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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니치의 총체예술, 잃어버린 영성을 찾아서

고충환



헤르만 니치의 총체예술, 잃어버린 영성을 찾아서 


고충환 | 미술평론가


샤먼은 오브제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원시사회에서 예술가로 간주 된다. 그는 자신을 부정하고 사회를 위하여 제의를 주재함으로써 예술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제의에 직접 참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치료적 효과를 갖는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해프닝은 현대적 샤머니즘의 결과이며 표현이다. 이벤트 예술과 해프닝, 우도 쿨터만, 런던, 1971/ 해프닝, 에드워드 루시 스미드, 전경희, 열화당, 1993, 35p.
 

헤르만 니치는 19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빈 행동주의의 대표작가였다. 참여작가로는 원래 피로 시작해 이후 물감 쏟기로 대체된 행위작업에서 행위의 우연적인 과정을 기록한 헤르만 니치를 비롯해, 귄터 브루스, 오토 뮐, 루돌프 슈바르츠코글러 같은 작가들이 있었다. 당시 헤르만 니치는 죽은 양의 창자를 끄집어내어 갈갈이 찢겠다고 공표했다. 존재의 신비주의적인 한 형식을 예시해주는 자신의 예술적 생산을 통해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타락의 나락에 빠진 당신들이 구제될 수 있도록 부정적이고 불미스럽고 사악하고 음란한 것, 희생 행위의 열정과 광란을 스스로 떠맡는다고도 했다. 헤르만 니치, 광란의 신비극, 프랑크푸르트, 1969.
 
희생 행위를 스스로 떠맡는다고 했는데, 자신의 희생 행위가 사회를 정화한다는 당위성을 표명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 희생 행위가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모든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는 희생양 제도를 토대로 유지된다. 임의의 희생양을 지목해 혹 있을지도 모를 잠정적인 민중의 폭력성을 잠재우는 일에 사회의 그리고 제도의 승패가 달려있다. 더 이전으로 소급해 보면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제물로 바쳤던 고대의 희생 제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희생 행위를 표방한 작가의 언술에는 타락의 나락에 빠진 존재를 구제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인, 그리고 나아가 정화를 통해 사회의 안녕을 기약한다는 점에서는 사회학적인 의미가 있었다. 

다른 작가들을 보면, <대변 행위>(1967)라고 이름 붙인 귄터 브루스의 퍼포먼스에는 공개적인 배변 행위가 포함되었으며, 전체 퍼포먼스가 필름으로 녹화되었다. 그리고 <리비 Libi>(1969)로 명명된 이벤트에서 오토 뮐은 생리 중인 여성의 질 속에 달걀을 깨트려 넣고 다시 그것을 자신의 입속에 받아먹는 행위를 실연하는 등 빈 그룹의 극단주의는 기존의 예술체계에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놀라운 호소력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1972년 유럽 최초로 열린 현대미술전 <카셀도쿠멘타>에서 <개인적인 신화들>이란 제목 아래 귄터 브루스의 작품과 헤르만 니치의 작품에 대한 기록자료를 전시하는 특별공간이 마련된 것이 그렇다. 해프닝, 에드워드 루시 스미드, 전경희, 열화당, 1993, 28-31p.
 
