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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신진 청년작가 공모 지원사업, <사이>

고충환

2020 신진 청년작가 공모 지원사업, <사이> 


은평문화재단이 주최한 이번 공모 지원사업에는 총 108인(팀)이 접수되었고, 그중 3명의 작가가 최종 선정되었다. 한윤희(평면 회화), 강명숙(조각, 입체 회화), 이빛나(평면 회화, 설치) 작가다. 지역 단위사업임을 생각하면 경쟁률도 치열한 편이고, 공모된 작품들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평소 사업에 대한 작가들의 높은 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봐도 되겠고, 그런 만큼 향후 지원사업과 관련한 성공적인 케이스로 자리매김할 날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전시 주제가 <사이>다. 아마도 창작 주체와 향수 주체를 중재한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지역민의 문화예술 향수권을 신장한다는, 그 매개자 역할을 자처한다는 의지를 담았을 것이다. 사이는 또한, 관계 개념이기도 하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온갖 유형무형의 관계망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세계가, 국가가, 사회가, 개인이, 모든 존재가 관계 개념으로 정의되고 재정의된다. 그런 만큼 관계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고, 현실을 푸는 열쇳말이 된다. 그렇게 사업 주최 측은 사이 개념을 매개로 사업의 취지도 반영하면서, 동시에 현대미술의 전형적인 주제의식도 함축하고 있다. 

한윤희, 스펙터클소사이어티.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는 저작 <스펙터클소사이어티> 그러므로 <구경거리의 사회>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 대해 적고 있다. 극적으로 말해 현실이 스크린이 되고, 극장이 되었다. 그렇게 현대인은 온갖 이미지를 중개하는 극장 속을 살고 있다. 그 극장이 상영하는 전형적인 장면이 에스컬레이터다. 현대도시의 풍경을 바꿔놓은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다. 에스컬레이터 곧 움직이는 길은,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SF 영화나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고 이미지였다. 지금 봐도 그렇다. 움직이는 길 위에서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정적으로 보이고, 수동적으로 보이고, 공허해 보인다. 작가는 이처럼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해 이동 중인 정적인, 수동적인, 공허한 현대인의 초상을 그렸다. 에스컬레이터를 매개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극적 현실을 그렸고, SF 영화나 공상과학소설 같은 극화된 일상을 그렸다. 
나아가 작가는 인위적으로 현실을 극화하기도 하는데, 유년의 기억과 대중매체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으로 오버랩 시키는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화재사건에 대한 유년의 기억과 울고 있는 배우의 연기를 중첩 시켜 기억 속 화재사건을 현실 위로 되불러낸다. 그렇게 화재는 현실의 사건이 되고, 알 수 없는 불안을 앓는 현대인의 징후며 증상이 되고, 그 자체 현대를 읽는 알레고리가 된다. 이로써 그에게 그림 그리기란 정적인, 수동적인, 공허한 현대인의 초상을 상영하는, 그리고 여기에 알 수 없는 불안을 앓는 현대인의 징후며 증상을 상영하는 이미지 극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명숙, 추억을 소환하다. 작가는 건물을 짓는다. 작가가 지은 건물을 보면 뉴욕 베이커리 같은 가게가 있고 매장이 있다. 도서관이 있고 부동산이 있다. 심지어 생쥐를 위한 집도, 나무를 위한 집도 있다. 실제로는 큰 나무가 있는 집이겠지만, 여하튼. 건물에는 오르내리는 계단이 딸려 있고, 상호를 알려주는 간판이 오롯하다. 여기에 벽에 낙서도 그대로다. 건물 내부에는 조명을 넣어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 속 정경과도 같은 따스한 분위기를 더했다. 아마도 작가가 살았을 동네일 수도, 지금 현재 살고 있는 거리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 속에서 과거는 현재 위로 호출되고, 현재는 과거를 소환하면서 향수를 자아낸다. 아마도 시간의 옷을 입힌 빈티지 같은 분위기 탓일 것이다. 
다시,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한 현장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실을 증언하기보다는 과거에 속한 감정, 이를테면 추억과 기억, 회상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작가의 손(그러므로 감각)이 스치기만 해도 현실은 과거로 변형될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 속엔 사라진 것들이 있고,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상실감을 자아낸다. 시간의 옷을 입은 빈티지 같은 분위기가, 크리스마스 카드 속 정경과도 같은 따스한 분위기가 상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그 상실감에는 유년의 추억과 같은 사사로운 기억도 있고, 재개발현장과 같은 사회적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지은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골목길을 내달리는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이빛나, 수집 강박은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의미 있는 물건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로부터 박물관이 유래했다. 물건의 종류 여하에 따라서 역사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생활사 박물관 등으로 분화된다. 미술관도 마찬가지. 의미 있는 작품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로부터 미술관이 유래했다. 물건이든 작품이든 수집하고, 분류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는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적인 행위로서, 이로부터 문화가 비롯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물건을 의미가 있다고, 어떤 작품이 가치가 있다고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정체성 곧 집단정체성이다. 미셀 푸코의 에피스테메(집단지성)나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전형)과도 그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도 마찬가지. 평소 그가 의미 부여하는 물건이나 미적 취향이 그의 인격을 결정한다. 제2의 정체성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의미 부여가 적극적으로 작동할 경우, 그것은 수집행위로 나타나고, 우리는 그들을 일컬어 마니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작가는 마니아들을 그린다. 무슨 전리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물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놓고 있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물건들도 적지 않다. 한 사람의 인격을 예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작가는 저마다 자기 정체성을 전시하는 사람들을 그려놓고 있었다. 인형을, 장난감을, 완구를, 운동화를, 사탕 병을, 맥도날드 종이팩을, 상품용 태그를, 문신을, 유년의 추억을, 키덜트를, 욕망을, 집착과 강박을, 공허를, 그리고 어쩌면 전이된 트라우마를 전시하는 사람들을 그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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