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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현대미술가협회 2023 세라비 기획전, 삶에 예술을, 예술에 삶을 묻다

고충환



대구현대미술가협회 2023 세라비 기획전, 삶에 예술을, 예술에 삶을 묻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세라비.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인생이란 계획 한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 인생은 자기를 속이기조차 한다. 그렇다고 막살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될 대로 되라지(케세라세라), 하고 자기를 방임하는 삶을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인생이란 계획과 무계획 사이, 의식적인 삶과 자기 방임적인 삶 사이, 세라비와 케세라세라 사이 어디쯤엔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봉쇄된 일상, 예기치 못한 일상을 살았던 그간의 경험이 반영된 주제라고 했다. 그렇게 달라진 삶의 경험을 반성해보는 주제라고도 했다. 작가는 두 개의 다른 삶을 산다. 외면적인 삶과 내면적인 삶. 어쩌면 예술은 외면적인 삶과 내면적인 삶의 상호작용일 수 있다. 외면적인 삶 그러므로 일상이 봉쇄되면 내면적인 삶이 열린다. 니체는 자기를 궁지로 몰면, 자기 내면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일상의 봉쇄로 인해 작가들은 오히려 자기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저마다 자기 작업에 더 몰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내면에 집중했고 자기 작업에 몰입했던, 근 200명에 달하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구문화예술회관 전관을 할애해 열린 전시에서, 총 13개 전시실에 13명의 코디네이터가 저마다 독립된 전시를 담당 수행하는 형식으로 열렸다. 세라비라는 큰 주제 아래 13개에 달하는 소주제가 주어졌는데, 총 13개의 인생에 대한 해법(차라리 질문?)이 제안되고, 이를 통해 삶의 다양성(종 다양성?)이 전개되는 장이라고 해도 좋다. 저마다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삶에 대한 경험치가 제안되고 공유되는 자리라고 해도 좋다. 특이한 것은 전시 주체가 작가들인 만큼 삶에 대한 반성이 동시에 예술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업을 통해 삶을 표현하는 예술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고, 나아가 창작 주체에게 삶은 곧 예술이기도 하다는 당연한 사실이 반영된 것일 터이다. 


그렇게 마음 혹은 내면, 놀이와 유희, 시대정신, 쉼표, 교류, 자유, 영혼, 온오프, 깊이, 그래도, 현재 혹은 현실, 오해와 이해, 그리고 속도와 같은 총 13개의 소주제가 주어졌다. 외형상 삶을 성찰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서 예술에 대한 자기반성적 사유를 포함하는 개념들이다. 

이 개념들을 근거로 이번 전시에서 제안되고 있는 삶에 대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정의(태도와 입장)를 짚어 보자면, 예술은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일 수 있다(마음 혹은 내면). 잊힌 자기, 상실한 자기, 아득한 자기, 원형적 자기, 진정한 자기(불교에서의 진아), 그러므로 자기_타자와 대면하는 여행이다. 보르헤스는 거울 속에 타자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롤랑 바르트는 그 타자들 그러므로 자기_타자를 치유 불가능한 외상 그러므로 트라우마에 비유했고, 자크 라캉은 억압된 욕망에 비유했다. 그 욕망의 거울을 깨고 자기_타자를 해방하는 것, 억압된 자기_타자를 인정하고 보듬는 것, 그러므로 영적 자기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예술의 또 다른 과제이며 존재 이유일 수 있다(자유, 영혼, 깊이, 그러므로 다시,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 

그리고 예술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지만 그중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예술은 놀이와 유희가 그 계기일 수 있다. 실제로도 문화사가 호이징하 같은 사람은 인간을 호모 루덴스 곧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하면서, 이런 놀이로부터 비로소 예술이, 문화가 가능해질 수 있었다고 본다. 프리드리히 실러 역시 형식 충동과 함께 유희충동을 예술의 원동력으로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입장이라고 해도 좋다(놀이와 유희). 그리고 예술은 지금 여기 현실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동시대적인 문제의식과 동시대적 감성을 놓치면 안 된다(현재 혹은 현실, 시대정신). 그렇게 치열한 현실을 살다 보면, 때로 쉼표도 필요하고, 휴식도 필요하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고, 자기를 되돌아보는 자기반성적인 계기도 필요하다.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고, 플라뇌르 곧 산책자의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이런 쉼표와 느림 그리고 산책자의 삶의 방식이 예술의 실천 논리와도 통한다(쉼표, 온오프, 속도). 

