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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경,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고충환




한석경,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에서 인용한 구절이라고 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라고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빗방울에라도 맞아 죽어서는 안 되겠기에 기어이 살아남기를 다짐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도 했다.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어이 살아남는 삶은 슬픔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삶이 슬픔이고, 시가 슬픔이다. 브레히트는 상황극과 낯설게 하기로도 유명하다. 낯설게 하기, 그러므로 무대와 객석 간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것으로 상황극을 실현한 것이지만, 이후 낯설게 하기는 표면과 이면 간 차이를 주지시키는 주요 문법으로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표면에 가려진 의미, 억압된 의미, 의미와 의미 사이를 떠도는 의미를 붙잡아 세우는 시의 생리와도 통한다. 그러므로 작가 한석경의 작업은 시적임을 선언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걸으면서 허공에 부유하는 의미를 줍는 것이 자신의 작업임을 선언한 것이다. 

작가는 철골 구조물에 합판을 덧대 벽을 세우고, 투명 플라스틱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려 제법 그럴듯한 집을 지었다. 하늘거리는 하얀 천으로 문을 대신했는데, 바람의 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해변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오브제들을 주웠고, 그렇게 주운 오브제들을 집 바깥 벽체에 덧대 만든 선반에 설치했다. 오브제들을 보면 해안가에 핀 이름 모를 화초들, 해안가에서 주운 조가비들, 나뭇가지와 부목들, 조약돌들, 해초들, 고둥과 소라 껍데기, 녹슨 철사에 꿰여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건축물의 일부였을 콘크리트 덩어리, 마른 잎사귀, 모가 닳아 없어진, 조약돌처럼 손에 쥘 수 있는 반투명 유리 조각들, 아야진, 공현진, 가진, 화진포, 삼포, 송지호와 같은 지명이 표기된, 해변에서 채집한 모래와 자갈, 나무뿌리, 미역, 크고 작은 화분들, 굴 껍데기, 새 깃털, 낚시 추의 일부였을 납덩어리, 단물이라고 상표가 표기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지척인 북한에서 떠내려왔을 플라스틱 물병, 불에 탄 나무 둥치, 플라스틱 부표와 같은 어구들이다. 

이 오브제들은 다 무엇인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가. 무슨 일을 추억하는가. 어떤 연유로 작가와 눈이 마주쳤고, 시공을 초월해 지금 여기에 있는가. 모르긴 해도 오브제 중에는 작가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것도 있을 것이다. 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서는 아득한 기억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했고, 그 집단무의식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상징, 그러므로 반복 상징을 원형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이 오브제들은 그런 아득한, 아련한, 너무 멀어서 마침내 그리움으로 화해진, 그런, 원형적인 기억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안에 들어가면, 고성군에서 제작 배포한 지역홍보 영상과 고성군에 있는 21개 해수욕장의 해변을 걸으면서 오브제를 줍는 작가의 행위가 교차 편집된 영상이 작가의 내레이션과 함께 흐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천에 맞춰 또렷해졌다 희미해졌다 하는 영상이 또 다른 바람 같다. 그렇게 작가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사연을 줍고, 연민을 줍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의미를 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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