헤르만 니치로 치자면, 동물과 사람을 같이 십자가에 매달아 행진하는, 죽은 동물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쏟아진 피를 참여자들의 몸에 흩뿌리는 광란의 퍼포먼스를 통해 카타르시스와 엑스터시, 그러므로 자기 해방으로 유도한 그의 행위예술은 종교적이고 주술적이고 제의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작가를 비롯한 참여자들 모두 마치 사제처럼 하얀 예복을 갖춰 입고 행위에 임했으며, 행위가 끝난 뒤에는 공연으로 피범벅이 된 예복과 바닥 천(캔버스)이 남았다. 기겁을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격렬했던 자기 해방의 극적인 순간의 경험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는 피 묻은 예복과 천 조각을 챙기는 숭배자(컬렉터)들도 있었다. 
피를 쏟고 뿌리는 자신의 작업을 작가는 액션 페인팅이라고 불렀다. 보기에 따라서 작가의 작업은 광란의 흔적, 그러므로 격렬했던 행위의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액션 페인팅(추상표현주의)과 통하고, 비정형의 얼룩에 주목한 타시즘과도 통한다. 그리고 바닥에 펼쳐놓은 캔버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반무의식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한 잭슨 폴록의 드리핑과도, 벌거벗은 모델의 몸에 파란 물감을 묻혀 텅 빈 캔버스 위에 자국을 남기게 하는 것으로 그림을 대신한 이브 클라인의 <인체 측정학>(1958, 1960, 파리)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죽은 동물을 소재로 한 그의 행위예술은 사람들의 격렬한 항의를 불러왔고,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동물의 피 대신 물감을 쏟는 것으로 대체된다. 

빈 행동주의를 비롯해, 1960, 70년대 서구에서 유행한 행동주의 미술에 대해서는 새로운 미술 형식이라기보다는 에너지의 총화라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미술가로 하여금 자신의 체험 속에 들어있는 에너지의 근원과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트로이의 목마; 행동주의 미술과 힘, 루시 리파드/ 현대미술비평 30선, 중앙일보 계간미술, 1987, 1992, 289p. 
 예술가에 내재 된 알 수 없는 힘에 대해서 말한 것이지만, 여기서 에너지의 총화를 형식적으로 풀어보면 형식들의 총체 그러므로 총체예술이 된다. 헤르만 니치는 폭력을 동반한 제식 행위를 통해 음악과 연극, 회화와 시와 같은 모든 예술이 종합되는 총체예술을 지향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모든 것은 우리의 행위라는 현실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시는 회화가 되고, 회화는 시가 되며, 음악은 행위가 되고, 액션 페인팅은 연극이 되고, 비공식적인 연극은 처음으로 시각적 이벤트가 된다고 했다. 

총체예술은 원래 음악, 시, 춤, 회화, 건축뿐만 아니라 무대장치와 의상, 조명 일체를 포함하는, 그 모두가 유기적 전체를 이루어 본연의 극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유래했다. 당시 바그너의 오페라를 접한 니체가 자신의 생철학에 부합하는 도래할 예술, 그러므로 미래의 예술을 예견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총체예술은 궁극적으로는 예술 기원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최초 예술이 춤과 노래, 시와 연극을 아우르는 신에 대한 제의로부터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그렇다. 형식적으로 볼 때 그렇고, 내용으로 볼 때 니치의 행위예술은 폭력적인 행위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극과도 통한다. 
아르토에 의하면, 잔혹성은 엄격함을 의미하며,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나 적용,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확고한 태도를 의미한다. 잔혹성은 삶의 욕망, 우주의 엄밀함, 돌이킬 수 없는 필연성이다. 잔혹성을 구현하기 위해 꿈이 갖는 마술적인 몽상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시와 같은 연극의 형태들이 현실에 대한 이념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논리적인 언어를 배제한 순수한 연극적 기호를 창출하기 위해 조형성과 심리극이 구분되지 않는 총체적인 무대를 창조해야 한다. 


