 작가의 유년 시절 철물점의 추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기계주의에 대해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크게 경도된 바 있고, 초현실주의 시기 마르셀 뒤샹 역시 기계주의의 시대 감정을 반영한 경향의 작업이 알려져 있다. 작가 자신도 영향 관계를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특히 <일곱 신랑과 일곱 신부>라는, 혹은 <큰 유리>라는 아리송한 제목을 가진 작품에 나타난 욕망과 기계의 조합(질 들뢰즈의 욕망하는 기계?)에 공감했을 것이다. 작가 자신은 이처럼 뒤샹의 작품에서 욕망과 기계의 조합, 혹은 욕망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과 함께, 형식적으로 회화와 조각, 입체와 평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겹겹이 포개진 회화적 지층이 자기 내부에 공간적 깊이를 만드는, 평면에 갇힌 입체적 일루전을 만드는 작가의 회화적 방법론에 결정적인 지침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 이미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런 연유로 당시 교수 신분인 작가들과 함께 주요 전시에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 대략을 보면, 작가는 각 1972년과 1974년 <앙데팡당> 전시에 연이어 참여한다. 1972년 처음 창설된 전시로서, 작가는 특히 1974년 열린 제2회 전시에 사진 매체를 활용한 <창문> 시리즈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지금이야 사진이 대세지만, 회화(지금 용어로는 단색화, 당시에는 모노크롬 회화 혹은 개념미술 혹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말로 막연하게 정의되던)가 주류인 당시 환경을 생각하면 현대미술에 대한 작가의 형식실험과 선구적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희미하게 옅은 갈색 창문틀에 창문이 닫힌 형태, 반쯤 열린 형태, 그리고 열린 형태가 시리즈를 이루는 작품이다. 보통은 창을 통해서 일루전을 보기 마련인데, 오브제(창문)와 일루전(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동시에 보게 만든, 사물과 일루전 사이의 이중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했다. 시간은 수직적(지금으로 치자면 선형적인)이 아니라 수평적(비선형적인, 아니면 휘어진)이라는 주제를 담은 작품이라고도 했다. 사물(오브제)과 일루전(이미지)의 관계를, 그리고 시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수평적인 시간을 다룬 것이란 점에서 시리즈 작품 간 사이 간격을 좀 더 채워 넣으면 달의 기울기를 적용해 시간을 표현한 백남준의 비디오 달 시계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작가의 경우, 전통적인 해 시계의 변용된 경우가 백남준의 달 시계와 비교된다고 해야 할까. 

사진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 드물었던 당시, 평자들은 빛을 받아들이는 사진 기법을 이용해 부유하는 느낌과 함께, 현상학과 개념미술 그리고 미니멀리즘 등 시각을 갖고 가면서도 뭔가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세계적인 평론가 조셉 러브와 나카하라 유스케가 특히 주목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1970년대 중반 국내 최초로 현대미술제가 창설된 이후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 현대미술제가 연이어 열리는 계기가 된 < 대구현대미술제>(현재 강정설치미술제의 모태인)에, 1977년에는 일본 센트럴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박서보, 이우환, 김창렬, 윤형근 참여)에, 그리고 1978년 <7인의 작가_한국과 일본 그룹전>에 연이어 초대를 받는다. 

