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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병건, 프레스 조각으로 조각에 새로운 장을 열다

고충환



심병건, 프레스 조각으로 조각에 새로운 장을 열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소리와 먼지 그리고 때로 냄새 때문에 조각가의 작업실이 도심에 둥지를 틀기는 쉽지 않다. 조각을 한다는 것이 천형도 아닌데, 일부러 찾아 들어가기라도 한 듯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과 동떨어진, 세상을 등진 유배지 같다고 해야 할까. 작업실에서 나는 소리를 빼면, 절간이 따로 없었다. 조각가 심병건의 작업실이 그랬다. 아마도 산 뒤편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지만 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길 끝자락에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다. 벽도 경계도 없는 것이 문 닫은 채 방치된 공장 같았다. 그렇게 공장 같은 작업실에서 공장장 같은 작가가 손님을 맞았다. 실제로도 크레인과 프레스기, 그리고 여기에 포크레인까지 갖추었으니 공장이라고 해도 좋았다. 철물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갖 기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공장에서 작가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전시장에서만 봐왔던 조각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프레스기의 압력으로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작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압력을 견디면서도 신축력이 있어야 하는 만큼 나무로 고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스테인리스스틸 판을 놓고 스위치를 누르면 위에서부터 아래로 프레스기가 내려와 압력을 가하는데,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스틸 판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한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고임이 터질 수도, 철판이 튕겨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위험천만한 일이 있었던 터라, 프로세스에 대한 감이 없는 사람과 함께 작업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감각도 위험도 오롯이 작가의 몫이었다. 

프레스기의 팔 끝에 조각가의 손에 해당하는 연장을 직접 제작해 갈아 끼울 수 있게 했다. 원하는 형태와 질감을 얻기 위한 것으로서, 용도에 맞게 드릴 날을 갈아 끼우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프레스기의 압력강도 여하에 따라서, 속도에 따라서, 그리고 프레스기의 팔에 장착한 연장의 종류에 따라서 크고 작은, 깊고 얕은, 부드럽고 날 선 패임을, 구김을, 질감을, 형태를 얻을 수가 있었다. 큰 틀에서의 밑그림을 작가가 그릴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형태가 나올 수가 없는, 우연에 내맡겨진 작업이었다. 때로 프레스기가 의외의, 예기치 못한 형태를 암시하고 제안해올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에 대해서는 계획과 우연이 만든, 작가의 구상과 프레스기의 실행이 만든, 작가와 프레스기가 협력해 만든 작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자신의 조각을 프레스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차제에 프레스 조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작가의 프레스 조각은 어떤 변별성이 있고 미학적 가치가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탈장르 현상이 보편화되었고, 그중 탈장르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조각이다. 그러므로 현대조각은 현대미술을 최전선에서 견인하는 장르라고 해도 좋다. 전통적인 조각의 본성으로 치자면 물성(재질, 그러므로 재료적인 성질과 질감)과 양감(속이 꽉 찬 덩어리)을 들 수가 있는데, 이런 본성에 반하는 조각이 조각을 해체하면서 확장하고 있다. 부드러운 조각, 움직이는 조각(키네틱아트), 빛 조각(라이트아트), 미니어처 조각, 사진 조각, 그리고 여기에 공기 조각에 이르기까지 각종 탈 혹은 비 물질 조각이 조각의 이름으로 소환되면서 조각을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병건의 조각이 그렇다. 작가의 조각은 외관상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이라는 고유의 물성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비록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양감도 그대로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작가의 조각은 스테인리스스틸 판을 종잇장처럼 구긴 형태를 기본형으로 이를 재구성해 만든 것이다. 때에 따라서 그림처럼 벽에 걸리기도 하는데, 철판이라기보다는 구겨진 알루미늄포일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조각이 주는 묵직함과는 거리가 먼 가벼운 느낌이 오히려 현대적인 감각에는 더 맞는 것도 같다. 더욱이 여기에 반투명한 색감으로 부드럽고 은근하게 발광하는 캔디 컬러로 도색 마감한 것이 마치 선물 포장지를 받아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만큼 작가의 조각에 대해서는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전통적인 조각과 현대적인 조각 사이, 그러므로 탈 조각의 경계에 자리매김해도 좋다. 전통적인 조각을 변주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단순화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모더니즘이 정형을 지향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감각 레이더는 비정형을 향한다. 전통적인 조각은 구상은 물론이거니와 추상에서마저 전제된 주제가 있었고, 개념이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소재가 있었고, 정해진 형태가 있었다. 반면 현대미술, 그러므로 어쩌면 현대조각에서는 알아볼 수 있는 형태도 없고, 정해진 룰도 없다. 우연한 것들, 비정형적인 것들, 가변적인 것들, 일시적인 것들, 덧없는 것들, 가벼운 것들, 의미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의미하는 것들을 향한다. 일상에 대한 현대적인 감성과 동시대적 반성이 반영된 것일 터이다. 

작가의 경우로 치자면, 알다시피 프레스기는 정해진 형태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공장에서나 쓸 일이지 조각가가 쓸 장비는 아니다. 최소한 생각하기 어렵고, 실제로도 작가를 제외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프레스기는 매번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고, 우연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철판이, 그리고 여기에 선물 포장지와도 같은 캔디 컬러가 도색 된 조각이 바람처럼 가볍고, 일시적이고, 덧없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는 거울처럼 외부 환경을 반영한다. 그런데, 그 거울에 구김이 있고 주름이 있다. 세상을 파편화하면서, 일그러트린다. 우연한 것들, 비정형적인 것들, 의미로 환원되지 않은 것들을 되돌려준다. 왜곡된 세상을, 현대인의 일그러진 초상을 반영한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 조명이라도 가세할 때면 형언하기 어려운 형태의, 색채의, 질감의, 감각의 별천지(도가니)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다. 

작가는 그렇게 종잇장처럼 구겨진 스틸 판을 재구성해 우연한 형태를 만든다. 바람에 날아가는 종이처럼 가벼운 형상을 만들고, 안쪽을 광택 마감하고 바깥쪽을 샌딩 처리해 대비를 준, 생명처럼 유기적이고 비정형의 형태를 품고 있는 알(구) 형상을 만든다. 우연한 형태로 치자면 물이 빠질 수 없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물방울을 보는 것도 같고, 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도 같고, 일어선 파도가 안쪽으로 몸을 말며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도 같고, 일렁이는 수면 그대로 떠낸 것도 같고, 수면에 아롱거리는 윤슬(물비늘)을 보는 것도 같다. 빛과 물이 서로 희롱하고 유희하는 것이 빛과 물의 현상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연주의 예술가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했다. 자연처럼 우연한 형상, 유기적인 형상, 비정형적인 형상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조각은 그러므로 생명과 생태 담론에 대해서도 열려있다. 그렇게 작가는 프레스 조각이라는 유례가 없는 조각으로 조각에 새로운 장을 열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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