이처럼 아르토의 잔혹극도 그렇지만, 니치의 행위예술은 당시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이를 계승한 초현실주의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억압된 욕망의 근원은 무엇이며 또한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어떻게 자기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현실의 한계를 넘어 어떻게 초현실적인 비전을 열어놓을 것인가(어떻게 전인적 자기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것이다. 
자기를 극복하고 전인적 자기를 실현하는 것인데, 여기서 극복의 대상으로 자기가, 그리고 인간이 포함된다. 이를테면 앙드레 브르통과의 대척점에서 초현실주의의 파벌을 이끈 조르주 바타이유가 그렇다. 초현실주의는 크게 앙드레 브르통파와 조르주 바타이유파로 나뉘는데, 전자가 꿈이 열어 보이는 초현실적인 비전을 통해서 현실의 확장을 꾀하는 것과 같은 미학적 주제에 주목했다면, 후자는 자기부정을 통해 원초적 자기를 회복하고 신성한 존재와의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려는 수행의 과정에 방점이 찍힌 점이 다르다. 말하자면 어떻게 인간적인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라는 전언으로 대변되는 비 혹은 탈 인간(어쩌면 니체의 초인?)을 지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폭력(그리고 어쩌면 죽음)이 매개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폭력은 자기를 정화하기 위한 폭력이며, 상실된, 혹은 더럽혀진 신성을 회복하기 위한 폭력, 그러므로 신성한 폭력이 된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헤르만 니치의 초대 개인전이면서 미술관 개관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쉬트빌트 중 바이로이트 연작, 무대 벽면에 함께 완성한 대형 설치회화, <최후의 만찬>을 비롯한 일련의 판화들, 그리고 말년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드로잉과 영상이 선보인다. 
그중 쉬트빌트는 뿌린다는 의미로, 물감 쏟기의 형태로 나타난 행위예술의 부산물이며, 니치 작업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경우를 예시해준다. 2021년 작가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 비평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의 예술감독으로 초청되어 행한 퍼포먼스의 과정에서 유래한 대형 회화 작품이다. 특히 올해(2023)는 바그너 탄생 210주년에 해당하는 해여서 이를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다. 각 악극의 내용에 따라 다른 계열 색을 사용해 물감을 흩뿌리는 동작으로 오페라의 내용을 해석했다.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배우들이 오페라를 연기하고, 참여자들이 행위를 실연하는, 음악과 오페라, 공연과 연극, 그리고 여기에 행위예술과 페인팅이 경계를 넘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렇게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는 총체예술이 실현되고 있는 장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니치와 바그너와의 관계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체예술에 대한 착상을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얻었고, 그 자신 행위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한 배경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바그너의 오페라가 음악을 연기로 해석한 것이라면, 니치의 행위예술은 음악을 좀 더 추상적인(아니면, 직접적인) 몸짓으로 해석한 것이어서 그 둘의 차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사실도 주목해볼 일이다. 그래서인지 니치는 1971년에도 바그너의 오페라를 자신의 행위예술로 해석하는 등 두 사람의 관계에는 각별한 부분이 있었다. 

비록 작가가 예술감독을 맡은 2021년 행위예술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행한 것이지만, 원래 니치는 자신의 행위예술을 위해 1960년대 초 매입한 프린첸도르프 캐슬에서 이러한 공연들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 공연들을 광란의 신비극(Orgien Mysterien Theatre, 영어로는 Orgy Mystery Theatre)이라고 불렀다. 도살장처럼 꾸며진 환경에서 작가와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으로, 동물의 사체에서 쏟아진 피와 음악과 광란의 몸짓이 어우러진, 이를 통해 억압된 욕망을 해방하고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것이 공연 설립의 목적이었다. 당시 광란의 신비극으로 불린, 일련의 공연들에 대한 작가의 육성을 보면, 

모든 것이 연극이다. 프린첸도르프의 성은 광란의 비밀 축제를 위한 이상적인 공연장소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나의 연극적 행위는 축제가 된다. 금욕적인 종교에 의해 부정되는 육체적 창조의 행위는 죄의 요인으로 치부되거나, 고통으로 가득 찬 공연으로 이해되지 않고 축제가 된다...지각과 경험의 장소가 되어 감각의 축제가 거행된다. 삶이라는 예배의 음악으로 가득 한...존재는 존재만으로 축제에서 빛난다...자신의 행동과 이미지가 먼저 청중에게 혐오감을 유발한 다음 카타르시스를 유발해야 한다...우리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려 한다. 가장 극단적인 강렬함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미쳐 날뛰고 고통스러운 행복으로 몰고 간다. 유희의 과도함은 굉음을 내는 음악과 무아지경의 고함에 의해 결정된다...광란의 비밀 축제는 강렬한 삶과 존재를 경험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과정의 미학화, 제식화는 유희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삶 자체, 일상생활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축제와 제식이 되어야 한다. 

