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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주. 항상 붉은 빛이 아님을, 걸림돌을 디딤돌로

고충환



서이주. 항상 붉은 빛이 아님을, 걸림돌을 디딤돌로 


고충환 | 미술평론가


생전 처음 와보는 고성 화진포. 사람들은 말했다. 일출이 장관이라고. 연초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해돋이 명소 중 한 곳이라고도 했다. 작가는 설렜다. 바다에 가면 그 장관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그 가슴 벅찬 순간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일출을 찾아 나섰고, 바다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러나 일출을 찍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실감해야 했고, 낭만이 좌절로 바뀌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일출을 찍기 위해선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고, 때로 잠을 설쳐 빼먹은 날도 있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태양의 붉은 빛을 볼 수가 없었고, 먹구름에 가려 일출을 찍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날도 있었다. 나중에는 일출과 일몰의 차이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왜 일몰이 아닌, 일출이어야 할까. 지는 해보다 뜨는 해에 의미 부여한 것은 아닐까. 지는 해도 뜨는 해만큼이나 아름다운데. 숭고와 장엄으로 치자면, 지는 해가 뜨는 해보다 의미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작가는 성공한 일출 사진을 찍었고, 실패한 일출 사진을 찍었다. 붉은빛이 장관인 사진을 찍었고, 살 색인지 분홍색인지 모를 흐릿한 붉은빛의 사진을 찍었고, 구름에 가려진 빛이 먹구름 위로 경계를 그리며 하얗게 대비되는 사진을 찍었고, 투명하고 파르스름한 색조로 물든 하늘을 찍었고, 색조 뒤편으로 저게 태양이지 싶은 흐릿하고 둥근 테가 보이는 사진을 찍었다. 일출이, 뜨는 해가, 태양이 항상 붉은 빛이 아님을 실감하고 증명하는 사진들을 찍었다. 모르긴 해도 그날그날이 다른, 사사로운 작가의 감정도 이 다른 사진들 속에 같이 기록되어 졌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일출을 찍은 일련의 사진들을 반투명한 실리콘으로 봉했다. 낭만과 기대를, 실패와 좌절을,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기억으로 봉했다.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봉하는(화석화하는) 작가의 행위는 기억의 알레고리처럼 읽힌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기억하기의 프로젝트가 있다. 작가는 일출을 찍기 위해 바다를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다니면서 손에 쏙 들어오는 조약돌을 주웠고, 예쁜 조가비를 주웠다. 사진 찍기와 함께 채집된 오브제를 통해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고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기억을 완성하기 위해선 특별한 순간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봉하고 화석화해야 한다. 그래서 채집된 오브제를 석고 틀에 가뒀다. 그렇게 석고에 봉인된 오브제를 보면, 자신에게 특별했던 순간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났던 특별한 순간이며 사건을 기억은 완전하게 복원해주지 못한다. 여기에 기억은 욕망이 매개되면서 왜곡되기조차 하는데, 좋았던 기억을 부풀리고, 나빴던 기억을 지운다. 그렇게 종래에 작가는 석고 틀에 갇힌 오브제들, 그러므로 기억의 단서들을 알아볼 수 없는 자잘한 조각들로 부수었다. 그리고 불완전한 기억, 그러므로 어쩌면 불완전한 자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의 불완전한 기억을 애도하는, 그러므로 오마주하는 행위이기도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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