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리처드 세라, 철(강)의 모뉴먼트를 짓다

고충환



리처드 세라, 철(강)의 모뉴먼트를 짓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거대하면서 한번 보면 즉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작품, 리처드 세라의 작품은 사람들 저마다 스스로 자신만의 조각을 만들도록, 보는 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조각하도록 유도한다. 영국 BBC 방송에서 제작한 리처드 세라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말이다. 리처드 세라의 조각의 특징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그의 작품은 압도적인 스케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모뉴먼트적인 성질 그러므로 기념비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개성이 뚜렷하다. 가공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철강 고유의, 원재료 자체의 녹슨 색감과 질감과 물성을 있는 그대로 제안하는 것이 전부다. 거대한 철판 몇 개가 서로 기대어 서 있거나, 종잇장처럼 휜 철판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서 있거나, 굴곡진 철판과 철판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사잇길을 만들며 서 있다. 멀리서라면 모를까, 가까이에서 사람들은 그의 조각을 한눈에 볼 수가 없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다르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볼 때 다르고, 밖에서 볼 때 다르고, 안에 들어가서 볼 때가 다 다르다. 

안에 들어간다? 작가의 조각은 건축처럼 안에 들어갈 수도 있고 안과 밖을 들락거릴 수도 있다. 스케일도 그렇거니와 구조가 건축조각, 아니면 건축적인 조각, 아니면 최소한 건축 친화적인 조각이라고 해도 좋다. 적어도 녹슨 철판으로 마감한 건축의 외관은 분명 그의 영향이 결정적일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작가의 조각 안에 들어가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저마다 다른 저만의 뷰를 경험할 수 있다. 작가였다면, 전혀 다른 공간 지각 경험이라고 했을 것이다. 작가는 조각이 아닌, 공간을 만든다고 했다. 공간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아마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간 지각 경험을 의미할 것이다. 

비록 전통적인 조각에서 공간이란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각 자체에 부수되는 개념이고 부차적인 개념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리처드 세라의 조각을 계기로 공간 개념이 그리고 공간 지각 경험이 전면화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조각을 매개로 작가가 제안한 공간을 걷고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저마다 저만의 공간을 경험한다. 작가도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도 공간을 만든다. 작가도 공간을 조각하고 사람들도 공간을 조각한다. 조각과 공간과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그러므로 서로 관통하는(현상학으로 치자면, 상호 지각장 안에 들어와 있는) 경험을 통해 공간에 대한 지각을 변화시키고 인식을 변화시킨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가상현실을 이야기한다. 가상현실은 촉감을 부정하고 당신의 물리적 존재를 부정한다. 감각을 통해서 예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작품은 작품의 무게에 대한 몸의 무게(그러므로 존재의 실체)를 되찾을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은 방의 실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게 방 안 어디에 있든, 여러분은 이미 작품의 부피 안에 들어와 있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의 작품은 걷고 보고 만지고 느끼는 감각을 통해, 몸을 통해, 지각을 통해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그 공간이 존재를 갱신하는 예술을 위한 보루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