1979년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도 초대를 받았는데, 이때에도 작가는 사진 기법을 이용한 작품을 출품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예 사진 작업에 액자 대신 창틀을 입힌 작품으로, 사진의 한 부분으로 창틀이 포함되었던 전작에서 나아가 이미지(창틀)가 실물을 얻으면서 메시지가 좀 더 분명해졌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실제 창틀이 있음으로 인해 새로운 공간이 나타나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실물을 매개로 이미지(일루전)에 간섭이 일어나고(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사건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전에 없던 공간이 열려 공간감이 달라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파울루 전시 이후 작가는 아예 눌러앉을 작정으로 6개월간 파리에 정착했지만, 여의치 않아 귀국하면서 잠시 무대 미술을 했는데, 제2회 대한민국 무용제에서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을 매개로 한 것이지만 빛에 대한 관심이나, 뉴욕 진출 이후 본격화할 것이지만 무대 미술과 무용을 매개로 한 것으로 치자면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이미 이 시기에 태동 되었다고 해도 좋고, 그 경험이 이후 평면 회화의 감각적 토대가 되었다고 해도 좋다. 말하자면 몸과 몸이 부닥치는 순간, 사물과 사물이 관계 맺는 사건(특히 사물극에서 보는 것과 같은)으로부터 파생되는 움직임, 내재적으로 움직임을 잠재하고 있는 정지된 순간의 움직임이 불러일으키는 팽팽한 긴장감, 날 선 앳지의 감수성이 모두 이 시기를 주변으로 예비 되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작가는 마침내 1981년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열린 <Korean Drawings Now> 전시에 초대받은 것을 계기로 이번에는 파리 대신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그렇게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섰지만, 이미 풍경은 바뀌어있었다. 한국에서 알던 현대미술의 풍경과 뉴욕을 중심으로 한 현대미술의 풍경이 판이했다. 국내에서 첨단으로 생각했던, 그리고 실제로도 작가 자신이 주력했던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이 이미 지나간 전설이 되었다. 피나 바우쉬(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허문, 무용을 연극적인 상황 논리로 풀어낸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안해 현대무용의 판도를 바꿔놓은 독일 출신 표현주의 무용가), 안젤름 키퍼, 팽크, 그리고 요셉 보이스 같은 독일 신표현주의가 대세였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하루에도 몇 번씩 현대미술의 풍경이 바뀌었고, 그 바뀌는 풍경을 따라잡지 못하면,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래서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내려놓기로 했다. 영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얀 종이 위에 펜으로 선을 긋고 점을 찍는, 어쩌면 회화의 가장 초심, 가장 기본을 표상할 최소한의 회화적 행위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회화의 존재 의미를 다시 묻는, 고쳐 묻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막막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자기만의 형식을 일구었다. 


포개진 원과 점이 있는. 자로 잰 듯 반듯한 선이 그어진. 살갗처럼 부드럽고 우호적인 색 면 밑으로 흐릿하게 다른 그림이 중첩돼 보이는. 진열장에 정렬된 자전거 같은. 자전거 바퀴 같은. 컨베이어 벨트 같은. 도르래 같은. 고무 밴드 같은. 용수철 같은. 고정핀 같은. 안경 같은. 휠 같은. 체인 같은. 링 같은. 춤추는 오선지 같은. 오선지 위에 떠도는 악보 같은. 시계 부품 같은. 시침과 초침 같은. 톱니바퀴 같은. 강철 구조물 같은. 돔 같은. 건축 도면 같은. 설계도 같은. 기계 디자인 같은. 청사진 같은.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도형 같은. 모나드 곧 하나의 단위원소가 반복 재생산되는 모듈 구조 같은. 패턴 같은. 문양 같은. 레일 같은. 아케이드 같은. 기계 부품 같은. 기계 부품의 실루엣 같은. 금문교 같은. 철골 다리 같은. 기중기 같은. 크레인 같은. 마차 같은. 증기 기관차 같은. 증기선 같은. 발전소 같은. 헬리콥터 같은. 아령 같은. 균형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추 같은. 깔때기 같은. 
사실상 밑도 끝도 없이 열거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어휘력만 뒷받침된다면 무작정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러면서도 기계와 제도와 도면과 기하학과 수학과 음악(리듬 그러므로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는)과 건축과 공산품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화면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고 있는 것도 같은,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매번 다른 것이 보이는, 홀로그램처럼 매번 다르게 보이는, 그러므로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저마다 다를, 보는 이의 의식과 상상력과 관심사에 따라서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조합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렇게 해도 무방할 것 같은, 그렇게 열린, 가변적인, 비결정적인, 이것들은 다 무엇인가. 

작가의 화면에 나타난 모나드 그러므로 단위 원소들은 하나같이 00처럼 보이지만, 정작 바로 그것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00처럼 보이면, 그러므로 재현적인 기미가 보이면 바로 달아난다고 했다. 모나드에 모나드를 덧붙이거나 빼기를 통해,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방식을 통해 탈재현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친근함과 낯섦 사이, 알만한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 재현적인 것과 탈재현적인 것 사이에 이미지를 위치시킨다고 해야 할까. 마치 균형을 잡지 못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추처럼 비결정적인 사이에 그림을 위치시킨다고 해야 할까. 그때마저도 결정적인 방식이 아닌, 언제든 다시 고쳐잡을 수 있는 잠정적인 형태로만 그렇게 한다고 해야 할까. 