좀 길게 인용해본 것이지만, 니치의 미학이 함축돼 있다. 종교적 교리(그리고 여기에 연동된 사회적 준칙)에 의해 억압된 욕망을 해방하고, 억압된 자기를 회복해야 한다. 지각과 감각을 열어 극단적 자기를 실현해야 하고, 지락(자크 라캉의 주이상스)에 도달해야 한다. 존재의 존재다움(하이데거)을 실현하고, 전인적 자기(니체)를 회복해야 한다. 비극(그러므로 자기부정)을 넘어 카타르시스의 황홀경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게 삶 자체를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이 사람을 경박하게 한다면, 비극은 사람을 고양 시킨다고 했다. 비극을 넘어서면 카타르시스가 열린다. 그러므로 자기부정은 자기 긍정과 통한다. 밀란 쿤데라는 현대인의 삶이 비극적인 것은 비극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극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비극에 대한 감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비극이 없으면, 자기부정이 없으면 전인적 자기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의 쉬트빌트_바이로이트 연작은 전인적 자기를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어쩌면 광란 그러므로 광기라고 해도 좋을)이 지나간 자리처럼 보이고, 그 자리를 증언하는 흔적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생생한 증언처럼 읽힌다. 

그리고 드로잉(상대적으로 밝고 감각적인 색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아마도 말년의 순화된 세계감정과도 무관하지 않을)도 그렇지만, 특히 석판화(가장 회화적인 판종으로 알려진)로 제작된 일련의 판화들에서는 신체 속 내장과 골격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분절된 신체와 장기들이 보이고, 장기와 기계가 무차별적으로 한 몸을 이룬 부품 혹은 부속처럼 보이고, 자가 증식하는 세포들의 집합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바탕화면에 파토스의 현현과도 같은,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의 분출과도 같은 선혈이 검붉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진즉에 초현실주의는 신체를 기계로 봤고, 장기를 부품과 동일시했다. 질 들뢰즈 역시 신체를 기계라고 했고, 심지어 의식마저도 기계로 정의했다(이를테면 기관 없는 신체와 의식 기계 같은). 이런 기계주의적 세계관은 사실 들뢰즈보다도, 초현실주의보다도 더 오래전에 이미 알려진 것이었고, 작가의 작업이 다 그렇지만, 특히 판화가 그 세계관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으로 몸을 소재로 한 작가의 작업은 주체를 각 정신과 몸으로 이분하는 양비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런 양비론에 대한 대항 논리로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자기 정체성을 정신(이성)보다는 몸(감각)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피, 침, 땀, 똥, 오줌과 같은 신체 분비물이 갖는 실천적 의미에 주목한 애브젝션과 애브젝트(줄리아 크리스테바) 담론과도 입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자기부정을 통해 내면에 잠자던 신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는 영성주의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요셉 보이스는 공공연하게 자신을 무당에 비유했다. 교육과 계몽을 매개로 한 사회 조각에 주술적 입김을 불어 넣어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헤르만 니치는 사제처럼 보인다. 교육과 계몽이 억압한 욕망을 해방하고, 이로써 원초적 자기, 전인적 자기를 회복하는 것에서, 말하자면 자기 정화 그러므로 존재의 정화를 수행하고 실천하는 것에서 예술의 당위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처럼 얼핏 무당과 사제는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상 그 이면에서 서로 통한다는 생각이다. 무당이나 사제나 결국 인류 최초의 예술가인 샤먼의 후예들이 아닌가. 그렇게 몸을 매개로 한, 몸을 극단의 상태로 몰아가는 헤르만 니치의 작업은 종교적인, 주술적인, 제의적인 의식(의례)을 통해 잃어버린 영성을 되찾아가는 강력하고 절실한, 멀고 아득한 여정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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