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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존재를, 존재의 흔적을 기록하는 일

고충환



이혜진, 존재를, 존재의 흔적을 기록하는 일 


고충환 | 미술평론가


예술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지만 그중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예술은 존재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존재를 이야기하는 기술이다. 기록으로 치자면 역사가 할 일이지 왜 예술이, 라고도 하겠지만, 감각 언어를 도구로 존재의 삶을 기록하는 예술은 의미론적인 언어를 도구로 존재를 기록하는 역사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예술도 역사도 기록하는 과정에 시간이 매개된다. 그러므로 예술이, 역사가 기록하는 것은 곧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시간 자체는 형태도 색깔도 없다. 그러므로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시간에 어떻게 행태와 색깔을 부여해 감각적 실체로 만들 것인가가 관건이다. 여기서 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곧 흔적을 기록한다는 것이고, 존재의 흔적을 기록한다는 것이다. 존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기보다는 부재를 통해 존재(존재했었음)를 증언하는 것이다. 존재는 시간을 살고, 시간 속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존재를, 존재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는 시간과 부재의 미학에 대한 인식이, 그리고 흔적의 아우라에 대한 감각적 이해가 요청된다. 

작가 이혜진의 작업이 그렇다. 앞서 기술한 내용은 사실상 작가의 작업을 지지하는 인문학적 배경이라고 해도 좋다. 작가의 작업은 비록 사사로운 그리고 주관적인 작업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자기(존재)를, 자기(존재)의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시공간을 기록하는 일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그래서 아마도 처음에 작가는 자기가 사는 방을 그리고 기물을 그리는 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점차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그리고, 매일같이 지나치는 길을 그리고, 공원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을 그리는 일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창밖으로 보이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변하는 것 같지 않게 변하는, 그러므로 시간의 주름을 포함하고 있는, 산을 그리고 나무를 그린다. 일부러 보기 전까지는 보이지도 않는(어쩌면 있지도 않은), 작가가 준 시선으로 비로소 그 실체를 얻는 작업실 구석을 그리고, 콘크리트 질감의 길을 그린다. 빨간 벽돌벽을 그리고, 간혹 올라가 본 옥상 바닥을 그린다. 자신과 호흡을 나누었을, 자신의 눈길이 가닿았을, 자신의 손길이 스쳤을, 자신의 발길과 접촉했을, 그렇게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그리고 작가 이전에 이미 다른 누군가와도 그렇게 했을, 그러므로 타자의 흔적(시간)과 자신의 흔적(시간)이 중첩되었을, 일상적인 시공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리기 외에 사물에 천을 대고 문질러 표면 질감을 떠내기도 하고, 사물의 형태를 석고로 떠내기도 하고, 아예 실물 오브제를 채집하고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리기, 프로타주, 캐스팅, 그리고 오브제로 나타난 기록의 4형식을 제안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흔적에, 그리고 시간에 실체를 부여하는 형식 그러므로 방법론을 제안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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