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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겸/ 공간이 없는 조각, 이미지 조각

고충환



김인겸/ 공간이 없는 조각, 이미지 조각 


고충환 | 미술평론가


올해는 1세대 평론가 이일 앤솔로지 출간(미진사) 10주년이 되는 해다. 때맞춰 유족이 갤러리(스페이스 21)를 개관했다. 첫 전시로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그룹> 전을 열었고, 이번에 두 번째 전시로 김인겸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향후 생전 고인이 활동했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공간이 운영될 것임을 예상해봐도 좋다. 이번 전시 역시 평론가와 작가 간 생전의 인연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100주년에 한국관이 처음 오픈했고, 당시 커미셔너로 참여했던 이일이 김인겸 작가를 한국관 대표작가로 초대 전시한 것이다. 그저 인연이라기보다 평론가와 작가 간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 올해는 김인겸 작가 작고 5주기를 맞는 해여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전시라고 해도 좋다. 그런 만큼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기보다 관련 영상과 자료를 보완한 아카이브 전시로 생전 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탈장르 현상이 보편화되었고, 그중 탈장르 현상이 두드러진 장르가 조각이다. 부드러운 조각, 소리 조각, 그리고 공기 조각과 같은 비물질 조각이 전통적인 조각의 외연을 확장 심화하고 있다. 그림 같은 조각도 그중 한 경향으로 어쩌면 작가 김인겸의 조각적 시도가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좋다. 납작한 조각이 그것으로, 전통적인 조각에서의 얇은 조각 그러므로 부조와는 다르다. 원래 입방체 형태의 오브제를 눌려 납작하게 만든 조각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오브제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조각에 대한 발상을 바꿔놓은 경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납작한 조각을 작가는 어떤 계기로 어떻게 착상하게 되었는가.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받은 이듬해인 1996년 작가는 프랑스 퐁피두 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한국 작가 최초로 초대를 받아 도불했고, 이후 2004년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도불 당시 사정이 국내와 같을 수는 없었고, 따라서 작가는 본격적인(전통적인) 조각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를 소재로 한 에스키스에 치중했다. 종이를 접고 오리고 붙이면서 조형을 만드는 형식실험의 와중에 작가의 조각의 전형적인 형식이랄 수 있는 납작한 입체 조각이 착상된 것이다. 입체 형태의 종이 곽 혹은 종이상자를 납작하게 눌려 놓은 것 같은,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아우르는, 입체이기도 하고 평면이기도 한, 형태이면서 이미지 혹은 일루전이기도 한 이중적이고 중의적인 조각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환경이 만들어준 결과라고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평소 치열한 작가정신과 형식실험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성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도 작가는 자신의 조각을 텅 빈 조각(Emptiness), 공간이 부재 하는 조각(Space_less), 그러므로 이미지 조각(Image_Sculpture)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어쩌면 조각이면서 조각이 아닌, 조각 이상의, 그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각은 다만 환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목에 조각의 특성이 그대로 함축돼 있다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여기서 공간은 장소와는 다르다. 공간이 중성적인(그러므로 가치 중립적인) 개념이라면, 장소는 사건이 매개되는 것이 다르다. 빈 공간에 전에 없던 오브제가 들어서 어떤 긴장감이 발생할 때,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 공간은 장소가 된다. 보통 조각과 공간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처럼 장소(성)를 매개로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작가의 경우에는 조각 자체의 공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조각은 공간이 없는 텅 빈 조각이고, 그래서 이미지처럼 보이는 조각이다. 공간은 물론, 어쩌면 물성도 양감조차도 없는 일루전(환영)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고, 그렇게 자신의 조각을 차별화하고 재정의하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은 오브제가 보편화된 시대에, 오브제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유래한, 물성과 양감에서 시작하는 전통적인 조각과는 다른, 조각의 새로운 문법을 열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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