한편으로 질 들뢰즈는 예술이 감각 철학이라고 했다. 철학이 이성을 도구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예술은 몸 그러므로 감각을 도구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이해). 그렇게 예술이 감각을 도구로 세계를 이해할 때, 정해진 방식도 없고, 따를 만한 규칙도 없다. 사전에 주어진 길잡이를 따라가는 대신, 스스로 길을 내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장 프랑스와 리오타르는 예술이 매번 재현 불가능한 일회적 사건이라고 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예술이 열린 의미라고 했다. 후기 구조주의에서는 아예 읽는(그러므로 이해의) 대상이 예술인 한, 오독은 없다고도 했다. 어쩌면 오독을 실천하는 것, 상식과 합리, 선입견과 편견, 그러므로 클리셰를 배반하는 것, 의미의 바깥에 의미를 다시 세우는 것(모리스 블랑쇼), 그러므로 세계의 의미를 바로 잡는 일(발터 벤야민)이야말로 예술에 주어진 결정적인 과제이며 실천 논리일 수 있다(오해). 

주제와 관련해 볼 때 특이한 경우로, 교류가 주목되고, 그래도, 가 주목된다. 교류는 해외작가 초대 전시 섹션(7개국 15명의 현대미술작가를 초대 전시한)에 붙인 주제로서, 아마도 지금은 없어진 가창 창작스튜디오의 국가 간 레지던스 교환 프로그램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창작 스튜디오는 청년 작가들의 창작산실로 기능하고 역할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국가 간 상호 교류를 통해 대내외적 인적 네트워크와 함께, 작가 풀의 확충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가창창작스튜디오(2007년 설립, 2008년 대안공간 스페이스 가창으로 명칭을 변경한) 운영이 중단된 것에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리고 예술의 화법은 가정법에 기초한다(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만약에, 가 예술이 말을 거는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예술은 말하자면 다르게 보기,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를 제안하는 방식이고 기술이다(존 버거). 외부 청년 작가 초대 전시 섹션에 붙여진 주제로서, 청년 작가 발굴과 회원 작가 영입을 위한 채널로도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전시는 크게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작가 전시, 해외작가 초대 전시, 그리고 외부 청년 작가 초대 전시로 구성되었다. 주제도 주제지만, 형식과 내용, 주제와 작가 선정 간 상호 부합성 문제가 결정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협회전을 주제전으로 대체하고 강화한 것인 만큼 협회 작가들이 중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주제에 부합하는 외부 작가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노력과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필요하다면 협회 밖에서 예술감독을 초대 영입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큰 주제에 소주제를 부수해 큰 주제와 소주제 상호 간 유기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한 것도, 소주제별 코디네이터를 붙여 전시의 전문성을 강화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본격적인, 그러므로 성공적인 기획전시가 되기 위해서는 기왕에 확보하고 있는 작가 풀, 그러므로 협회 작가들의 성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분석을 바탕으로 분류와 범주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분류와 범주에 부합하는 소주제를 정해야 하고, 소주제별 코디네이터를 정해야 한다. 그렇게 일단 소주제별 팀이 꾸려지고 나면, 치열한 스터디를 통해 주제에 대한 이해의 밀도감을 높이는 한편, 주제와 실제 작업 간 상호 부합성을 점검하고 체크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방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서 다가와야 한다. 그중 상당 부분이 이번 전시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이지만, 전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나아가 매번 협회 작가 전체가 참여하는 전시가 아니라, 그때그때 주제를 정해 그 주제에 부합하는 작가들만 참여하는, 그리고 여기에 외부 작가들이 동시 참여하는 전시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1997년 설립된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협회 명에서도 암시되고 있는 것이지만, 1974년 국내 최초로 시작된 이후 1979년까지 지속된, 그리고 이후 각 지역 현대미술제 창설의 기폭제가 된 대구현대미술제(2012년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로 재개된)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실제로도 협회 창립 맴버 중 상당 작가들이 당시 전시에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1998년에는 대구 현대미술의 산실인 대안공간 스페이스 129를 설립하고, 당시 국제화단 특히 일본 현대미술(모노하)과 긴밀히 교류했던 수 화랑과 인공화랑과도 유대관계를 이어오는 등 대구를 넘어 국내 현대미술을 견인한 부분이 없지 않다. 관련해서 유의미한 성과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도 바뀌고 상황도 변해서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면 덩달아 체질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향후 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어떻게 거듭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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