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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중/ 빛살과 바람길, 우연한 자연

고충환



김일중/ 빛살과 바람길, 우연한 자연 



고충환 | 미술평론가


자개는 빛에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광도와 광각 여하에 따라서 빛을 따라 움직이면서 드러나지 않게 변신하는 것 같다. 여기에 자개는 얼핏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눈에 띄지 않게 섬세한 굴곡진 형태를 가지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했다. 곡선을 자연의, 그러므로 어쩌면 생명의 본성이라고 본 것이다. 이처럼 형태로 치자면 자개는 유기적인 곡선을 가지고 있고, 빛깔로 치자면 카멜레온에 비유할 만한 천변만화의 빛깔을 품고 있다. 색깔과는 다르게 빛깔 자체가 이미 외부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면서 상호작용하는 자연현상, 그러므로 생명의 본성을 실현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김일중이 자개에 빠진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자개의 열린 성질,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성질, 그러므로 어쩌면 생명의 본성을 실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비결정적이고 가변적인 성질에 주목한 탓이 클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로 인물과 풍경을 소재로 작가가 제안해놓고 있는 자개 조형을 보면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외부 환경과 자연현상에 따라 반응하고 변화하는 것이지만, 보기에 따라서 그 반응과 변화는 심리적으로 연동된 것처럼도 보인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이 비 오는 날 다르고, 노을이 질 때 다르고, 우울한 날에 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지나친 상상력의 비약이라고 할까. 

여기에 작가의 작업은 멀리서 볼 때 다르고, 가까이서 볼 때가 다 다르다. 멀리서 보면 얼추 형태가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형태를 뭉개면서 표면에서 아롱거리는, 다만 우연하고 무분별한 빛의 파편이, 빛의 유희가 있을 뿐이다. 거리두기(사물의 본성을 더 잘 파악하게 해주는 적정거리, 물리적인 거리와 함께 관념과 심리 현상을 포함하는)를 매개로 하나의 화면 속에 추상과 형상이 그 경계를 허물면서 넘나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작가는 자개 회화라는 자신만의 형식을 열어놓고 있었다. 


