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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준/ 다시, 재현을 묻다

고충환




홍성준/ 다시, 재현을 묻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투명하고 파란, 때로 노을 진 하늘 위로 비눗방울이 떠다닌다. 빛과 희롱이라도 하듯, 수면에서 아롱거리는 물비늘을 포착한 그림도 있다. 마치 여백과도 같은 허공을, 수면을 풀사이즈로 그린, 그 허공에, 수면에 전면적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보통의 풍경화와는 그 결이 좀 다른 풍경화인가. 가만히 보면, 가장자리 한쪽 귀가 그림의 안쪽으로 말려있다. 말린 부위에는 그림자도 있다. 칼로 자른 것 같은, 그림의 옆쪽이나 아래쪽 면에는 미처 그려지지 않은 빈 부분도 있다. 그리다 만 그림인가. 사진인가. 사진을 프린트해 벽면에 부착해 놓은 시트지인가. 다시 보면, 일정한 크기로 자른 사각 형태의 한지를 잇대어 바탕화면을 만들었는데, 한지와 한지가 겹쳐지는 부위가 돋을새김 돼 있고, 그렇게 프린트된 이미지 뒤로 미세한 요철이 만져진다. 그렇다면, 시트지에 한지를 덧대어 바탕 처리를 한 위에 이미지를 프린트 한 것인가. 그림인지, 사진인지, 시트지인지, 프린트된 이미지인지 알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알 수 없는 그림(?)을 왜 그렸을까. 

자연스럽게 말린 부위에 그림자가 있는, 사각 형태로 자른 색색의 시트지를 벽면에 부착해 놓은, 시트지와 벽면 사이에 들뜬 자국이 보이는 작업도 있다. 회화를 오브제로 대체한 설치작업인가. 회화적 평면과 색면을 주지시키는 개념미술인가. 알 수가 없다. 정색하고 말한 것이지만, 사실 작가의 작업에는 오브제도, 설치작업도 없다. 그림처럼 보이는, 사진처럼 보이는, 시트지처럼 보이는, 프린트된 이미지처럼 보이는, 이 모든 상황 논리는 다만 그림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오브제도, 설치작업도, 개념미술도, 하나같이 재현된 그림이라는 상황 논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재현적인 회화로 나타난 전통적인 그리고 정통적인 방법론과 문법을 빌려 이 모든 상황 논리(이를테면 실재와 재현된 이미지, 실재와 일루전 그러므로 환영 간 관계와 경계와 차이를 묻는 것과 같은)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재현적인 회화가 무엇인지, 재현이 무엇인지, 회화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은 질문의 기술이라는, 예술의 정의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통해서 자기를 묻는, 회화를 통해서 회화를 묻는, 재현을 통해서 재현을 묻는, 창작을 통해서 비평을 묻는 것이란 점에서 개념미술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모리스 드니는 회화는 말이나 누드이기 이전에 색채로 덮인 평면 그러므로 색면이라고 했다. 클레멘테 그린버그는 회화의 본질이 평면이라고 했고, 평면과 색면이 결합 된 색면주의 화파를 주창했다. 회화의 본질을 묻는 모더니즘 패러다임에서 유래한 전언으로서, 이후 회화의 대상을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논리적이고 의미론적인 대상으로 전이시킨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예비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마르셀 뒤샹은 레디메이드로, 앤디 워홀은 재제작된 레디메이드로 회화를 대체함으로써 예술과 오브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됐다. 그 자체 아서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회화의 됨됨이(꼴)와 씀씀이(용도)를 묻는 자기반성적 물음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작가 홍성준은 레이어 곧 겹을 제안한다. 회화의 본질은 겹이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중첩된 터치가 하늘처럼 보이는, 노을처럼 보이는, 일렁이는 수면처럼 보이는, 수면에서 아롱거리는 빛알갱이처럼 보이는 일루전을, 환영적 이미지를, 재현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작가는 재현된 이미지를 통해, 사실은 재현적인 척하는 이미지를 통해 평면(성)을 주지시키고, 색에 색이 겹친 색면의 레이어를 주지시키고, 중첩된 터치의 물화 된 형식을 주지시킨다. 모더니즘 패러다임이 평면과 색면을 매개로 회화의 본질을 물었다면, 작가는 레이어 곧 겹을 매개로 회화의 본질을 재소환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아직 겹이 평면 혹은 색면과(레디메이드 혹은 재제작된 레디메이드는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열릴 수도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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