엄밀하게 말해 작가에게 최종도 없고 결정도 없다. 그러므로 완성도 없고 완결도 없다. 다만 임의적인, 잠정적인, 밑도 끝도 없이 연이어지는, 그러므로 무한정 열린 과정이 있을 뿐. 다시, 그러므로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과정 중에 있는 작업마저 최종인 양 전시해도 무방하다. 과정이 곧 최종이고, 완결이므로. 바로 그것과 같은 결정적인 의미, 고정된 의미를 지시하는 것이 최종을 의미하고 완결을 의미한다면,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 의미를 해체하고, 그 의미가 다시 움직이도록 열어놓는 것이므로. 

작가의 작업에 대한 관념과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인데, 그 태도와 입장에서 질 들뢰즈의 00되기에 대한 공감이,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에 대한 공감이, 리좀에 대한 공감이 읽힌다. 바로 그것을 정향 하기보다는 바로 그것인 척하기를 통해 재현(그 자체 제도의 논리인)의 억압적인 구조를 폭로하고, 재현의 위치에 시뮬라크라를 재정초한다. 그러므로 시뮬라크라는 없다. 사본도 없고 사본의 사본도 없다. 다만 무수한, 다른 원본들이 있을 뿐. 배열과 배치에 따라서 매번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 오리지널리티들이 있을 뿐. 여기서 기계 복제로 인해 상실된 아우라(다만 오리지널리티를 위해서만 예비 된)가 다시 획득된다(참고로 말하자면, 벤야민은 기계 복제로 인해 아우라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한편으로, 마침내 이미지의 민주화를 실현했다고 상찬하기도 한다). 

담론의 차원에서 볼 때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모나드에 모나드를 더하고 빼기를 통해, 해체하고 편집하고 재구성하기를 통해, 그러므로 배열과 배치를 달리하기를 통해, 탈맥락과 재맥락하기를 통해 매번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하고, 매번 다른 의미를 의미하게 만들고, 그렇게 매 순간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얻게 하는 것에서 재현의 의미를 재고하게 만드는 의의가 있다. 

담론적으로 볼 때 그렇고, 실제 제작 과정을 보면 작가는 레이어를 수도 없이 쌓는다. 조합된 모나드들의 층을 쌓아 올리는 것인데, 수도 없이 그렇게 하고,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한다. 밑그림이 비쳐 보이고, 그래서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림에 살이 보이고, 투명한 깊이가 느껴지는 것도, 평면이면서 입체처럼 보이는 것도 그래서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개성의 흔적을 없애 그림을 익명적인 것, 중성적인 것, 가치 중립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인데, 공산품인 척하기를 통해, 기계주의인 척하기를 통해 저자의 죽음으로 작가의 위치를 소거하는(지우는) 미니멀리즘적 주체를 재소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에서 익명에 바쳐진 미학적 장치들, 이를테면 상품의 그것을 상기시키는 매끈한 외관과 날 선 앳지와 같은 깔끔한 마무리가 역으로 죽은 작가를 다시 생환한다는 것이며, 이로써 오히려 작가 이상남만의 오리지널리티(편집증적 주체?)가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도무지 그린 것 같지 않은 그린 그림으로 되돌아오고,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지털적인 것을 아날로그적인 방식 그러므로 철저하게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그린 그림으로 되돌아온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말로 정의하고 범주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작가는 그 말이 다만 편의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자신은 다만 기하학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그러므로 재사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고, 추상을 추상하는 그러므로 메타추상을 실험하고 있다고도 했다. 전적으로 동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기하학과 기하학에 대한 해석이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작업을 지지하는 인문학적 배경 혹은 사유 틀이 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해도 좋다. 이를테면 기하학과 수학과 음악의 상관관계라든지, 이로부터 유래한 황금 비율과 신성 비례의 준칙이라든지, 그리고 여기에 특히 음악을 수학과 동일시하는 것이나, 그러므로 음악을 고도로 추상적인 예술 장르로서 정초하는 정통미학의 입장이 작가의 작가적 인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그렇게 작가는 산업혁명 이후 기계주의 시대의 시대감정을 추억하고, 여기에 어쩌면 시작도 끝도 없는,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연이어지는 우연하고 무분별한 모나드들의 연쇄, 그러므로 정보들의 연쇄, 의미들의 연쇄, 서사들의 연쇄가 의미를, 서사를 갱신하는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링크의 시대감정을 추억한다. 그렇게 오래된 미래와 도래할 미래 사이에 서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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