인물도 그렇지만 특히 풍경은 서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각 컬러와 흑백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흑백 버전의 경우 칠흑 같은 밤에 달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밤이어서 대비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마치 어두운 화면에서 시작해 점차 밝은 톤을 찾아가는 지우개 소묘를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벚꽃과 매화, 버드나무와 대나무의 꽃잎과 나뭇잎이 바람에 수런거리는 것도 같고, 마구 웃자란 갈대와 옥수수밭이 우연하고 무분별한 자연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것도 같고, 때로 그 위로 정적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가 오히려 더 고즈넉한 것도 같다. 그리고 여기에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숲이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연의 위상을 재정의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밤이 품고 있는, 빛이 품고 있는, 바람이 품고 있는 자연의 생명력을 은밀하게, 은근하게, 때로 격렬하게 발산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밤의, 빛의, 그리고 바람의 질감을 환기하고 암시하는 것이 서정적인 분위기에 결정적이랄 수 있는데, 하나같이 그 자체로서보다는 다른 사물 대상에 부닥치면서, 다른 사물 대상을 빌려서 비로소 그 실체를 얻는 것들이다. 작가는 근작의 주제를 빛의 바람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이런, 빛과 바람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사물을 빛나게 하는지, 사물을 흔드는지, 자연의 생명력에 내장된 시적 서정을 환기하는지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종전 그림에서 숲과 나무와 같은 모티브가 강했다면, 근작에서는 숲을 반짝이게 하는 빛의 질감이, 나무를 흔드는 바람의 질감이 그 실체를 얻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숲과 나무가 뒤로 빠지고, 빛과 바람이 전면화한 것인 만큼 그림은 얼핏 추상화처럼 보이고, 단색화처럼 보이고, 색면화파의 그림처럼도 보인다. 덩달아 자개보다는 페인팅에 방점이 찍힌, 자개가 회화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더 암시적인 화면 속에 빛의 질감을, 바람의 질감을,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므로 근작에 대해서는 종전 그림에서의 풍경이 연장된, 추상 풍경이라고 해도 좋다. 다르게는 서정 추상 혹은 서정적인 추상 풍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작가는 붓과 함께 나이프를, 그리고 스퀴지를 사용해 그리는데, 회화의 관성을 벗어나 회화의 확장을 꾀한 경우로 볼 수 있겠고, 이로써 자기만의 형식을 얻기 위한 형식실험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 붓이 지나간 자리가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질감을 느끼게 한다면, 나이프로 그린 화면은 마치 칼날처럼 나이프가 지나간 자국이 여실한, 그 자국이 화면에 날카로운 선을 만드는, 그 선이 바람이 지나간 길(바람길)을 떠올리게 하는, 상대적으로 더 거칠고 생생한 것이 다르고, 회화의 물성을 강조한 것이 다르다. 의식적으로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반 무의식 상태에서 마치 바람에 몸을 맡기듯 오롯이 직관과 감각을 좇아 그린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므로 어쩌면 몸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결정적으로 작가는 여기에 우연성을 더한다. 스퀴지를 화구로 사용해 그린 그림이 그런데, 옆으로 긴 막대 형태의 스퀴지에 이런저런 색깔의 안료를 얹힌 다음 캔버스에 대고 그린 그림이다. 마치 날실과 씨실이 하나로 직조된 직물 구조에서처럼 가로 방향과 세로 방향을 하나의 화면에 교차시킨 것이, 그 과정에서 색깔과 색깔이 섞이면서 비정형의 패턴을 만드는 것이, 마치 비질이 쓸고 지나간 자국과 흔적을 연상시키는 화면이 비결정성과 가변성 그리고 우연성이 만드는 회화적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빛의 질감이며 바람의 물성과도 같은, 그리고 여기에 우연하고 무분별한 자연의 생명력과도 같은, 그 자체 우연하고 비결정적인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회화적으로 형용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여기에 작가는 하나의 화면을 4면 혹은 2면으로 분할 한 후, 어떤 부분을 자개로, 그리고 다른 부분을 빈 화면(페인팅)인 채로 남겨 대비시킨다. 자개로 처리한 부분을 보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자개가 촘촘하게 그어진 직선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자체 화면에 기하학적 패턴을 만드는 동시에, 이로써 아마도 자기 내면에 질서의 성소를 축조하려는 욕망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정형의 화면과 비정형의 화면이, 분방한 붓질이 만든 회화적 화면과 가지런한 자개 선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패턴이, 유기적인 화면과 기하학적 패턴이 하나의 화면에 공존하면서 대비되는 것이 아폴론적 충동(질서 의식)과 디오니소스적 충동(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의 분출)이 길항하고 부침하는 니체의 예술 충동의 유비적 표현을 보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추상화된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고 여기에 때로 관념적인 풍경(이를테면 질서를 표상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상기시킨다. 수면에 부닥치면서 자잘한 알갱이로 산란하는 빛과 물이 서로 희롱하고 유희하는 윤슬(물비늘)을 보는 것도 같고, 빛의 선, 그러므로 빛살을 보는 것도 같고, 바람의 선, 그러므로 바람길을 보는 것도 같다. 노란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을 보는 것도 같고, 바람에 일렁이는, 수런거리는 숲을 보는 것도 같고,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지나간 자국이 남아있는 눈 쌓인 풍경을 보는 것도 같고, 자기 뒤편으로 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유성(별똥별)을,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같다. 

사실 이런 인상은 임의적인 것으로, 저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고, 다르게 보아도 무방한 그림이고 풍경이다. 중요한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작가의 그림은 빛의 질감을, 바람의 물성을, 그리고 여기에 자연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을 회화적으로, 추상적으로,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점이다. 자연의 성정 자체가 열려있고, 자연의 성정을 표현한 작가의 감각이 열려있고, 그 의미 또한 열려있는 그림이고 풍경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게 작가는 근작에서 자개 회화라는 자기만의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바람의, 빛의, 자연의 성정이라는, 우연한, 가변적인, 비결정적인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들 위로 자기를 던져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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